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CJ의 수난?
탈세·배임·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이재현 CJ 회장이 지난 4월 24일 서울고법에서 진행되는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사건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CJ E&M IR 담당자는 CJ E&M의 실적발표를 전후해 일부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조만간 발표될 3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의 절반 수준”이라는 미공개정보를 흘렸다. 실적 공시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내부정보였다. 정보를 취득한 애널리스트들은 이를 다시 펀드매니저에게 알렸고, 펀드매니저는 이 정보를 이용해 대거 매도, 손실을 최소화했다.
정보유출 직전 CJ E&M 주가는 최근 2년 동안 최고가였던 주당 4만 3250원을 기록했지만 정보유출 직후 10% 가까이 떨어졌다. 기업 IR 담당자, 증권사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들 간 은밀한 거래로 결과적으로 아무 정보도 없었던 애꿎은 일반투자자, 즉 개미들만 피해를 본 셈. 금융당국은 3개월 넘게 이 사건을 조사한 끝에 지난 3월 12일 정보유출자인 CJ E&M 소속 직원 3명과 1차 정보수령자인 한국투자증권, KB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3개 증권사와 애널리스트를 검찰에 고발했다. 또 우리투자증권과 소속 애널리스트는 검찰 통보했다.
이 사안은 검찰 고발을 즈음해 청와대 경제수석실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조치에 대해 박 대통령이 조원동 경제수석을 크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질책한 부분은 2차 정보수령자라고 할 수 있는 펀드매니저들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사건에서 펀드매니저는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실질적인 이익을 취득한 주체다.
펀드매니저들이 속한 자산운용사들은 각각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 총 300억 원이 넘는 이익을 본 것으로 금융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는 미공개정보를 제공받아 주식을 매도한 펀드매니저들이 속한 곳으로 삼성자산운용과 브레인자산운용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자본시장법상 2차 정보수령자는 처벌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검은 고리’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펀드매니저가 처벌을 어떻게 피해 갈 수 있었는지 조 수석을 질책했고, 조 수석은 현행법으로는 처벌한 근거가 없다고 했으나 박 대통령이 쉽게 납득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기업 IR 담당자들과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들의 이 같은 거래는 시장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럼에도 미공개정보를 사전에 알려줬다는 구체적 증거를 찾아내기 어려운 만큼 처벌도 요원한 일이었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CJ E&M IR 담당자와 애널리스트들을 고발조치한 것만 해도 그 처벌 수위가 높다는 말이 나온다.
한편 박 대통령이 유독 이 사건에 대해서 조 수석을 강하게 질책했다는 얘기는 사건에 연루된 기업이 CJ라는 점에서 재계에 많은 뒷말을 낳고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재계의 불공정 관행에 대해 몇 차례 얘기한 바 있는데 모두가 CJ가 영위하고 있는 사업 분야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따라서 대통령의 이런 언급 때마다 CJ는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17일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최근 방송시장에 진출한 대기업들이 수직계열화를 통해서 방송채널을 늘리는 등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고, 이 과정에서 중소 프로그램 제공업체의 입지가 좁아져서 방송의 다양성이 훼손된다는 우려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발언이 특정 대기업을 두고 설명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재계에서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CJ그룹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많았다. 방송업계에서 채널과 콘텐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대기업은 사실상 CJ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두 달 뒤인 4월 4일 문화융성위원회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또 한 번 CJ를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영화산업은 작년에 동반성장협약을 제정했지만 합의 사항을 어기거나 계열사 밀어주기 관행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콘텐츠 분야에서 불공정 관행이 업계 발전을 막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발언이었다.
국내 최대 극장 체인인 CJ CGV를 가지고 있는 CJ는 당장 다음날 박 대통령의 발언의 배경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CJ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기업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언급한 산업들이 CJ 사업과 정확하게 일치했던 만큼 그 배경을 파악하느라 혼났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언급한 두 발언과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조 수석을 질책했던 것은 공교롭게도 2개월 사이에 나온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미래부 업무보고 자리에서의 발언은 이재현 회장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 후 3일 만에 나온 것이어서 재계에서는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이번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생각보다 길어지는 것도 CJ그룹이 연루됐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있다. 검찰은 통상적으로 주가조작 사건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자백과 녹취, 메신저 기록 등을 활용한다. 일단 금융당국이 검찰에 조사 내용을 넘길 때 애널리스트들의 자백은 일정 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녹취와 메신저 기록뿐만 아니라 거래 시스템의 기록 등을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사례를 보면 자백이 성립되더라도 실형을 받기에는 주가조작이나 미공개정보 이용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했다. 따라서 검찰이 실형을 구형하더라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감형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 기업전문 변호사는 “현재까지의 사례로만 보면 애널리스트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을 듯하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CJ그룹이 깊숙하게 연루된 만큼 이전보다 훨씬 강도 높은 처벌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주가조작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엄단에 처한다고 선언한 시점에 나온 첫 사례인 데다 대통령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언급한 사안인 만큼 기존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박진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