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선장이 배를 버리고 제일 먼저 도망갈 수 있을까. 어떻게 선원 모두가 제일 먼저 탈출할 수 있을까. 승객의 안전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그들 뒤엔 악덕 선주가 있었다. 돈 되는 일만 아귀처럼 덤빈 자린고비 선주가 있었다. 쥐꼬리만큼 월급을 주면서,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뽑아 직업적 안정성도 주지 않는 선주는 그 불안정성을 이용해서 직원들을 마구 부렸을 것이다. 그들을 자기 밥 먹는 머슴 정도로 취급했을 터였다. 그러니 그 안개 자욱한 날씨에도 출항을 했을 것이었다. 다른 배는 출항하지 않는 날씨에 그 배만 출항했다는 건 선장이 선장이 아니란 말이었다. 돈 버는 일에 혈안이 된 선주 밑에서 선장은 허수아비란 말이었다.
그 비상 상황에서 선장과 선원 모두가 달아났다. 위험하니 객실 바깥으로 나가지 말라고 방송해 놓고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만 살겠다고 배를 버리고 달아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얼마나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이 없고 공감 능력도 없고 자존감도 박약한 인물들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들은 쥐꼬리만 한 월급에 자존감을 팔아버린 머슴들이었다. 그것은 배의 분위기를 만드는 리더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든 사건은 벌어졌다. 이제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해야 했다. 그러나 대응과정 속에서 정부는 우리를 실망시켰다. 유능하지도 않고 인간적이지도 않은 정부! 세상에, 천지가 곡소리로 뒤덮인 그 절망의 땅에서 사망자 명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고위 공무원이나 의료행위를 하던 곳을 치우고 떡하니 라면을 먹고는 잘못한 게 뭔지도 모르는 장관은 어찌해야 하는지. 세 사람이 주차해야 하는 공간을 혼자 차지한 그 행태가 우연이 아니겠다. 그리고 또 피해자 가족을 막는 경찰은 뭐하는 경찰이고, 누구를 위한 경찰인지. 저러니 누구를 믿을 것인가. 보다 못한 시민들이 노란 리본을 달았다. 세월호 사고를 잊지 말자고.
노란 리본은 희망이다. 노란 리본은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순수한 마음들이다. 그러나 실종자들이 사망자가 되어 소리도 내지 못하는 비탄으로 돌아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란색 물결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그 참사의 의미를 기억하는 순수한 마음을 모아 다시 시작하자는 뜻이겠다.
“내 사진 앞에서 울지 마십시오.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나는 천개의 바람이 되어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습니다.” 시, ‘천개의 바람’이 노란 리본과 함께 천지에 퍼지는 이유를 기억해야 한다. 아무도 지켜주는 이 없었던 황폐한 삶을 위해 충분히 울고, 충분히 애도하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겠다. 이제 우리의 삶은 우리가 지키자는 것이겠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