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중에도 청취자에 웃음 전달
가수 겸 배우 유채영의 빈소가 2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영정 사진 속 유채영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유채영이 위암 판정을 받은 건 지난해 10월로 알려졌다. 건강검진을 받던 중 위암이 발견됐다.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부랴부랴 수술을 했다. 그녀와 측근들에 따르면 수술 당시 이미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였다. 이후부터 항암치료를 받았다. 견디기 어려운 치료였지만 방송 활동만은 멈추지 않았다. 물론 라디오 진행도 거뜬히 해왔다. 주위에 자신의 병을 굳이 드러내지 않았다. 라디오 제작진 역시 일부만 그의 항암치료 사실을 알았을 뿐이다. 한결같이 밝은 모습에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유채영은 대중에게 그룹 쿨의 멤버로, 테크노 춤을 추는 가수로, 코믹한 캐릭터의 연기자로 친숙하다. 데뷔는 1989년에 했다. 그룹 푼수들로 가요계에 발을 디딘 그는 1990년대 초 혼성그룹 쿨의 멤버로 활동하며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민머리 헤어스타일을 선보였다. 중성미를 앞세워 인기를 끌었고 남자 댄서 못지않은 춤 실력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1999년 솔로 가수로 전향한 뒤에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친근하고 밝은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영화 <색즉시공2> 드라마 <패션왕> <천명> 등에서 개성 강한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해온 가수 주영훈은 유채영의 부고에 “사랑하는 동료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늘도 비를 뿌리며 함께 울어줍니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채영아. 부디 아픔 없는 그곳에서 편히 쉬렴. 미안하다”라는 글로 고인을 추모했다.
유채영은 2009년 한 살 연하의 사업가 김주환 씨와 결혼했다. 남편 김 씨는 결혼 직전 매니저가 없던 유채영을 도와 매니지먼트 업무를 잠시 담당하기도 했다. 당시 서로를 살뜰히 챙기며 활동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기억하는 연예계 관계자들은 지금도 많다. 대부분 “금슬이 돈독했던 연인이었고 부부였다”고 추억하고 있다.
유채영 부부의 러브스토리는 유명하다. 유채영의 짝사랑에서 시작돼 결혼까지 이른 10여 년의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유채영은 쿨로 활동하던 1994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2009년에 결혼했으니 15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셈이다.
유채영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MBC 라디오 ‘좋은 주말’ 진행 모습과 그녀가 출연한 영화 <색즉시공2> 스틸컷.
2년 전 유채영은 한 방송에 출연해 남편과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했다. 당시 유채영은 “스무 살 때 남편을 처음 보고 첫 눈에 반했다. 그 뒤로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행동이 어색해졌다. 남편과 마음을 나누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수줍게 말했다.
그런 남편은 유채영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병마와 싸우는 순간에도 함께였다. 방송 관계자들은 유채영이 항암치료 중에도 라디오 진행을 할 수 있던 데는 남편의 든든한 지원과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김 씨는 상주로 빈소를 지켰다. 아내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아니면 아내의 마지막 길을 위로하기 위해 빈소를 찾은 이들에게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빈소를 찾았던 한 관계자는 “부부의 사랑이 대단히 깊었던 걸 알기에 그런 남편을 보는 일이 힘겨웠다”며 전했다.
유채영은 이달 초 라디오 진행 자리를 내려놨다. 항암치료로 건강을 되찾는 듯했지만 최근 급격히 악화된 탓이다. 그 뒤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7월 21일 한때 위독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외부로 그의 투병과 위독설이 알려진 시기도 이때다.
유채영의 투병 사실이 공개되면서 병원으로 취재진이 몰렸다. 방송사 카메라도 들이닥쳤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를 지켜봐야 했던 유채영의 가족들은 더욱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유채영 측 한 관계자는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상당한 고통이었다”고 했다.
동료들이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개그맨 정준하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유채영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창렬도 같은 뜻을 밝혔다. 하지만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그녀의 임종을 지킨 이는 연기자 김현주다.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언니동생 사이로 알려졌다. 김현주는 2~3일 동안 유채영의 병실을 지켰다.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따르던 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3일 동안 빈소를 지켰다. 개그맨 이성미, 박미선, 송은이도 한달음에 달려와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유채영은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은 부고를 알리며 “그녀의 생전 밝았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