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베일 속 코드인사’ 쑥덕쑥덕
▲ 신선희 국립극장장 | ||
문화관광부가 지난해 12월29일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원의 누나인 신선희 전 서울예술단 이사장을 국립중앙극장장으로 임명하자 문화·예술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15대 국회의원 입성 동기로 민주당 시절부터 돈독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는 신 의원과 정동채 문화관광부장관. 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신 전 이사장이 후보 추천 과정에서 문화 예술계 인사들의 강한 반대 기류가 있었음에도 결국 인사권자인 정 장관에 의해 최종 낙점됐다는 이유 때문에 인선 과정과 배경에 관한 각종 의혹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선임방식 왜 바꿨나] 추천위 명단도 비밀
신 극장장의 임명과 관련, 공모에 나선 후보들이나 문화·예술계 인사들 사이에서 강한 의혹을 제기하는 부분은 임명 전에 왜 극장장 선임 방식이 바뀌었느냐는 부분이다.
이미 논란의 조짐은 지난해 10월 문화관광부가 극장장 후보를 공모하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문광부가 전임 김명곤 극장장을 선출한 것과는 다른 방식의 임용 절차를 공개하자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렀다.
문광부는 지난 99년부터 공모를 통해 국립중앙극장장을 선출했다. 문광부는 당시 국립극장 운영심의회에 후보 추천을 의뢰했다. 문화관광부 예술국장이 당연직으로 포함된 총 8명의 운영심의회 위원들은 신원조회와 국가공무원법상 결격 사유 확인 등의 작업을 거쳐 두 명의 후보를 중앙인사위원회에 상정했다.
중앙인사위원회는 이들 두 명의 후보 중 김 전 극장장을 최종 후보로 확정했고, 임용권자인 문광부장관이 임용을 확정했다. 2002년 김 전 극장장이 연임하는 과정에서도 국립극장 운영심의회가 실적과 운영에 대한 평가를 담당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번 극장장 선임 과정에서는 운영심의회가 인사 추천과 심의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대신 문광부는 추천위원회라는 명칭의 또 다른 기구를 만들어 여기서 후보자들을 심사하고 세 명의 최종 후보자를 가려냈고 문광부장관은 이들 중 한 명을 선택했다.
극장장 공모에 나선 후보들은 이 부분이 석연치 않다는 입장이다. 문광부 소관 기구인 운영심의회가 학계 및 연극계, 음악계, 국악계, 무용계 등 각 방면의 전문가들과 민간 시민 단체 추천 인사 두 명이 포함된 정식 법정 기구라는 점에서 충분히 후보자들을 선별해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또다른 위원회를 만들어 따로 운영했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추천위 구성 과정과 명단이 인선 이후에도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부분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사안이다.
▲ 신기남 의원, 정동채 장관 | ||
후보로 나선 예술계 인사 A씨는 “주변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문화 예술 분야 전문가들에게 혹시 추천위원에 포함되는지를 물었는데 아무도 없더라”며 “추천위 구성 과정에서 한 쪽으로 편향된 인사가 대거 포함됐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털어놨다.
추천위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또 다른 후보자 B씨도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 6명을 들러리로 세운 것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며 “누구 한 명을 염두에 두고 숫자 맞추기가 행해진 게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논란이 격화되자 일각에서는 “심사위원 구성 자체가 민예총 출신 인사 등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돼 있었다” “문광부가 신씨 외 다른 사람에게 극장장 자리를 주기 싫어한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문광부는 “공모 방식이 바뀐 것도 아니며 특혜란 있을 수 없다”라는 입장이다. 문광부 관계자는 “임명은 규정된 법적 절차대로 행해졌다”며 “99년 김 전 극장장이 선임될 당시에도 운영심의회 인사들이 그대로 기관장 추천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돼 법적 절차대로 후보자를 선정했다”고 전했다.
[발표 늦어진 이유] 청와대도 껄끄러웠다?
선임이 한달 가량 늦어진 배경에도 궁금증이 쏠리고 있다. 문광부는 지난해 10월28일까지 15일간 후보자 접수를 받고 11월30일 극장장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극장장 선임은 한 달 뒤에 발표됐다.
후보자들에 따르면 10월 마지막 주 공모가 마감된 그 다음 주 추천위원회가 구성됐다고 한다. 그리고는 11월10일 1차 투표에서 후보 7명 중 신 전 이사장과 박인배 한국민족예술총연합 상임이사, 임진택 전 전주세계소리축제감독이 3배수 최종 후보자로 압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진 2차 투표에서 신 전 이사장이 7표를 받아 1순위 채용 후보자로 선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1표씩 받은 박 전 이사와 임 감독은 3차 투표에서 각각 5표와 4표를 받아 2, 3순위로 선출됐다.
정작 최종 후보자가 선정된 후 극장장 선임까지 시일이 걸린 것은 청와대 반대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후보자는 “중앙인사위원회는 이번 인사에 별다른 관여를 하지 않았다”며 “추천위 표결대로 1순위 신선희 서울예술단 이사장, 2순위 박인배 민예총 상임이사, 3순위 임진택 전 전주세계소리축제감독 안이 청와대로 올라갔는데, 청와대가 선뜻 최종 후보자를 낙점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만약 이 후보자의 말대로라면 문광부와 청와대 사이에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던 셈이다. 청와대가 재검증을 요청한 뒤 문광부 내에서 별다른 후속 조치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문광부와 청와대가 신 전 이사장을 최종 후보자로 조율하는 것 때문에 시일이 오래 걸렸을 수도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청와대로서는 일단 신 전 이사장이 서울예술단 이사장을 세 차례나 연임하는 과정에서 매번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내외부로부터 적잖은 비판을 받아왔고, 조직 운영에 있어 예술단 내부의 비판은 물론 국정감사에서조차 문제제기를 받은 전적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중론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