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 흩어지고 ‘용병’ 몰려온다
▲ 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최근 ‘용병식 조직원’들이 등장해 경찰이 조폭 현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월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4대 폭력’을 언급하면서 조직폭력을 맨 첫머리에 올려놓았다. 지난 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 대통령이 조폭을 직접 문제 삼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경찰도 비상이 걸렸다. 지금껏 다소 형식적으로 관리해 왔던 조폭 관련 자료와 파일들을 다시 모두 들추고 있다. 부산지방경찰청은 난리다. 그동안 관리해왔던 명단에 이번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빠진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 조폭 관리가 전면 재고되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과연 ‘전국구 조폭’의 총집결지인 서울은 어떤 상태일까. <일요신문>은 현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관리중인 ‘조직폭력 범죄 관리 대상’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여기에는 현재 25개파 3백92명이 관리 대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 초. 서울경찰청 조폭 담당의 한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조폭 관련 자료를 새롭게 만드는데 협조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최근 한 언론매체에 언급된 과거 유명 조폭 보스 출신 인사의 사조직에 대해서 물어오기도 했다.
그는 고충을 토로했다. 부산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최근 조폭들의 행태가 모두 ‘이런 식’이라면 경찰이 어떻게 사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느냐는 하소연이었다. 그가 언급하는 이런 식이란 바로 ‘용병식 조직원’들의 기용 행태다.
과거 70~80년대 조폭들은 그들 스스로를 ‘식구’라고 불렀다. 언론에서도 ‘서방파’니, ‘양은이파’니, 또는 ‘OB파’ 등을 ‘3대 패밀리’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90년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의 생존 형태는 바뀌었고, 21세기를 맞은 오늘날의 개념은 완전히 달라졌다.
서울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하나의 조직에 보스, 중간보스, 행동대장, 행동대원 등의 위계질서가 분명했다. 따라서 보스와 중간보스의 동향만 집중 체크해도 어느 정도 동태 파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보스는 없다. 실제의 ‘오너’는 조직 뒤에 숨어서 조정만 할 뿐이다. 그들은 사업가 행세를 하는 ‘회장님’이고 ‘사장님’이다. 조직원을 동원할 필요가 있을 때면 ‘깡패’ ‘양아치’ 등을 마치 용병과 마피아 식으로 기용한다”라고 전했다.
즉 과거와 같이 한 식구처럼 늘 떼를 지어 몰려다니거나 집단 합숙을 하는 경우도 아닌데다가, 뚜렷한 조직의 소속감도 없이 이 조직에서 저 조직으로 필요에 의해 치고 빠지는 것을 반복하는데 어떻게 그 많은 인원을 다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고충이었다.
그는 “주변에서는 자꾸 새롭게 발호하는 신흥 폭력조직을 색출하라고 하는데 그들의 실상은 그야말로 멋모르고 날뛰는 20대 동네 양아치들 수준”이라며 “문제는 그런 이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숨은 손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서울은 지방과 달라서 정작 거물들은 합법적인 기업인 행세를 하며 모두 뒤에 숨어서 조정만 한다. 집단 폭력 사태 등은 일어나기 힘들다”고 말한다.
실제 현재 서울경찰청이 관리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는 25개파의 면면을 보면 신흥조직보다는 과거부터 유명세를 타오던 굵은 조직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 계파 소속으로 포함된 이들 역시 과거 범죄 행위로 구속되거나 조사된 적이 있는 이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는 탓에 포괄적인 관리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의 각 관할 경찰서 별로 구분된 25개파 3백92명의 조폭관리 대상에는 ‘3대 패밀리’도 여전히 이름이 올라 있다. 범서방파의 김태촌씨 등 11명은 강남경찰서에, 양은이파의 조양은씨 등 28명은 노량진경찰서에 각각 관리대상으로 올라 있는 것. 하지만 김씨와 조씨는 여기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오랜 수감 생활을 마치고 최근 사회에 복귀한 이들은 현재 교회 신앙간증에 나서거나 식당 사업 등을 하며 조직과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다.
OB파의 파생 조직인 ‘신OB동재파’의 유아무개 등 13명은 서초서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곽아무개 등 10명의 ‘신송정리파’, 이아무개 등 12명의 ‘대흥동파’, 이아무개 등 9명의 ‘종진파’, 권아무개 등 13명의 ‘신구로동파’, 장아무개 등 12명의 ‘텍사스파’가 서울 강남 지역에서 집중 관리 대상이었다.
동대문과 청량리 등 서울 동부 지역에서는 박아무개 등 10명의 ‘화양파’와 윤아무개 등 7명의 ‘까불이파’, 이아무개 등 6명의 ‘대현파’, 박아무개 등 25명의 ‘상봉파’ 등 80년대부터 이 지역의 유흥가를 중심으로 암약해온 토착 세력들이 여전히 올라 있다. 서울 북부 지역은 역시 토착 세력인 박아무개 등 12명의 ‘상택이파’, 박아무개 등 9명의 ‘일훈이파’ 외에 신흥 세력인 이아무개 등 23명의 ‘신상계파’가 올라 있다.
종로 등 시내 중심가에는 이아무개 등 7명의 ‘신영광파’, 박아무개 등 12명의 ‘만식이파’가 세운상가 등 인근 지역의 유통업체 및 유흥업소 갈취 등으로 집중 관리 대상에 올라 있다. 서부 지역에는 강아무개 등 9명의 ‘모래내파’가 눈에 띈다.
영등포 등 남서부 지역에는 전아무개 등 63명의 ‘남부동파’, 김아무개 등 10명의 ‘신중앙파’, 박아무개 등 17명의 ‘래원이파’, 김아무개 등 12명의 ‘구로동파’, 강아무개 등 18명의 ‘진성파’, 김아무개 등 22명의 ‘범이글스파’, 박아무개 등 22명의 ‘신이글스파’ 등이 올라 있다.
서울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최근의 조폭 행태들로 볼 때 10여 명의 소규모 인원이 필요에 따라 이권개입에 의해 이합집산 하는 경향이 짙다”며 “과거에는 조폭 자체가 하나의 직업이었으나 지금은 유흥업소 직원, 건설업, 부동산업 등 따로 직업을 가진 채 조직을 옮겨다니는 경우도 많은 추세”라고 밝혔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조폭 관리 체계로는 부산 사태와 같은 조폭간의 난동이나 충돌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