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의 정상들은 공식 방문 외에 세계 도처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서 수시로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미 공식방문을 통한 두 차례 정상회담 외에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 핵안보 정상회의,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5차례나 만나 우의를 다졌다.
이번 시 주석 방한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이다. 박 대통령은 미국 일본 중국의 순서였던 한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해외순방의 공식을 깨고 미국 다음으로 중국에 갔다. 시 주석이 한국을 단독 방문하는 것이나 그것도 동맹관계인 북한에 앞서 방문하는 것은 박 대통령의 파격에 상응하는 파격의 답례다.
한중 수교 전 중국 주석 가운데 북한에 간 것은 1963년의 류샤오치(劉少奇), 1978년의 화구오펑(華國鋒), 1988년의 양상쿤(楊尙昆) 주석 등이고, 장쩌민은 주석 취임 전 총서기 시절인 1990년에 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중국의 최고 권력자였던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덩사오핑(鄧小平)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생전에 북한을 찾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을 방문한 주석들도 명칭만 주석이었을 뿐 마오와 덩 치하에서 2인자이거나 과도기적 지도자였다.
한중 수교 이후 눈부신 경제교류를 반영, 정치 외에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인적교류가 광범했다. 1995년 11월 장 주석이 중국 국가주석으론 최초로 한국을 방문했고, 후 주석도 2005년 11월 평양 방문 한 달 뒤 서울에 왔다. 두 사람 모두 서울에 오기 전 평양을 먼저 들른 것은 북한에 대한 배려였다. 시 주석 역시 2009년 부주석 시절 서울에 오기 전 평양에 먼저 들른 적이 있었지만 이번 주석으로서의 방한에 그런 배려는 생략됐다.
시 주석의 대북 인식에는 북한이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12년 1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2013년 2월 3차 핵실험 등 도발을 감행했고, 작년 12월엔 북한 내 친중파의 중심이었던 장성택을 처형하는 등 야만적인 조치를 자행한 것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또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권력기반이 취약하다는 판단에다 나이차가 30세 이상이나 되는 아들뻘의 김정은과 마주하기가 껄끄러운 면이 있다. 순서로 보아 시 주석이 평양에 가기보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이 선행돼야 할 것인데 이번 한중공동성명에서 더욱 명백해졌듯이 북한의 핵 포기가 없는 한 그것도 가까운 장래에는 어려울 전망이다.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한 북한의 당혹감은 6월 29일과 7월 2일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면서 6월 30일에는 적대행위 중단에 관한 국방위 ‘특별 제안’을 내놓는 등 허둥대는 모습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핵과 경제 개발을 병행 추진한다는 북한의 이른바 ‘병진론’은 이번 시 주석 방한으로 설 자리를 확실히 잃었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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