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샛별 세계무대서도 반짝
변상일이 6월 9일 강릉 라카이샌드리조트에서 열린 제19회 LG배 세계기왕전 본선 32강전에서 중국의 신예 랴오싱원 5단(20)을 힘과 수읽기로 깔끔하게 제압하는 멋진 모습을 한번 보여 주었다.
<1도>가 그 바둑이다. 국면은 흑이 앞선 가운데 중반의 고비를 넘고 있다. 우중앙 흑1은 상변에서 흘러나와 있는 흑 대마의 연결 고리를 선수로 확보하겠다는 것. 백은 A로 끊어 우하쪽 돌들을 살려가야 할 것이고, 그러면 흑은 좌변에서 B로 젖히든가 하겠다는 것.
그러나 백은 흑의 주문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백2로 여기를 젖혔다. 백A로 끊어 잡는 것은 급하지 않다는 건데, 일단은 옳은 수읽기.
<2도>처럼 흑1로 이을 때 백2로 끊어도 된다. 흑 두 점이 살아가는 수는 없다. 백4·6에서 흑7 먹여치고 9로 몰고 백10으로 흑7 자리에 잇고 흑11로 젖힐 때 같이 백12로 젖힌다. 계속해서….
<3도> 흑1 몰고 3으로 늘면 백4로 밀어간다. 흑7·9로 비집고 11로 끊으면? 백12로 여길 끊고 14로 돌려쳐 흑이 수부족. 그건 그런데?
<4도> 흑1쪽에서부터 움직인 것이 이를테면 ‘도남의재북’의 노련한 공작으로 검토실의 칭찬을 받았다. 좌우를 엮는 발상과 수법이다. 백2·4로 버티자 흑5로 단수. 백6쪽을 뚫어오자 흑7 따낸 후 백8의 반발은 외면하고 손을 돌려 흑9, 이게 흑1부터의 노림이었다. 이제 백이 흑 두 점을 잡지 못하면 우하쪽 백돌들은 떨어진다. 백6으로 7의 곳에 이으면 흑도 A에 잇는데, 이건 백들이 크게 들어가 백이 안 된다. 게다가 좌하귀 흑들은 아직 완전히 잡힌 돌도 아니다.
<6도>는 <4도> 다음의 실전 진행. 우하 백말이 탈출하는 수는 없어졌으므로 백1, 이쪽에서 삶을 찾아본다. 흑2를 기다려 백3에서 5로 끊고 흑6 단수에 백7 패로 받는 것이 유일한 구명줄이다. 백7로 8에 잇는 것은 흑A를 당해 바둑이 끝난다. 백은 흑와 4, 두 점을 잡아도 못 사니까.
흑8 따낼 때 백9로 끊는 것이 팻감. 흑은 10으로 백5 자리에 이어 패를 해소했는데, 백은 B로 잡지 않고 다시 한 번 11로 젖혀 버티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흑B로 움직이면 백은 이 흑돌을 잡을 수 없다. 흑돌을 잡지 못하면 우하쪽 백말은 좌사한다. 그러나 백B로 잡을 때 흑이 11 부근을 보강하면 그 아래쪽에 백 한 점을 빵따낸 흑돌들이 다시 힘을 받기 시작한다. 누가 누구를 공격하는지 모르게 되는 것. 게다가 거듭 말하거니와 좌하귀 들도 아직은 잡힌 게 아니다.
그렇다고 <7도> 백1처럼 흑을 잡으려는 것도 만만치 않다. 알기 쉽게 흑2에서 4로 끊기만 백이 당장 곤란하다. 백7로 늘어야 하는데 흑8로 끊고 10으로 이으면 A-B가 맞보기.
<8도>는 <6도> 다음의 실전 진행. 흑은 다시 1로 공작한 후 3으로 움직였고, 결론을 말하자면 우하 백말을 잡는 것으로 불계승을 거두었다. 백6부터 흑을 잡으러가는 수순은 가상도다. 흑이 7·9에서 11로 벗어나면 백은 12 이하로 쫓아가야 하는데(백10은 흑7 자리에 이음), 흑17에 이르러 응수가 없다. 흑1이 A에 끊는 수와 B로 빠지는 수를 만들어 놓았던 것.
실전은 백6으로 흑9 자리에 쌍립한 후, 중국 선수들 공통의 기질대로, 돌을 거두지 않고 끈질기게 무려 50수를 더 버티면서 흑3·5쪽 돌들과 수상전을 꾀해 보았지만, 무위로 끝나고 만다. 지면 관계로 그 수순을 보여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변상일의 수읽기는 정확했고 응수는 빈틈이 없었다.
이광구 객원기자
한국 ‘LG배 기왕전’ 힘내는 까닭 국대 상비군 약발 받나 작년에도 LG배 32강-16강전은 강릉에서 열렸는데, 그때는 8강에 우리가 한 사람도 못 올라가는 수모를 당했다. 더구나 LG배는 2009년 13회부터 올 2월 14회까지, 구리 쿵제 박문요 장웨이제 스웨 퉈자시가 차례로 6년 연속 우승컵을 가져갔다. 2000년 4회 때 위빈, 2006년 10회 때 구리를 합하면 통산 8회 우승으로 우리의 7회 우승을 앞질러 있다. 이번 대회 32강은 한국 10, 중국은 17, 일본 4, 대만 1의 분포여서 우리가 숫자에서 이미 밀렸고, 중국 선수단에는 지난해 메이저 세계 타이틀을 하나씩 차지해 중국의 세계대회 6개 석권을 기록한 주역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올해도 우리는 8강에 겨우 한두 명 진출하거나 그러다가 또 우승을 내줘 중국의 7연패를 허락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던 것. 다행히 상위 랭커들이 16강전에서 저력을 발휘해 박정환 김지석 최철한 박영훈 등 랭킹 1-2-4-5위가 각각 탕웨이싱(삼성화재배 우승) 셰허 안등쉬(22, 4단) 리저(25, 6단)를 주저앉힌 것. 8강의 나머지 네 자리는 중국의 판팅위(응창기배 우승) 퉈자시(LG배 우승) 셰얼하오(16, 2단) 천야오예(춘란배 우승). 아무튼 모처럼 우리가 힘을 내고 있다. “다소 성급한 진단일지 모르지만, 한 달여 전에 국가대표 상비군 체제를 출범시킨 것이 즉효를 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