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백이’ 정동남 동생 잃은 아픔…‘구조는 내 숙명’
한국구조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정동남이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고 현장에서 활동할 당시 모습. 작은 사진은 세월호 구조 현장에서 OBS와 인터뷰 화면 캡처. 일요신문 DB
정동남은 사고 직후 일주일 동안 구조가 이뤄진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에 머물렀다. 생존자 구조를 위해 민간잠수부 투입 등을 지휘하며 힘을 보탰다. 한 때 민간잠수부 3명이 실종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다행히 큰 사고 없이 구조 활동에 집중했다.
정동남은 1972년 TBC 방송사의 무술 연기자로 입사해 연기를 시작했다. 1980~1990년대 드라마와 영화, TV 코미디쇼에서 활동하며 친숙했던 연기자다. ‘점백이’ ‘으악새’ 등의 별명으로도 불렸다. 다부진 체격에 운동 좋아하기로 유명했던 그가 연기를 멈추고 구조 활동에 나선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중학생 때 목숨을 잃은 동생에 대한 상처 탓이다.
정동남은 1960년대 후반, 당시 중학생이던 남동생을 익사사고로 잃었다. 그는 한 방송에 출연해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꺼냈다. “그때는 민간 구조대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배를 타고 강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동생을 구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돈을 가져오면 해주겠다고 하더라. 몇 시간 동안 돈을 구해와 줬더니 바로 동생을 건져 주더라. 그러나 목숨은 살리지 못했다.”
정동남은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물이 빠진 사람은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 시기도 그때다. 이후 그는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민간 구조대를 만들었다.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구조연합회는 국내서도 손꼽히는 구조 봉사대다.
동생은 잃었지만 정동남은 수많은 사람을 살렸다.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사건 구조부터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고, 지난해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익사 구조까지 몸을 사리지 않았다.
어려운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연예계 ‘의인’은 더 있다. 가수 션과 김장훈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기부를 생활처럼 실천하는 스타다. 한두 번 관심을 쏟는 데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이웃 사랑을 실천해온 덕분에 ‘기부 천사’로도 불린다. 션과 김장훈이 기부와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도 이유가 있다.
사진제공=SBS
션은 결혼한 뒤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팬들로부터 받았던 많은 사랑을 이웃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결혼하고 나서 많이 행복했다. 그 행복을 부부 둘이서 나누는 것보다 여러 사람에게 베풀면 더 좋다고 생각했다.” 벌써 그 약속은 10년째 변함없이 이어진 셈이다.
김장훈이 지금까지 기부에 쓴 금액은 100억 원에 달한다. 금액보다 세심하고 적극적인 그의 행보가 더 화제다. 2008년 서해 태안군에서 일어난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 피해를 막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현장으로 달려 간 데는 김장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태안에 머물면서 사고 위험성을 알리고 피해 복구에 나섰다. 연예인이 앞장 선 자원봉사활동의 효과는 거셌다.
임준선 기자
김장훈이 기부와 봉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배우 문근영이 먼저 시작한 기부 활동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문근영은 연예계에 기부 문화가 널리 정착하기 전은 2006년에 다니던 고등학교에 1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해 화제를 낳았다.
김장훈은 2010년에 10억 원을 기부했다. 그 돈을 장애아동병원 건립 기금 등에 쓰이도록 했다. 당시 김장훈은 10억 기부 사실을 직접 쓴 글로 알리며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연예인 기부는 알리는 게 낫다”고 했다. 또 “내가 기부를 한다고 할 때 이미 하던 분들이 안 할 확률은 없다. 안하던 누군가가 물들어서 할 수 있는 확률만 존재한다. 그게 단 한 명이라도 희망이 있다”고 썼다. 세월호 사고 유가족과 구조 활동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많은 연예인들이 자신의 기부 사실이 공개되는 걸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 속에 김장훈의 말은 울림이 강하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