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쩍벌춤’ ‘지퍼춤’ 사라지나
걸그룹 라니아는 전신 시스루 쩍벌춤으로 선정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연합뉴스
또한 이 법안은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과 계약을 체결할 경우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학습권, 인격권, 수면권, 휴식권, 자유선택권 등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는 조치를 계약에 포함해야 한다”며 “과다한 노출 행위나 지나치게 선정적인 표현행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가요계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일단 용역 시간에 의문을 제기한다. 가수들은 통상 목요일 케이블채널 Mnet <엠카운트다운>을 시작으로 일요일까지 매일 지상파 3사 음악 프로그램에 차례로 출연한다. 1차 드라이 리허설과 2차 카메라 리허설을 거친 후 실제 생방송 무대까지 서려면 하루를 꼬박 써야 한다. 신인 그룹의 경우 대기 시간은 더 길어진다. 족히 10시간이 넘는다. 이렇게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만으로 일주일에 할당된 40시간을 모두 쓰게 된다.
하지만 음악 프로그램은 그들의 본격적인 활동을 위한 발판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인지도를 쌓은 후 각종 행사 무대에 서고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 그들의 연습시간까지 포함하면 40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많은 가수들이 스타가 된 후 “하루에 2~3시간씩 자면서 연습했다”고 말하는 것만 보더라도 ‘주 40시간 용역’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
또한 “과다 노출과 선정성 문제 역시 구체적인 기준이 애매하다”는 불만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걸그룹과 솔로 여가수들이 치열한 노출과 섹시 경쟁을 펼친 것을 감안할 때 “이 기준대로라면 모조리 법을 어기게 될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걸그룹 AOA의 지퍼춤.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 금기시되는 이성교제에 대한 소속사의 지침 및 대응책 역시 달라질 전망이다. 무작정 이성교제를 규제하는 것은 ‘자유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항목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성교제가 금지돼 있다” “이성교제 규제가 풀렸다”고 우스갯소리처럼 했던 이야기들이 사실은 그들의 자유를 규제하는 대단히 위험한 계약 조항이었던 것을 깨달아야 할 시점인 셈이다.
각 기획사들이 우려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 법안이 일부 가수들이나 연습생들이 기획사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주 40시간 용역을 지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다수 가수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더 많은 기회와 인기를 얻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활동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실제로 일을 하지 않는 대기 시간은 용역에서 제외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회사에 반기를 드는 멤버가 생기면 이 법안이 기획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실제로 인기를 얻은 후 다른 소속사와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기 위해 원래 몸담고 있던 소속사에 계약 해지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있듯 앙심을 품은 소속 가수들이 연습시간까지 들먹이며 문제를 제기하면 회사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며 “의상 또한 본인들이 생각할 때 선정적이거나 노출이 있다고 느꼈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하겠나”라고 되물었다.
피에스타의 신곡 ‘하나 더’는 스리섬을 연상시키는 가사 때문에 방송 정지를 받았다.
외주 제작사들도 신경이 쓰이긴 매한가지다. 최근 아역 배우들의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 현재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 상 밤샘 촬영은 불가피하다. 밤 10시 이후 촬영을 할 수 없게 되면 촬영일수가 늘어나고 이는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아역 배우들은 전문 매니지먼트 없이 부모가 직접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매니지먼트의 경우 제작사와의 관계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유연하게 입장 조율이 가능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을 우선시하는 부모들이 이 법안을 앞세워 이야기한다면 제작사와 방송사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효성 논란을 따지기 전 대중문화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 먼저라는 의견도 많다. 미성년자인 연예인들에게 대한 확실한 보호 장치가 마련된 할리우드와 달리 국내 연예계에서는 그들의 인권을 뒤로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해왔다. 때문에 지난 2011년 개봉된 영화 <도가니>의 제작진은 영화의 흥행 및 의미와 별개로 아역 배우들이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하는 장면을 촬영하며 아동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 다른 연예기획사 대표는 “법안이 발효된 후 초반에는 여러 가지 잡음이 있을 것이다. 법안 역시 수정돼야 할 부분이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 역시 그 동안 관행처럼 자리 잡은 문제점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