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친박에 연결”…거물급 걸리나
김광재 전 이사장의 자살로 주춤했던 검찰 수사가 최근 철도시설공단 전·현직 임직원 30여 명을 소환조사하면서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경 철도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D 사는 대구고를 졸업한 전직 정당인을 회사 고문으로 영입했다. 철도시설공단에서 발주하는 사업을 따내는 데 우호적인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로비용’이었다는 것이다.
D 사의 한 임원은 “현 정부 들어 잘나가는 대구고 라인을 활용하면 입찰에서 유리하다는 소문이 철도업계에서 파다했다. 우리뿐 아니라 업계에서는 대구고를 졸업한 유력 인사를 경쟁적으로 데려가려 했고, 또 실제로 수십억 원대 사업을 따낸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당초 ‘영남대 라인’이 철도 로비 몸통으로 의심받았지만 대구고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광재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도 대구고 출신이다.
일단 수사팀은 레일 체결장치 수입·납품업체 AVT가 지난해 호남고속철도 납품업체로 선정되는 과정에 로비가 있었는지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또 AVT는 지난 2012년부터 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하는 궤도공사 부품 납품을 사실상 독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VT의 이 아무개 대표가 비자금을 조성해 철도시설공단 간부들과 정치권 인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에 대한 증거를 포착했다.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형식 서울시의원 역시 이 대표로부터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현직 감사원 김 아무개 씨는 AVT에 유리한 감사 결과를 내고 차명계좌를 통해 수천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이미 구속됐다. 김광재 전 이사장과 간부 한 명이 자살하면서 주춤한 모습을 보였던 검찰 수사는 최근 공단 전·현직 임직원 30여 명을 대거 소환조사하는 등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철도시설공단을 겨냥하고 있는 검찰 수사의 종착지는 결국 권력형 게이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팀 관계자는 “지연과 학연으로 똘똘 뭉친 철피아들이 이권을 위해 정치권 등을 상대로 로비를 한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현재 특수부 4개 부서의 모든 인력이 관피아 척결에 올인하고 있는 상태다.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결국 누가 대어를 낚을지 싸움”이라고 말했다. 수사팀이 정치권을 타깃으로 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광재 전 이사장 수첩에도 “정치로의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갔다. 끝에는 업체의 로비가 기다리고 있더라”며 정치권과의 커넥션 의혹이 담긴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앞서의 수사팀 관계자는 “김 전 이사장 유서 내용은 업체의 정치권 로비가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나타낸다. AVT 사세가 2012년부터 급성장했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AVT의 한 직원은 검찰 수사에서 “이 대표가 김 전 이사장을 공략하기 위해 영남대를 나온 권 씨를 2011년 고문으로 영입하는 등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안다. 실제로 권 씨는 AVT와 이 대표를 위해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검찰은 권 씨가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철도 납품계약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권 씨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청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조사 과정에서도 권 씨가 현 정부 실세 친박 의원, 국회 관련 상임위 의원들을 이 대표에게 소개해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 대표가 이들과 만났다는 술집과 음식점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권 씨로부터 소개받은 정치권 인사들에게 돈을 건네줬는지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권 씨는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과 수석 부대변인 등을 거치긴 했지만 정치권에서 그다지 주목받았던 인사는 아니다. 권 씨가 구속된 후 정치부 기자들조차 그의 이력을 수소문했을 정도다. 권 씨는 주로 친이계와 가깝긴 하지만 경남 지역 친박 의원들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검찰은 정권 초 진행하다 지지부진했던 철도 부품업체 S 사에 대한 수사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S 사는 고속철도 궤도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담합을 주도하고, 철도업계 고위직 인사를 영입해 로비를 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수사는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했고 이 과정에 현 정권 유력 인사의 외압설이 돈 바 있다. 검찰이 다시 수사에 나설 경우 수사에 부당한 압력 여부가 드러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도 “김진태 총장뿐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보이고 있는 수사다. 성역이 있을 수 있겠느냐. 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해당 정치인은 S 사와의 유착설로 이미 내사를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