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청부의 경우 그 지시 내지 교사는 아주 은밀하다. 그 증거는 살인자의 진술뿐이다. 범인의 입에 따라 살인을 부탁한 사람의 위치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생긴다. 청부 살인범은 도덕이나 양심이 아예 없다. 계약이라고 하면서 살인을 하나의 용역계약으로 인식했다.
그들의 범죄설계와 집행 그리고 도피는 한편의 잘 짜인 각본이다. 해외로 도피한 후 잡혔을 경우의 수사까지 치밀하게 대비한다. 지시자와의 관계 고리를 끊는 게 첫째다. 죽일 의사가 없었는데 우발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만든다. 살인을 청부한 자는 무죄가 되고 집행한 자도 과실치사죄의 가벼운 형으로 끝난다. 그 대가는 크다. 거액이 제시되고 자식을 대학까지 책임지겠다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각본에는 잡혔을 경우 대질과정을 통해 조서에 기록될 내용까지 세세히 있다.
그렇게 법을 비웃으면서 빠져나가는 경우를 봤다. 이단교주가 사람을 죽이고도 잘 살아간다. 조폭 두목이 돈벌이로 청부살인을 한다. 살인범들을 뒤에서 봐주기만 하면 걸릴 염려가 없다. 지시자와 집행인 사이의 균열이 생기지 않는 한 진실은 영원히 어둠속에 묻힐 가능성이 많다.
국민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점점 더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회다. 도덕성은 돈으로 대체되고 살인의 미제사건은 늘어간다. 일반 시민들까지 언제 어디서든지 살해될 위험성이 있다. 범죄는 날고 있는데 그들 사이의 은밀한 지시를 밝혀내는 수사는 원시상태에 머물러 있다. 수사관이 끙끙대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 범죄인들은 자기들끼리 눈짓하고 쪽지 돌리며 비웃고 있다. 수사라는 게 조서를 꾸미는 데 에너지의 대부분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법정 증언도 뒤에서 돈으로 흥정되는 걸 본 적이 있다. 한 명의 증인이 말을 바꾸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관련된 증인들이 모두 말을 일치해서 바꾸면 절대적이다. 악마가 그런 상황을 만들어 주겠다면서 수십억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연출에 판사는 무력하다. 그럴 듯한 논리와 거짓 그리고 허위증거가 이긴다. 기록만 보고 판단하는 대법원은 더 무력하다. 법관이 철학을 가지고 이 사회를 위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
거짓말과 거짓 증거가 판치는 사회에서 국민들의 생명은 위험하다. 살인청부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려면 단호한 법적조치가 필요하다. 지시자와 집행자 사이를 완벽하게 떼어놓아야 한다. 거액의 돈을 벌어도 목숨이 없어지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법은 살인범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목숨이 위협을 받아야만 무도덕한 직업살인범들은 입을 열었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