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행 실탄 두둑…정의선 시대 성큼
현대차 양재동 사옥. 일요신문DB
지난 6월 2일 공정거래위원회 자료 기준,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의 계열사는 비금융 51개사와 금융 5개사를 합해 모두 56개사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비롯해 현대건설,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카드 등 각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들 쟁쟁한 계열사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현대엔지니어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주목받은 데는 삼성의 영향이 크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쓰러진 이후 후계 승계를 위한 삼성의 사업구조 개편이 활발해지면서 후계 승계 작업이 필요한 재계 2위 현대차그룹에도 시선이 쏠렸다. 더욱이 오래 전부터 후계 승계를 준비해온 삼성과 달리 현대차는 후계 승계를 위한 준비 작업을 거의 하지 못한 터였다. 기껏해야 정의선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의 상장 정도였다.
정의선 부회장. 일요신문DB
현대차 관계자들은 “삼성과 우리를 함께 거론하지 말아달라”며 덩달아 불거진 후계 승계 시나리오에 대해 불편해하고 있지만 여러 요소가 맞아 떨어지면서 재계에서는 현대차로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게다가 지난 4월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은 현대차그룹의 후계 승계 작업의 신호탄으로 관측됐다. 후계 승계 과정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이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게 재계 시각이다.
현대엠코 지분 25.06%를 보유하고 있는 정 부회장은 두 회사의 합병으로 합병법인 지분 11.72%를 보유하게 됐다. 평가액으로 3590억 원이다. 2004년 375억 원을 들여 현대엠코 지분을 매입했으니 10년 만에 약 10배를 불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도 현대엠코 지분 24.96%(합병법인 지분 11.67%)를 갖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가치가 껑충 뛰면서 정 부회장은 든든한 자금줄을 확보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건설과 합병한다면 정 부회장의 지분 평가액은 더 뛸 것이 뻔하다. 재계에서는 이 자금으로 정 부회장이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합병 직후인 지난 4월 현대엔지니어링이 주당 무려 1만 1000원을 중간배당한 것은 재계에 나도는 ‘심증’을 굳히는 한 요인이 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2011년과 2012년 모두 주당 500원만 현금배당했다. 배당총액은 20억 원 수준이며 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을 나타내는 배당성향은 불과 1%가량이었다. 현대엔지니어링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에는 아예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주당 1만 1000원이나 중간배당을 실시했다. 배당성향은 무려 20%에 달했다. 합병으로 현대엔지니어링 2대주주에 오른 정의선 부회장과 3대 주주에 오른 현대글로비스에 ‘큰돈’이 들어간 셈이다.
재계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삼성SDS가 있었다면 정의선 부회장에게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갑자기 배당액이 늘어난 것과 중간배당을 실시한 것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모른다. 다만 정 부회장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강조했다.
장외 주식시장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해 말 30만 원을 밑돌던 현대엔지니어링 주가는 현대엠코와 합병설이 나돌던 올 초 30만 원을 돌파하더니 지난 20일 현재 59만 원을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60만 원 이상에서 거래되다 살짝 내려온 것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