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 통해 3차 ‘환골탈태’ 시도
윤석금 회장이 화장품 사업을 또 다시 재기 발판으로 삼았다. 최준필 기자
1200억 원대 기업어음(CP) 사기 혐의로 재판 중인 윤석금 웅진 회장이 지난 1월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한 말이다. 윤 회장이 말한 ‘모르는 사업’이란 사업 확장 과정에서 인수한 태양광·건설 사업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반대로 윤 회장이 ‘잘 아는 사업’은 무엇일까. 윤 회장은 첫 공판에서 “출판업 성공 이후 식품, 화장품, 정수기 등 사업을 확장해 성공을 거뒀다”고 회고했다. 다시 말해 이들 사업이 윤 회장이 잘 알고 자신 있어 하는 사업들이다.
웅진그룹은 2012년 9월 지주사인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서 분해됐다. 웅진코웨이, 웅진식품, 웅진케미칼 등 주력 계열사가 매각되면서 웅진그룹은 그룹 모태인 웅진씽크빅과 웅진에너지 정도만 남았다. 윤 회장이 언급한 네 가지 사업 중에서는 출판업만 남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윤 회장은 최근 자신이 잘 안다고 자부하는 화장품 사업에 나섰다. 비록 직접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브랜드의 국내 판매권만 인수하려는 것이지만 윤 회장이 재기를 노리고 있는 상태인 점을 감안하면 화장품 사업 도전은 시기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윤 회장이 화장품 사업을 한 적은 두 번이다. 첫 번째는 1988년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과 함께 코리아나화장품을 창업한 것이고 두 번째는 2010년 자체 브랜드인 ‘리엔케이’를 출시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번 다 사업적으로 큰 기로에 섰던 시기다.
1988년은 윤석금 회장이 1980년 해임인터내셔널(현 웅진씽크빅) 설립 이후 출판업에 머물러 있던 사업을 확장하려던 때다. 결과적으로 코리아나화장품은 웅진그룹이 성장하는 데 기폭제가 됐다. 1997년에는 연매출 2000억 원을 돌파할 만큼 크게 성공했다.
2010년 역시 윤 회장과 웅진그룹에는 중요한 해였다. 2007년 극동건설, 2008년 새한(웅진케미칼, 현 도레이케미칼), 2010년 서울저축은행(현 예주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재계 30위까지 오른 웅진그룹이 급격하게 불어난 몸집을 유지하는 데 힘들어 하던 시기다.
이번에 판권 인수 추진 중인 미국 에스테틱 화장품 브랜드 ‘더말로지카’(위)와 고현정을 모델로 고가 브랜드 전략을 펼쳐 성공한 리엔케이.
이런 상황에서 윤 회장이 선택한 사업이 화장품 사업이다. 리엔케이는 배우 고현정을 앞세워 고가 브랜드 전략을 펼쳤다. LG생활건강과 상표권 다툼을 벌이기도 했으나 리엔케이는 백화점 판매와 방문판매(방판)에 힘입어 크게 성공, 윤 회장에게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웅진코웨이가 MBK파트너스에 매각되기 직전까지 리엔케이의 연매출은 700억 원이 훌쩍 넘었다. 윤 회장은 화장품 사업 분야에서 2014년 매출 2000억 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웅진코웨이 매각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처럼 화장품 사업은 윤 회장에게 사업 기회와 위기 돌파를 해결해준 사업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윤 회장 본인이 방판에 일가견이 있는 영업맨 출신인 데다 출판업에서 쌓은 영업 노하우가 방판 비중이 큰 화장품 영업에서 큰 효과를 본 듯하다”며 “렌탈(대여) 사업에서 성공한 것도 영업 노하우의 힘이었다”고 평가했다.
올해 다시 윤 회장이 화장품 사업에 도전한 데는 지난 두 번의 성공이 좋은 기억으로 작용한 듯하다. 지난 두 번의 경우가 승부수였듯 이번에도 윤 회장은 화장품 사업을 재기를 위한 승부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재계에서는 이미 올해 초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에서 조기 졸업하면서 윤 회장이 화장품 사업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지난 2월 화장품·피부미용기기·건강기능식품 등 수출입·제조·유통·판매업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주)웅진투투럽을 설립하면서 재계 관측은 사실로 굳어졌다. 웅진투투럽의 본점 주소지는 웅진홀딩스와 같은 서울 종로구 인의동 종로플레이스빌딩이다.
일부에서는 윤 회장의 행보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화장품 사업이 예전과 달리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1위 아모레퍼시픽을 제외하고 대부분 업체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해외 판매 호조 등에 힘입어 올해 1분기 ‘깜짝 실적’을 거둔 것일 뿐 지난해까지 실적 부진을 겪었다.
특히 LG생활건강,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 코리아나화장품 등 중저가 브랜드의 실적 부진은 계속 되고 있다. 에이블씨엔씨와 코리아나화장품은 매각설이 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회장의 화장품 사업 재도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기·배임 혐의 등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것도 걸림돌이다. 현재 9차 공판까지 진행된 윤 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은 오는 7, 8월쯤 이뤄질 전망이다.
윤 회장은 현재 서울 인의동 웅진홀딩스 본사에 매일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으며 경기도 파주에 있는 웅진씽크빅 본사에도 이따금 들르고 있다.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본사로 출근해 모든 일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세금포탈이나 횡령은 없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