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은 ‘불편한 진실’ 싫어한다”
일본 인기 만화 <맛의 달인>이 “후쿠시마 원전 인근 지역 방문자들이 피폭 때문에 코피를 흘린다”고 묘사해 파문이 일고 있다.
1983년 연재를 시작한 <맛의 달인>은 일본에서 ‘식도락’ 선풍을 일으킨 화제작이다. 신문사 문화부 기자 야마오카가 주인공으로, 일본 전역의 맛 기행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최근 연재분에서는 주인공이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전 근처 마을을 방문하는데, 이것이 바로 논란의 씨앗이 됐다.
만화 속 내용을 보면, 주인공은 후쿠시마를 다녀온 후 피로감을 호소하며 원인불명의 코피를 자주 쏟는다. 그러자 후쿠시마 마을의 전 촌장이었던 이도가와 가쓰타카 씨가 “나도 코피가 난다. 코피는 피폭 때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욱이, 이도가와 전 촌장의 대사에는 “사실 후쿠시마에 코피를 쏟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더 이상 후쿠시마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 등 충격적인 대목도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이도가와 전 촌장은 실존 인물이다.
이 같은 내용이 만화에 실리자 출판사에는 “이게 진짜냐”고 확인하는 독자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당장 후쿠시마현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후쿠시마현은 홈페이지를 통해 “잘못된 정보로 소문을 조장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또한 ‘코피는 피폭 때문이다’고 묘사한 부분에 대해서는 유엔 과학위원회(UNSCEAR)의 보고서를 근거로 “급성방사선증의 원인이 되는 방사능은 노출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일본 정부도 파문 차단에 나선 상황이다. “사실이 아니다. 방사능 피폭과 코피는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환경성이 입장을 표명한 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스가 관방장관이 “근거 없는 풍문으로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해당 만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후쿠시마 주민들 사이에서는 “<맛의 달인> 판매를 금지하자”는 여론도 일고 있다. 이들은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난 지금에도 방사능 괴담으로 인해 후쿠시마 주민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면서 “유언비어를 확산시키는 해당 만화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주민들이 기피대상이 되어 따돌림을 당하거나 호텔에서 숙박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문제가 잦았다.
이에 대해 <맛의 달인> 작가 가리야 데쓰(72)는 “만화 내용은 후쿠시마 취재를 다녀온 뒤 코피가 멈추지 않았던 나와 스태프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는 “2년 동안 후쿠시마를 취재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한 것이 왜 비판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이어 가리야 작가는 “지금 일본 사회는 불편한 진실을 싫어한다. 듣기 좋은 거짓말을 요구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맛의 달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런 ‘듣기 좋은’ 이야기를 읽는 걸 추천한다”고 꼬집었다.
이후 작가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옹호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맛의 달인>에 실명 등장하는 마쓰이 에이스케 전 기후대 조교수는 “실제로 이상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그는 “갑자기 코피가 나온다, 몸이 무겁다고 증상을 호소하는 후쿠시마 주민들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다”면서 “만화 내용이 사실무근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실례”라고 전했다.
일본의 저명한 뇌 과학자 모기 겐이치로 박사도 트위터에서 “<맛의 달인>을 지나치게 비판하는 풍조가 괴이하게 여겨진다”고 지론을 펼쳤다. 모기 박사는 “통계를 기초로 삼은 과학논문이라면 몰라도 <맛의 달인>에 묘사되어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표현자의 견해다. 원전 사고에 대한 다양한 주장과 의견이 병립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아니겠는가. 어째서 봉쇄하려 하는가”라며 반문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만화 내용과 관련해 “방사능과 코피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소견이 일반적이다. 방사선방호학 전문가인 노구치 구니카즈 씨는 <마이니치 신문>에서 “방사선 장애가 있다면 코피가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이 경우 혈소판도 줄어들어 눈이나 귀 등 몸 속 모세혈관으로부터의 출혈도 이어진다. 후쿠시마 제1원전을 취재 견학하면서 급성방사성 장애가 될 정도로 방사선에 노출됐다고 보기 어려우며, 코피와 피폭을 관련짓는 것은 부정확하다”고 밝혔다.
다만, 리츠메이칸대학의 안자이 이쿠로 명예교수는 “스트레스가 영향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한번에 1시버트(=1000m㏜) 이상의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으면 건강 피해는 없다고 하지만, 심리적 스트레스가 면역기능에 영향을 주어 코피나 권태감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만화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자 출판사 측은 “코피나 피로감이 방사선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의도는 없었으며, 논의를 한 번 더 깊게 하고자 하는 작가의 취지를 존중해 실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회사 측은 “전문가들의 의견과 자사의 견해를 종합한 특집기사를 다음호(5월 19일 예정)에 게재하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맛의 달인-후쿠시마의 진실 편>은 5월 19일자 만화잡지 <빅코믹 스피리츠>에 연재가 이어진다. 가리야 작가는 블로그에 “본격적인 반론을 펼칠 것”이라고 예고해 다음호에서 파문이 추가로 확산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맛의 달인> 작가 가리야 데쓰는 누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