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싸인 ‘구마사제’ 국내에도 수백명 활동”
독일에서 구마식을 받다 사망한 아넬리제 미켈. 당시 몸무게는 30㎏에 불과했다.
“신부님, 우리 딸아이 몸에 악마가 들어왔습니 다. 의사들도 제 딸아이를 치료하지 못하고 있어요. 부디 주교님께 엑소시즘을 요청해주세요.”
1973년 여름 서독 바이에른주. 악마가 들렸다는 소녀, ‘아넬리제 미켈’(당시 21세)의 어머니는 엑소시즘을 전수 받은 에른스트 알트 신부를 찾아 간곡하게 요청했다. 에른스트 신부는 2년 동안 아넬리제의 모습을 신중히 지켜보다가 급기야 주교에게 ‘엑소시즘 허가증’을 내달라고 요청한다. 아넬리제가 거미와 석탄을 삼키고 심지어 자신의 소변을 마실 뿐만 아니라 집안에 있는 십자가를 훼손하고 자해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에른스트 신부는 악마가 아넬리제를 잠식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신부: “주님의 사자로서 내가 왔다.”
아넬리제: “십자가, 기도, 그 따위로 네 딸을 구한다고?”
신부: “사악한 마귀에게 명하노니 어서 네 정체를 밝혀라!”
아넬리제: “나는 카인에게도 있었고 유다와도 함께했으며 네로의 몸속에도 있었고! 히틀러와도 함께했었다! 난 인간의 지배자 루시퍼다.”
아넬리제를 지배하는 악마와 에른스트 신부의 싸움은 이후 약 1년간 진행됐다. 2~3일에 한 번씩, 길게는 4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진행됐던 엑소시즘은 결국 아넬리제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아넬리제가 사망할 당시 몸무게는 30㎏에 불과했고 얼굴은 말도 못하게 흉측해졌다. 마지막 순간 아넬리제는 “엄마 지금 너무 무서워요”라는 말을 남겼다. 이 얘기는 모두 실화다.
아넬리제의 죽음을 둘러싸고 의학계와 종교계의 의견이 대립됐지만, 엑소시즘은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2일 로마 교황청이 신부의 퇴마 행위를 공식 인정함으로써 엑소시즘은 더욱 공신력을 얻게 됐다. 엑소시즘 능력을 보유한 신부가 모인 ‘국제퇴마사협회’는 30개국에서 250여 명이 가입돼 있다.
그렇다면 국내 엑소시즘 상황은 어떨까. 한국 가톨릭계에 따르면 국제퇴마사협회에 가입한 한국인 신부는 현재까지 없다. 다만, 국내에서 퇴마사 활동을 하는 신부는 다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에서는 마귀를 쫓아낸다는 뜻으로 ‘구마(驅魔) 사제’라고 부른다. 구마사제로 활동하고 있는 한 신부는 “국내에서는 구마사제라는 직책이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구마의 은사를 입은 신부를 그렇게 표현할 뿐이다. 전국 곳곳에서 수백 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누가 구마사제인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라고 전했다.
구마의식 역시 베일에 가려져 있다. 마귀에 의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이탈리아의 유명 구마사제 풀비오 디 풀비오 신부는 “악마에 의해 고통 받는 사람들은 가끔씩 개인적으로 깊은 비밀이라든지 도저히 공개할 수 없었던 수치심 등을 털어 놓아야 할 때가 있다. 이 경우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줘야 하며 구마기도 또한 비공개적으로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종교계에 따르면 마귀에 들린 증상은 여러 가지다. 국제퇴마사협회를 창설하고 이제까지 약 7만 건의 구마의식을 해온 가브리엘 아모르 신부(89)는 2012년 한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못과 유리조각, 손톱이 담긴 주머니를 꺼내 보였다. 그는 “구마의식을 하면서 마귀에 들린 사람이 토해낸 조각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집어 삼키는 증상은 앞서 언급한 아넬리제의 사례와 비슷하다. 이밖에 전혀 알 수 없는 외국어나 고대어를 하거나 십자가 등 성스러운 물건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경우에도 엑소시즘이 필요하다고 판명한다.
직접 엑소시즘 장면을 목격한 한 관계자는 “어머니가 원래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이셨다. 무속활동을 하는 도중에 너무 시름시름 아파 나중에는 귀신을 떼어내기 위해 엑소시즘을 했다. 구마사제와 봉사자들의 기도로 엑소시즘이 시작되자 아기귀신 등 여러 귀신이 나왔다. 특히 신기했던 것은 성경이었다. 성경만 쥐어줬다 하면 ‘너무 뜨겁다’고 몸부림을 치거나 어느 날은 ‘물에 빠질 것 같다’고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이후 치료를 꾸준히 하자 결국 귀신도 떨어져 나갔고 한동안 건강하게 사셨다”라고 전했다. 한국가톨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 전 회장 박효철 신부는 “악마의 종류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경우가 여러 가지다. 악마의 일반적인 현상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의학계나 심리학계에서는 악마가 들린 증상들을 히스테리, 간질, 다중인격 등으로 해석한다. 특히 뇌 질환의 일종인 ‘투렛 증후군’을 두고 빙의 현상이라 착각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투렛 증후군은 근육 및 성대 경련 증상이 특징이다. 일각에서는 퇴마사가 공포에 빠진 치료자에게 최면을 거는 것을 엑소시즘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이무석 전 전남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듯 퇴마사는 귀신의 공포에 빠진 이에게 최면을 거는 몫을 담당한다”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종교계에서는 여전히 마귀는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가톨릭뿐만 아니라, 굿이나 기 치료 등으로 빙의 현상을 치료하는 ‘토종 엑소시스트’들의 견해도 마찬가지다.
20년간 퇴마치료를 했던 이정식 퇴마사는 “병원을 가거나 어떤 과학적 치료를 해도 절대 낫지 않는 증상이 있다. 그럴 때 최종적으로 엑소시스트를 찾아와 치료를 받곤 한다. 영은 분명히 있다. 끝내 세상을 뜨지 못하는 영이 허약한 사람에게 스며 들어가 빙의가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엑소시즘에 대한 여러 공방은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교황청에도 악마가 숨어 있다? 프란치스코가 손 얹자 남성 경련 “퇴마 의식” “그냥 기도” 논란 프란치스코 교황이 휠체어 탄 남성의 머리에 손을 얹자 경련을 일으킨 모습을 보고 퇴마의식이냐 아니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진출처=유튜브 캡처 국제퇴마사협회를 창설한 가브리엘 아모르 신부는 “로마 교황청에도 악마가 숨어 있을 만큼 악마는 강력하다”고 밝혔다. 악마 퇴치의 필요성을 느낀 국제퇴마사협회는 그동안 2년마다 한 번씩 로마에서 회의를 가졌다. 하지만 로마 교황청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기까지는 무려 15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국제퇴마사협회는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총에 맞고, 2009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성당의 통로를 걷던 중 한 여성에게 밀쳐 넘어진 사고들을 모두 악마가 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가톨릭 사제들은 여전히 퇴마 의식에 대해 물음표를 갖는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악마를 실체로 파악하기보다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퇴마 의식에 상당한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해 5월에 발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탈리아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다 휠체어를 탄 한 남성과 마주쳤다. 교황이 남성의 머리에 몇 초간 손을 얹자 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이후 이 사건이 화제가 되자 교황청은 “그저 기도만 한 것일 뿐”이라고 부인했지만 일각에서는 ‘퇴마 의식 아니냐’는 추측이 끊임없이 일기도 했다. [환] |
누가 왜 빙의 되나 마음의 병 있는 가족 몸에 ‘쓰윽’ 영화 <엑소시스트:더 비기닝>의 한 장면. 엑소시스트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기운이 약하면 ‘빙의’가 되기 쉽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식 퇴마사는 “이제까지 수천 명을 치료해봤다. 모두 사람의 기, 의식의 문제로 빙의라는 불치병을 앓게 된다”라고 전했다. 빙의 현상은 모르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주변, 가까이에 있는 사람 탓에 빠진다는 게 엑소시스트들의 의견이다. 억울하게 죽은 조상의 경우 자신의 기운과 동질성을 가진 가족에게 스며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정식 퇴마사는 “영이라는 것은 힘이 약하다. 쉽게 생을 놓지 못하니까 주변을 맴돌다 평소에 친분이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이다. 문제는 그냥 스며들기만 하면 큰 상관이 없는데, 영이 그 몸을 지배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니까 문제가 된다”라고 전했다. 빙의가 되면 영의 생전 모습이 그대로 빙의된 사람의 몸에 투영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영이 술과 도박을 좋아했다면 그대로 그것이 표현되고, 영이 폭력적이었다면 온순했던 사람도 180도 바뀌어 버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충남 공주에서는 퇴마의식을 벌이던 퇴마사가 빙의가 된 40대 남성 이 아무개 씨로부터 머리를 폭행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씨는 퇴마의식을 보고 있던 자신의 처남까지 폭행해 사망케 했다. 하지만 이 씨를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이 씨가 그럴 사람이 아니다. 평소 가족에게 너무 잘했다”며 입을 모았다. 퇴마사들은 ‘폭력적인 영’이 이 씨 몸에 스며든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빙의를 피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익명을 요구한 한 퇴마사는 “가족이 죽었을 때 그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생에 미련을 가진 영이 이를 붙잡으려는 주변 인물에게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교통사고 현장이나 자살한 영의 주변에서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항상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이정식 퇴마사는 “빙의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삶에 대한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다. 기가 강하면 귀신도 절대 접근하지 못한다. 억지로라도 좋은 생각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전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