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직거래 ‘무대’한테 걸리면?
지난 7월 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선출된 직후 적지 않은 여의도 호사가들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당 대표급 원내대표가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이명박 정부 세종시 수정안 정국에서 충남지사 직을 던지고 나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을 훔쳤던 그는 줄곧 ‘곁박(곁다리 친박)’이었지만 이번 전당대회로 ‘친박 최후의 보루’로 자리매김했다는 말이다. 새누리당 내에서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인사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16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무성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태호 최고위원, 이완구 원내대표, 김무성 대표, 강창희 의원, 이재오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박 대통령은 겉으론 거리를 두고 담담한 척했지만 여러 정황에서 ‘김무성만큼은 안 된다’는 의지를 보여 왔다. 지난해 서청원 의원이 국회로 들어온 것에서부터, 전대 출마자 중 친박계 내부가 교통정리를 통해 표 분산이 없도록 후보 숫자를 둘(서청원 홍문종)로 줄였다. 전당대회에 박 대통령이 굳이 참석해 축사한 것은 모두 고도의 정치행위로 볼 수 있다. 당 대표를 식물 대표로 만들고, 청와대는 곧 여당 원내지도부와 다이렉트로 거래하거나 여·야·청 내지는 여·야·정 정례회동을 통해 현안 해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곧 드러나게 될 것이다.”
전당대회 바로 다음날인 15일 만나 들었던 이 인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실상은 곧바로 드러났다. 15일 김 대표를 포함한 당 신임 지도부가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만나 인사했지만 박 대통령이 인사와 관련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17일 언론 보도 등으로 알려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15일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 지명을 철회하면서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를 새 후보로 지명했고, 비록 본인이 사퇴하긴 했지만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려 했다. 정성근 후보자 사퇴에서부터 황우여 후보자 지명까지 모든 것이 깜깜했던 김 대표로선 크게 머쓱해지는 장면이었다. 이후 김 대표는 알고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기류는 바뀌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정치권 동향을 수집하는 한 기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가 회동한 10일 주고받았던 말들이 다 현실이 됐다. 야당은 2명(김명수 정성근)은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박 대통령은 김 후보자 지명만 철회했다. 그런데 시차를 두고 다음날 정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셈이니 야당의 주문이 그대로 먹힌 것 아니냐. 앞으로 청와대가 이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은 이런 일들 때문이다.”
지금은 참겠지만 김 대표도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란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 19대 총선 공천 정국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뒤 신당 창당 후 출마라는 모두의 예견을 뒤로하고 ‘불출마 백의종군’을 선언했던 그로선 지난 대선부터 지금까지 박 대통령을 많이 도운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 세종시 수정안 정국에선 박 대통령으로부터 “친박계에는 좌장이 없다”는 말을 들었고, 원내대표에 나서려 했을 때도 “알아서 하시라”는 말을 들었던 김 대표다. 폭발할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만약 김 대표가 대권에 욕심이 있다면 의도적 긴장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본인이 호락호락한 인사가 아니라는 것, 만약 정권을 잡으면 정권 전체를 들쑤실 수도 있는 인물임을 알게 모르게 알릴 것”이라며 “황우여 전 대표처럼 청와대 파출소장 역할만 해서는 아무 세력도 모을 수 없다는 것을 본인이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이런 김 대표를 배제하고 대여 파트너로 이완구 원내대표를 썼다가는 더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이 원내대표 측근과 만났다는 한 인사가 전해준 말이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시한부 총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정 총리가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본인이 후임 총리감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해진다. 청와대에서도 책임총리감보다는 인사청문회를 무사통과하고 시키는 일을 척척 열심히 해줄 성실한 사람을 찾을 것이란 얘기다. 이 원내대표가 총리에 마음이 있다면 이번 원내지도부는 ‘청와대 제2파출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당내에서 역풍이 일 가능성이 커진다. 여당 지지도가 떨어지면 국회의원 다 죽는데 누가 그걸 지켜만 보고 있겠는가.”
김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숨죽이고 있던 초·재선 의원들이 ‘이제는 목소리를 내자’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한다. 특히 이번 전대에서 한 명의 후보도 내지 못한 TK(대구·경북)에선 “김 대표도 청와대에 할 말 하겠다고 했으니 우리도 정부나 여당이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이야기합시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TK 말고도 전대 직후 지역 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김무성 체제하에서의 20대 총선 정비와 준비’를 주제로 논의를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청와대가 이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줄수록 조기 레임덕은 더 빨리 찾아올 것이란 말도 있다. 김 대표가 과거 진영 전 복지부 장관이나 전여옥 전 의원, 유승민 의원 등 온건 비판론자들과는 다른 강성파이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지나가는 말로 “김무성이야말로 유일하게 박근혜 대통령에게 레이저 맞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이라고 했다.
이완구 원내대표,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지도부가 김 대표를 포위하더라도 이미 친박의 힘이 드러난 마당이라 별 볼 일 없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요즘 친박을 두고선 ‘페이퍼 컴퍼니’를 빗대 ‘페이퍼 계보’라고 말한다.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이야기가 회자하는 까닭은 2년 전 전당대회와 비교하면서다. 지난 2012년 5월 이명박 정부에서 여당 전당대회 때, 7명의 후보 중 비박계는 심재철 원유철 의원이었고 득표율은 15% 남짓했다. 85%를 친박계 후보들이 장악했다. 친이계는 완전 죽을 쒔다. 국회의장도 친박계인 강창희 의원이 선출될 정도였다.
이번 전당대회는 9명이 출전했는데 비박계가 70%를, 친박계가 30%를 가져갔다. 국회의장은 정의화 의원이 됐다. 당심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박근혜 효과’는 없었다. 친박이 권불십년은 고사하고 권불2년도 채 되지 않는 모양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