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씨 장부’ 등장 누가 떨고 있나
재력가 송 아무개 씨 살해를 사주한 혐의로 구속된 김형식 서울시의회 의원이 지난 3일 서울 강서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강서경찰서는 피해자 송 씨의 사무실에서 2010~2011년 여러 차례에 걸쳐 김 의원이 5억 2000만여 원을 빌린 차용증을 발견하면서 채무 관계에 의한 범행으로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김 의원이 송 씨가 소유한 빌딩 등이 있는 지역을 상업지구로 용도를 변경하는 조례안을 낸 사실이 드러나면서 로비 의혹이 제기됐다.
여기에다 송 씨가 매일 만난 사람과 지출액 등을 적어 놓은 장부에 정치권 인사들과 공무원들의 명단이 적혀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강서 지역 정가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강서구는 야권 우세 지역으로 이번 9대 시의원 선거에서도 강서구 광역의원 지역구 4곳 중 3곳에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이 당선됐다. 김형식 의원도 강서구갑 지역의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아래서 10년간 일한 보좌관 출신이자 2010년부터 신 의원의 지역구에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인사라는 점에서 향후 새정치민주연합에 어떤 여파가 몰아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에는 새누리당 인사들마저 공식 입장을 제외하고는 ‘입단속’을 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 새누리당 당직자는 “중앙에서는 새누리당에서도 김 의원에 대한 뒷말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득을 본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며 “중앙당에서는 괜히 입을 놀렸다가 야권 탄압이라는 역공격을 당할지 모르니 가만히 있으라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한 지역 정치 관계자는 “나도 뉴스 보면서 놀란다.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모두가 이 부분에 대해 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역 정가가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암암리에 ‘송 씨 로비 리스트’에 대한 의혹이 퍼져 나가고 있다. 송 씨는 강서구 지역에서 유명한 재력가였다. 1990년대에 S 산업 관리인으로 일하던 송 씨는 아내의 먼 친척인 S 산업 사장 이 씨의 재산을 조금씩 사들여 강서구 제일가는 부자가 됐다. 송 씨를 오래전부터 지켜봤다는 전직 강서구청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회고했다.
“부자가 된 송 씨는 세입자들이 장사가 안 돼 나가려고 하면 권리금 15%를 줘야 나갈 수 있게 하는 등 악명이 높았다. 장사가 잘 되는 빌딩에 세입자를 쫓아내고 웨딩홀을 지은 적도 있다. 이런 부분을 조언하려고 해도 주변의 말을 전혀 안 들었다. 골프 연습장을 할 때 제대로 주차장을 안 만들어 손님들이 남의 집 앞 여기저기에 주차를 해 동사무소에서 뭐라고 했더니 동장에게 ‘내 사무실로 오면 동장에게 돈 주겠다’라고 로비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동장이 그 행동이 괘씸해 혼쭐을 내준 적도 있다. 그때 동사무소와 자주 마찰을 빚었다.”
송 씨를 살해한 팽 아무개 씨가 지난 3일 서울 강서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시의원에 출마한 적이 있는 지역 정치 관계자는 “예전부터 송 씨와 지역 정치인의 로비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김 의원은 예상 밖의 인물이라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김 의원은 평소 행실도 바르고 품성이 솜털같이 부드러웠다. 김 의원과 친하게 지냈던 A 씨가 오히려 송 씨 로비와 관련돼 있다는 말이 더 많았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B 스포츠센터 사건’을 예를 들며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지역 내 스포츠센터가 시유지를 사용하지 못해 싼값에 경매에 넘어가자 이걸 송 씨가 낙찰받았는데 송 씨가 용도 변경을 하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는 것. 특히 A 씨의 이름이 그때 많이 거론됐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김 의원은 일종의 행동대장 격이었다. 평소 하는 걸 보면 그랬다. 토지를 변경하려면 김 의원 한 명의 힘 가지고는 어렵다. 송 씨는 지출내역 등을 일일이 메모해놨다고 하는데 그 안에 여럿 있지 않겠느냐”면서 “경찰이 초기에는 큰 사건을 다뤄서 기고만장했는데 물증을 못 잡아 위에서 압박을 받아왔다고 알고 있다. 이제 검찰로 넘어갔으니 김 의원의 살인교사 혐의에서 정치권 로비까지 조사가 확장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로비 의혹과 관련된 인사들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A 씨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같은 지역구에서 활동했으니 김 의원과 친했던 것은 당연하다. 김 의원이 그렇게 돼서 마음이 안 좋다”면서도 “해당 의혹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 사실이 전혀 없고 김 의원이 검찰에 송치됐으니 조사 결과를 보면 알지 않겠느냐”고 의혹을 부인했다.
또한 김 의원의 지역구 국회의원이자 김 의원과 오래 일해 온 신기남 의원 측도 송 씨의 로비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즉각 부인했다. 신 의원 측은 “공천할 때 추천을 했던 이유는 일을 도와줬던 의리 정도지 돈과 관련된 건 전혀 없다”며 “신 의원은 그런 것을 혐오한다. 털어도 나올 것이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