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800킬로미터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서게 된 엄마와 아들. 모자는 느릿느릿 걸으며 길 위의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세계 곳곳에서 온 여행자들과 만나며 여태 해온 것과는 조금 다른 여행을 경험한다. 반밖에 못 걷고 돌아온 봄날, 멈췄던 그 자리로 돌아가 남은 길을 마저 걸은 가을날, 두 계절의 이야기가 책 속에 담겨 있다.
카미노를 걷는 동안, 아들은 엄마의 여러 모습과 마주한다. 봄처럼 환하게 웃는 여고생, 왈칵 눈물을 쏟는 길 잃은 어린아이,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 멀리 두고 온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 시아버지 제삿날 못 챙길까봐 걱정하는 며느리….
여태 한 번도 궁금해 하지 않았던 엄마의 수많은 표정과 다양한 인생이 길 위에 펼쳐지면서 아들은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마냥 투정부려도 될 만만한 사람이 아닌, 매일 잔소리를 해대는 골치 아픈 참견꾼이 아닌, ‘엄마’라는 사람의 삶을 떠올려보고 미처 몰랐던 여러 모습에 놀라며, 마침내 그녀의 삶을 존중하게 된다.
모자에게 카미노는, 산티아고는 급하게 달려가야 할 목적지가 아니다. 느릿느릿 걷다가 만난 느린 여행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머니 가방이라도 들어드리겠다‘며 기어코 짧게라도 함께 걸은 친구 영진, ’카미노 가족‘이 된 마이애미에서 온 애순이 아줌마,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며 함께 걷는 브룩 가족, 산소통을 짊어진 채 간신히 걸음을 내딛는 노부부까지. 산티아고를 찾은 사연은 저마다 달랐지만 모두 천천히 길을 음미하고 마음을 치유하며 함께 걷고 있었다.
이 글의 저자는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도다. 책 속에는 저자의 감성이 묻어난 드로잉, 사진들이 함께 담겨 있다. 산티아고의 봄, 가을 풍경은 초판 한정 독자 선물인 사진엽서 부록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원대한 글 그림 / 황금시간 / 296쪽 / 1만 3800원
김수현 기자 penpop@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