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씨의 대통령 취임식 장면. | ||
영화 속에서 박정희 정권의 몰락이 안가 내부의 질펀한 술자리에서 이뤄졌음이 묘사되자 과거 안가 관계자들은 “안가는 보안이 필요로 되는 대통령의 만남의 장소인데, 마치 여성이 술접대하는 곳처럼 왜곡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5공과 6공 때에는 거의 시국 대책회의의 장소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궁정동 안가의 총성으로 박 정권의 몰락이 있은 후에도 안가 내 연회는 계속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그 모습도 3공 때의 그것과 거의 흡사했음이 당시 출입했던 이의 증언으로 입증되고 있다.
박 정권 말기 안가의 관리인 역할을 맡았던 박선호 전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은 10·26사건으로 사형당하기 전 법정에서 안가 모습에 대해 진술했다. 그의 진술 내용은 당시 한 법정 관계자에 의해 몰래 녹음됐다가 93년 <동아일보> 기자였던 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에 의해 공개됐다.
궁정동 안가는 60년대 말에 조성됐다. 원래 관리부서는 대통령 경호실이었고, 박종규 실장이 책임을 맡았다. 하지만 안가에서의 비밀 연회가 계속되면서,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여성들을 불러오고 술자리를 만든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될 것을 우려해 이후 그 역할은 중정에 떠넘겨졌다.
박 정권 때의 안가는 10·26이 일어난 궁정동 외에도 5~6곳이 더 있었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박선호 과장은 법정 진술에서 “그와 같은 건물(안가)은 대여섯 개가 더 있는데 이것은 각하만이 사용하시는 건물로서…”라고 말하고 있다. 삼청동 청운동 한남동 구기동 등에 안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궁정동 안가를 주로 이용했고, 나머지 안가는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원로 정치인은 “안가는 꼭 대통령만 이용하는 곳이 아니고 때에 따라서는 총리나 정치인, 안기부나 군, 검찰 등에서 업무상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술자리에 차출되어온 여성들은 인기 있는 연예인이거나 연예계 지망생 여대생 등이었다. 당시 여성들이 안가에 들어가는 데에는 엄격한 나름대로의 규칙이 존재했다. ‘뒤탈’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같은 여자는 두 번 부르지 않았다. 일반 요정이나 룸살롱에 나가는 여성들도 금지됐다. 또한 안가에 들어왔던 사실은 외부에 발설하지 말도록 했다. 술 시중 외에 술자리에서의 대화 내용에도 관심을 갖지 말아야 했다. 대통령이 먼저 말을 걸어오기 전에 여성들이 먼저 애교를 부리는 것도 금지됐다.
여성들에게 지급되는 ‘봉사비’는 50만~1백만원 선이었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따지면 사립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의 2~3배에 해당한다. 물론 꽤 이름있는 스타는 좀더 많은 돈이 주어졌다. 여성들의 공급은 요정의 이름난 마담을 통했다. 특히 장충동 모 요정의 김 마담이 꽤 유명했다고 한다. 때로는 박 대통령이 TV를 통해 마음에 드는 연예인을 직접 ‘찍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박 과장은 차출 여성들을 P호텔 등 인근 호텔에서 만나 차로 직접 안가로 데려왔다.
10·26사건으로 세간에 밀실 연회가 알려지면서 5공의 전두환 대통령은 궁정동 안가 가운데 시해 사건이 일어난 ‘한국관’ 건물을 철거했다. 그리고 나머지 궁정동 안가들도 역시 불미스럽다는 이유로 별로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밀실 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5공은 궁정동 대신 삼청동에 새 안가를 조성하고 그곳을 주로 이용했다. 삼청동 안가는 5공 초 대기업인 K그룹의 사주 집을 인수해서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관리 부서도 중정(당시 안기부)에서 다시 청와대 경호실로 넘어왔다. 하지만 그 내부의 비밀스런 행태는 3공을 거의 답습했다.
5공 초 당시 안가를 몇 차례 드나들었던 전직 인기가수 겸 CF 모델이었던 L씨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그녀가 처음 안가에 들어가게 된 것은 갑자기 출연 예정이던 방송 스케줄이 취소되고 매니저가 “오늘 저녁에 중요한 행사가 있으니 분홍색 한복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고서였다.
▲ ‘그때’ 그곳 1980년 10·26사건이 일어났던 궁정동 안가 현장 모습. 오른쪽은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안가 술자리에 불려나온 가수 역으로 분한 김윤아. <보도사진연감80> | ||
그녀가 안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연예인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대통령이 있었다. L씨는 연회장에 들어가기 직전 관계자로부터 “지금 이 순간부터 눈과 귀는 멀었다고 생각하라. 안에서 오가는 대화는 절대 관심을 가지지 말아라. 대통령으로부터 술잔을 받을 때에는 반드시 각하라는 호칭과 함께 ‘저는 지금 어떤 노래를 부르는 가수 누구이옵니다’라는 소개를 하라” 등의 ‘수칙’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 안가 연회장에 한번 참석하면 받는 돈이 약 1백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3공 때와 비슷하거나 조금 많다. 하지만 밖에서 소문으로 들었던 것처럼 2차 잠자리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지지도 않았고, 대개 자정 전에 연회가 끝났다는 것.
안가에서 나갈 때에도 들어올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되돌아가는데, 역시 “오늘 있었던 일은 절대 밖에서 말하지 마라”는 단단한 ‘당부’가 이어졌다고 했다. 그녀는 그 후에도 두세 차례 더 안가에 출입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는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외국 VIP들이 술자리에 함께했다고 한다.
L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인기 있는 여성 연예인들이라면 한번쯤은 겪었음직한 일이었다”면서 “새삼 지금에 와서 다시 그때 일을 들추고 싶지는 않다”고 공식 인터뷰는 사양했다.
이후 안가는 6공 정권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안가를 많이 이용하지는 않았으나, 지난 95년 대통령 비자금 조사 과정에서 “재임 기간 중 별실(안가)에서 기업 대표들과 독대, ‘성금’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과거 권력자의 비밀 연회장으로 쓰이곤 했던 안가가 권력자의 비자금 산실로 뒤바뀌었던 셈이다.
3~5공을 거쳐 6공 때까지 이어진 안가는 궁정동 6채와 삼청동 청운동 각 3채씩 모두 12채였다. 이들 안가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YS의 지시에 따라 곧바로 철거되었다.
97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무렵 일각에선 안가 복원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정권 인수인계 작업을 하면서 일부 비서진들 사이에서 식사시간을 이용한 외부인사와의 만남 자리 필요성이 강조됐다는 후문이다. 안가와 같이 보안을 유지할 수 있는 장소를 고려했던 것.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이 언론에 흘러나가자 DJ 정권에서는 일각의 의견 자체를 ‘없었던 일’로 돌렸다.
다음호에 2탄 '안가에서 생긴 일'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