이젠 우리가 그들을 해부할 차례
중국리그 을조에 속한 강동윤 9단(왼쪽)과 이창호 9단의 경기 모습.
중국리그 갑조는 메이저 리그 1군, 을조는 메이저 2군, 병조는 마이너 리그다. 현재 을조 남·여 리그와 병조리그가 진행 중이다. 이번 시즌 16팀이 참가한 을조리그는 4월 21일에 개막해, 도중에 24, 27일 이틀을 쉬고, 29일까지 총 7회전을 치르는 단거리 경주. 한 팀은 4명. 1~ 4장이 순서대로 대결해 이긴 팀은 2점, 진 팀은 0점, 무승부면 1점씩을 얻는다. 순위는 승점, 승점이 같으면 승수, 승수가 같으면 주장(1장)의 승률도 가린다. 우리 내셔녈리그와 같다.
을조리그 16팀 중 10팀에서 우리 선수들이 한 명씩 뛰고 있다. 이창호 박영훈 강동윤 9단, 한상훈 7단, 안성준 5단, 김정현 이지현 이원영 4단, 변상일 3단, 신민준 초단 등 10명이다.
갑조에는 박정환 김지석 이세돌 최철한 조한승 9단, 나현 4단, 이동훈 3단, 신진서 2단 등의 얼굴이 보인다. 12팀 중에 8팀에 들어가 있다.
여자리그는 올해 처음 선보이는데, 박지은 9단, 이민진 7단, 김채영 2단, 오유진 초단이 스카우트되었다.
병조에는 일본과 대만에서도 한 팀씩이 참가했다.
아무튼 면면이 화려하다. 우선 한국기원 랭킹1~10위가 다 건너갔다. 갑조에는 1~4위인 박정환 김지석 이세돌 최철환, 9위 조한승, 10위 나현이 보인다. 5위 박영훈과 8위 강동윤은 을조에 있다. 6~7위는? 백홍석과 원성진인데, 두 사람은 현재 군복무 중이다. 갑조에서 스촨성 청두기원이 25위 이동훈 3단을, 산둥성이 42위 신진서 2단을 초청한 것은 이채롭다. 장래성을 본 투자일 것이다.
을조는 17위 이창호 9단, 31위 한상훈 7단, 15위 안성준 5단, 16위 김정현 4단, 12위 이지현 4단, 23위 이원영 4단, 19위 변상일 3단, 43위 신민준 초단.
그래서 사실은 국내에도 기전이 많은데, 꼭 그렇게 우르르 가야 하나, 아쉬움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는 소리도 있지만, 뭐, 아직은 그런 걸 따질 계제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중국이 저들의 표현대로라면 ‘타도 한국’을 목표로 15년, 조훈현 9단이 제1회 응창기배를 차지할 때부터라면 25년 동안인데, 그동안 한국기원의 <바둑연감>이나 우리 정예기사들의 공동연구 모음집인 <충암연구보고서> 시리즈 등을 들고파며 절차탁마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중국기원의 ‘중국연감’을 해부할 차례라는 것이다.
“외화획득도 적지 않다. C 9단은 장가 갈 때 중국리그에서 번 돈으로 집을 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웃을 일이 아니다. C 9단은 그 해 중국리그에서 1억 8000만 원을 벌었다. 세계 타이틀 우승 상금 2억~3억 원이 부럽지 않은 금액이다. 세계 타이틀은 1년 내내 천신만고, 도산검림을 헤쳐 나가야 겨우 딸까말까 하는 건데, 중국 리그는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부담이 적고, 여행하는 즐거움도 있다. 이세돌 9단 같은 경우 재작년에는 한 판에 ‘이기면 1000만 원, 지면 0’의 조건이었고 다른 기사들의 대국료도 평균 한 판에 500만 원 정도는 되었다. 일류 기사들로서는 중국행의 기회가 올 때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가게 되면 더 열심히 두게 되는 것. 실제 지금까지 우리 기사들은 성적도 좋았다.
최철한 9단은 “중국리그에서는 펄펄 난다”는 소리를 들었고 김지석 9단은 지난해 10전 전승의 기록을 세웠다. 성적이 좋으니 초빙이 많아졌다. 그런데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대국료는 수준은 조금 낮아지고 있다. 또 올해부터는 선수와 회사가 개별 계약을 한다고 하니, 아닌 게 아니라, 예전에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진, 프로기사들의 매니저가 이제는 정식으로 나타나게 생겼다.
이창호 9단의 광팬들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창호 9단은 좀 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9단은 안 갔으면 어떨까 한다”고 말한다.
“15년 동안이나 세계 제일인자였던 이 9단이라면 지금쯤 승부 아닌 다른 일을 해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을조리그란 것도 이 9단의 위상에는 안 맞는 것 같고, 이 9단은 흔히 하는 말로 ‘걸어다니는 전설’ 아닌가. 이 9단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나. 팬들이 전설을 전설로 아름답게 간직하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요즘 같은 세상에 그래도 추억할 수 있고 추억하면 행복해지는 그런 전설 하나쯤 있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한국기원, 한국 바둑계가 이 국수에게는 이 국수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길을 한번 제시할 수는 없을까.”
그런가. 그렇다면 거듭 말하거니와 중국이 대단한 것 아닌가. 원래는 중국리그에서 고문으로 초빙해야 할 사람을 을조 선수로 뛰게 하니 말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