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생 모집 위해 ‘홈런’ 인증샷 자랑도
픽업아티스트란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음지에서만 자신의 ‘헌팅’ 전략을 알리며 활약했다면 최근에는 방송에까지 출연하며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다만 방송 출연에도 대부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 이유는 방송에서 얼굴이 노출되면 길거리 ‘헌팅’ 때 그들을 알아보게 돼 성공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픽업아티스트의 주 활동 무대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나 여성에게 경계 없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소다. 춤을 추며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짙어질 수 있는 클럽은 픽업아티스트들에게 최상의 무대. 클럽에서는 ‘픽업’할 대상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말을 붙이고 “당신과 대화를 해보니 서로 잘 통하는 것 같다”는 말로 여성의 전화번호를 얻는다.
그렇게 첫 데이트가 성사되면 픽업아티스트들은 약속시간을 애매하게 잡거나 일부러 여자를 기다리게 만든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10분 늦었다” 등의 작업 멘트를 날리기 위함인데 이 역시도 그들만의 기술이란다. 또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려다가 돌연 멈춘다거나 스스로 쉬운 남자가 아니라며 여성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친해지기 위해 일부러 술자리로 유도하기도 한다. 그리곤 “너처럼 좋아진 사람은 처음이다” 등의 말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형성한 뒤 사실상 최종목적인 성관계를 위해 픽업 대상을 모텔로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아로마’라는 닉네임을 쓰는 픽업아티스트 박 아무개 씨(23)도 그들 세계에선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 박 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해 픽업아티스트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로맨스팩토리’라는 카페를 만들어 자신의 연애 스킬(?)을 전수했는데 동시에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도 틈틈이 자신의 연애 생활을 자랑했다.
박 씨의 블로그에는 자신과 같은 픽업아티스트들을 ‘모든 부분에서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해결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또 박 씨는 운영 중이던 ‘로맨스팩토리’에서 상담 의뢰를 받아 회당 5만~한 달 200만 원가량을 받으며 수강생들에게 연애 교육을 해왔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최근 성폭력 혐의로 구속기소된 픽업아티스트 ‘아로마’ 블로그.
박 씨는 지난해 8월 부산에 있는 연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됐다. 2012년 11월부터 ‘로맨스팩토리’에 여성의 나체나 속옷 바람의 사진을 올린 혐의였다. 그는 접근한 여성과의 섹스에 성공하면 ‘인증샷’을 찍어 카페에 올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 거주하며 강남 등지를 주무대로 활동하던 그는 왜 부산까지 내려간 것일까.
확인 결과 이는 연제경찰서의 ‘수사력’ 덕분이었다. 연제경찰서 소속 경찰이 ‘로맨스팩토리’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연애 교육을 받으려는 수강생으로 위장해 박 씨에게 연락을 취한 것. 박 씨는 이것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볼일 때문인지 부산에 내려갔다가 위장한 경찰과 접촉하고 ‘로맨스팩토리’에 본인이 게재한 사진을 보여줬다고 한다. 또한 박 씨는 “수강생들이 나에게 ‘인증샷’을 보내주면 다른 수강생 유치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위장한 경찰에게 하기도 했다.
이어진 경찰 조사에서 박 씨는 혐의를 부인하거나 정당화하지도 않았고, 결국 지난 4월 말 불구속 기소됐다. 경찰 관계자는 박 씨에 대해 “나이도 어린 친구였고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과시하기를 좋아하고 남들에게 본인의 우월함을 자랑하려는 태도가 보였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까지 다녀오고도 픽업아티스트를 시작한 박 씨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지난해 8월 경찰 조사 후에도 그해 연말까지 블로그 활동을 계속한 것도 이런 그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취재가 끝난 뒤 현재 그의 블로그는 초기화된 상태다).
한편 ‘아로마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픽업아티스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다수의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을 ‘픽업’한다는 표현 자체가 옳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여성을 연애의 대상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수강생에게 ‘교육’시킬 대상으로 보는 것도 문제라고 말한다. 실제로 픽업아티스트들은 수강생과 함께 ‘현장실습’을 나가 지나가는 여성의 전화번호를 알아오라고 시키기도 한다.
또한 기자가 여러 픽업아티스트의 카페를 탐문해 보니 ‘연애를 조언한다’는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여성을 오로지 연애를 연습하는 대상으로만 접근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회원 1000여 명을 보유한 한 픽업아티스트 카페의 게시판 목록에는 ‘데이트 후기’ ‘연애 칼럼’ ‘어프로치 영상’ 등의 제목이 가득했다.
실제 한 회원의 데이트 후기를 클릭해봤더니 마음에 드는 여성과의 데이트에서 있었던 일들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었다. “번호를 알려주고 과감하게 리드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는 등의 글쓴이의 계산된 속마음이 상세히 기술돼 있었는데 일부 글들은 여성과의 하룻밤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도 들어있었다. 이런 사이트들은 대부분 여성은 가입이 되지 않고, 회원제 등급 분류도 까다롭게 하는 등 폐쇄성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직 픽업아티스트들은 ‘아로마 사건’에 대해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닉네임 ‘레오’로 활동하는 한 인기 픽업아티스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로마’가 어린 나이에 여자를 만나 겉멋이 들면서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것 같다”며 “나 같은 경우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고 이성에 관심이 많은 순수한 사람들을 잘 이끌어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윤영화 인턴기자
픽업아티스트계 현황 관련 카페만 수십개… 관리감독 ‘사각지대’ 연애컨설턴트이자 과거 유일하게 얼굴을 노출하고 픽업아티스트 활동을 했던 곽현호 씨(30)의 말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픽업아티스트 학원’은 5개 미만이라고 한다. 포털 사이트에 ‘픽업아티스트’를 검색하면 나오는 30개가 넘는 카페들은 그저 이름뿐이라는 말이다. 그에 따르면 픽업아티스트 시장이 크지도 않기 때문에 지도·관리하는 감독 체계도 없고, ‘픽업아티스트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사업자 신고를 해야 하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되는 소규모 픽업아티스트 카페들이 이런 규정을 잘 지킬지 의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곽 씨는 또한 “지난해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이 픽업아티스트의 세계를 상당부분 위축시킨 것 같다. 술집에서 만난 여자를 뒤쫓아 강간과 살인을 저지른 공익근무요원 사건이 발생한 후 ‘성 문제’에 대해 사회의식이 엄정해지면서 단순 성관계만을 목적으로 하는 픽업아티스트들이 70% 이상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픽업아티스트들은 당당하게 그들의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픽업아티스트들은 이성과 데이트에 성공하고 성공담을 상세히 적은 ‘필드 레포트’를 작성해 포털 사이트의 아카데미 카페에 업로드 한다. ‘필드명’은 여성을 픽업한 장소나 데이트한 장소, ‘HB(Hot Buddy)’는 픽업한 여성을 가리킨다. 필드 리포트에서 이들이 지칭하는 픽업의 종류는 ‘N-Close’, ‘K-Close’, ‘F-Close’다. N-Close는 이성의 전화번호 획득, K-Close는 그 이성과의 키스 성공, F-Close는 이성과의 성관계 성공이라는 뜻이다. 만약 그날 처음 만난 여인과 성관계까지 이어졌다면 ‘홈런’이라고 부르는데 성공률이 높을수록 픽업아티스트들 사이에서 더욱 추앙받는다. 이 필드 리포트는 픽업아티스트 아카데미의 게시판에 올라오며 다른 수강생들이 더욱 분발하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지난해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 이후 ‘연애컨설턴트’로 전향하는 경우도 있다. 유명 픽업아티스트였던 곽 씨는 “아주 어릴 적엔 나 역시 이성에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접근했지만 지금은 인식을 바꿨다”며 연애컨설턴트로 전환한 이유를 설명했다. 또 곽 씨는 “지금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연애 아카데미도 준비 중인데, 앞으로 픽업아티스트의 지향점이 연애컨설팅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