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한 신경전에 누워 침뱉기도
▲ 김종빈 검찰총장(왼쪽) 허준영 경찰청장 | ||
그러나 마지막 회의에서도 양측의 합의가 이뤄질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어서 지리한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합의를 종용하고 있지만 양측 모두 양보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동안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진 양측은 ‘협상 결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로부터 시작될 2라운드 공방을 준비하고 있는 분위기다.
검·경 양측의 협상은 시작한 지 6개월째가 넘어가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됐다. 그 분수령은 지난달 11일 열린 공청회다. 검·경 청중들 간에 고성과 막말이 오갔던 이 자리는 수사권 조정을 바라보는 양측의 시각과 이해관계가 얼마나 대립돼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후 양측은 온갖 패러디를 동원한 인터넷 여론몰이와 원색적 비방전, ‘치사한’ 신경전을 노골화하며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수십 년 동안 검찰에 대한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경찰의 공세가 전방위적이다. 경찰청은 지난달 25일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인터넷에 올라온 글모음을 언론에 ‘참고자료’라며 배포했다. 대부분이 검찰을 일방적으로 비방하는 내용들이다.
이 글모음에서 한 경찰관은 “지방 유명 사창가 포주 8명을 인신매매혐의로 체포했는데, 그날 바로 포주연합회 회장, 총무 등이 와서 당직검사가 누구인지, 그 검사와 가장 친한 변호사가 누군인지 알아냈다. 그 변호사와 ‘석방 한 명당 3천만원’을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는 소문이 온 유치장에 돌더니, 그날 저녁 한 명만 남고 모두 석방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변호사 혼자서 그 많은 돈을 먹고 입 싹 닦았을지 모르겠지만…”이라며 마치 변호사가 검사에게 로비를 해서 포주들을 풀어준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어느 여형사의 일기’라는 제목의 글은 “검찰청 당직(실)에서 저녁 8시께 전화가 왔다. ‘당직 검사님 들어갈 거니까 영장 올릴 게 있으면 9시까지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다. 당직은 원래 밤을 새는 것으로 생각해 ‘검사님은 집에서 당직하세요?’라고 물었더니 검찰 직원이 버럭 화를 내면서 관등성명을 대라고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한 중견 검사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글을 마구 인터넷에 올리는 일선 경찰들도 문제지만 이런 글들을 보도자료라며 언론에 배포하는 경찰 간부들의 상식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경찰은 또 다음날 경찰전문 사이트인 ‘폴 네티앙’에 ‘독도는 우리땅’을 개사해 만든 이른바 ‘수사권송’을 만들어 올렸다. ‘경찰청 동남쪽 택시 타고 20분, 무소불위 독재자 권력의 고향, 검찰이 아무리 자기가 한다고 우겨도 수사는 경찰이’로 시작되는 이 노래도 검찰에 대한 원색적 비방을 담고 있다. 최근 검찰 수사를 받고 자살한 피의자들을 빗대어 ‘대검찰청 나오면 한강다리 왜 갈까, 한강다리 지키느라 경찰 힘들어’ 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 같은 검찰에 대한 비방은 전국의 경찰관들이 경찰 관련은 물론, 청와대와 언론사, 심지어 검찰 홈페이지에도 경쟁하듯 올리고 있다.
수세적인 입장에 있는 검찰은 노골적이진 않지만 교묘하게 경찰을 깎아내리는 전술로 대응하고 있다. 우선 검찰은 ‘법의 날’인 지난달 25일 ‘인권보호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로 모두 경찰 것들만 거론한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검찰 보도자료가 예시한 사건들은 지난해의 불량 만두소 파동, 연예인 병역비리 사건, 인천시장 뇌물수수 사건, 광주 고교생 입시부정 사건,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등으로 모두 경찰 수사과정에서 피의자나 피해자의 인적사항과 수사기밀이 유출돼 문제가 됐던 것들이다. 검찰은 이 사건들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경찰이 피의사실을 부주의하게 언론에 발표하는 바람에 피의자들의 인권이 침해됐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한마디로 ‘치사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며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검찰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국가인권위에 조사 의뢰한 것이 바로 얼마 전인데, 검찰의 기억력이 이렇게 나쁜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검·경은 또 이날 동시에 대대적으로 각자의 인권보호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수사권 확보 싸움이 명분상으로는 ‘검·경 중 누가 더 국민들의 인권보호에 앞장서고 있는가’라는 쟁점으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인권정책마저 경쟁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날 검·경 양측이 발표한 ‘밤샘조사 금지’나 ‘조사과정의 변호인 입회 허용’ 등 대부분의 방안들이 기존에 이미 밝힌 재탕·삼탕이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수사권을 놓고 벌이는 검·경간 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드디어 청와대가 직접 나서는 상황까지 도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1일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수사권 조정이 서로 조직의 영역이 걸린 문제다보니 치열한 것 같은데 어느 때인가 대통령이 한번 참여해서 토론하고 마지막 결론을 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본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측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당장 수사권 조정을 결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양측의 조속한 협상을 촉구한 취지라며 일단 2일 수사권조정자문위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자문위에서 협상이 매듭지어지지 못한다면 노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많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이 자신들을 지지한다고 믿고 있는 경찰측은 검찰에 대한 마지막 공세에 피치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반면 경찰과의 수사권 문제뿐만 아니라 형사사법절차 개편과 관련, 사법제도개혁추진위와의 싸움도 동시에 벌이고 있는 검찰은 힘겨워 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경찰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가뜩이나 궁지에 몰려 있는 검찰을 더욱 압박하게 돼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며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일 자문위 협상이 결렬된 뒤에도 싸움이 오랫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