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그녀들이 필드의 ‘태·혜·지’
# 신인 백규정 인기도 ‘슈퍼루키급’
올해 프로에 갓 데뷔한 백규정. 그의 온라인 팬카페에는 회원이 어느새 500명 가까이 모였다. 사진제공=KLPGA
“백규정 파이팅!”
20일 제주의 오라골프장. 클럽하우스 앞이 북적였다. 2014시즌 KLPGA 투어 ‘슈퍼루키’로 떠오른 백규정(19·CJ오쇼핑)의 팬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아저씨부대’가 티오프를 기다리는 백규정을 향해 힘찬 박수와 함께 응원을 보냈다. 몇몇 여성팬도 목격됐지만 거의 대부분은 40~50대로 보이는 중장년층이었다.
백규정은 올해 KLPGA 투어에서 가장 빠르게 팬을 흡수하면서 인기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온라인 카페를 통해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한 회원은 어느새 500명 가까이 된다. 인기 연예인과 비교하면 적은 숫자다. 그러나 올해 프로에 갓 데뷔한 신인이 이 정도 회원의 팬 카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백규정을 따르는 아저씨부대는 직업도 연령층도 다양하다. 회사원부터 판사, 기자, 대기업 임원, 자영업자 등에 이르고, 40~50대는 물론 30대도 적지 않다.
백규정의 팬클럽인 ‘아테나’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최현대 씨는 가장 열성적인 ‘아저씨부대’ 중 한 명이다. 그는 거의 모든 대회를 따라다니며 백규정을 응원한다. 더욱 눈길을 끌었던 건 골프장에서만 사용하는 명함이 따로 있다. 명함에는 ‘규정지킴이’라고 써 있다.
최 씨는 “개인 일정은 백규정 선수의 대회 출전에 따라 달라진다. 해외 대회가 아니라면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는 모두 따라가 응원하려고 한다. 팬클럽 회원 중에는 나 같은 사람이 여럿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팬은 “무엇을 바라고 응원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면서 “우리는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할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아저씨부대는 아니지만 팬 중에는 유명인사도 여럿 있다. 탤런트 방은희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팬클럽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이날도 경기장에 아들과 함께 온 방 씨는 ‘백규정 프로 파이팅’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응원에 동참했다.
7월 초,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의 웨이하이 포인트 골프장에서 열린 KLPGA 투어 금호타이어 여자오픈에선 더 열성적인 팬도 보였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다나(25·넵스)의 팬클럽 회원들은 멀리 중국까지 원정 응원을 왔다. 어지간한 정성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10여 명도 되지 않는 적은 숫자였지만, 응원의 열기만큼은 그 어떤 팬클럽에도 뒤지지 않았다.
‘투어 2년차’ 전인지(20·하이트)의 인기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회 때마다 응원 나오는 아저씨부대만 어림잡아 30~40명 안팎이다. 수적으로는 가장 많다. 프로에 데뷔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팬클럽 회원만 1000명이 넘는다. 회원들끼리는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우정을 쌓고 있기도 하고, 다양한 기념품을 만들어 응원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열성적인 회원들은 제주도는 물론 중국 등 외국도 마자하지 않는 ‘아저씨팬’도 많다.
2012년 KLPGA 투어 신인왕 출신 김지희(20·대방건설) 역시 ‘아저씨부대’와 ‘삼촌팬’을 이끌고 다니는 인기스타다. 회원수만 보면 600명이 넘어 신인급 선수 가운데선 가장 많다. 특이하게도 그녀의 팬클럽 회원들은 어디서 만나도 쉽게 알아 챌 수 있다. ‘지희사랑’이라고 큼지막한 글씨가 새겨진 똑같은 모자를 쓰고 다닌다.
팬들의 응원은 선수에게 큰 힘이 된다. 김지희는 “삼촌팬들이 있어 든든하다. 팬들의 응원에 꼭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 신지애, 최나연 이어 김하늘, 안신애로
왼쪽부터 김지희(사진제공=캘러웨이골프), 김하늘, 안신애
국내 여자골프 무대에서 팬클럽이 처음 등장한 건 2000년대 중후반이다. 신지애(26)와 최나연(27·SK텔레콤)이 프로로 데뷔하면서 팬클럽이 활성화됐고, 이후 김하늘(26·비씨카드), 안신애(24·해운대비치골프리조트), 김자영(23·LG) 등의 스타가 등장하면서 ‘아저씨부대’, ‘삼촌부대’가 등장했다.
KLPGA 투어 최고의 인기스타를 꼽으라면 ‘필드의 섹시스타’로 불리는 안신애와 김하늘을 빼놓을 수 없다. 인기만큼은 연예인급이다.
안신애의 트레이드마크는 짧은 치마와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슬림한 패션이다. 남성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다. 인기만큼 팬클럽 회원도 많아 1100여 명에 이른다. 2009년 결성돼 5년째 활동하다보니 신인선수들의 팬클럽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열띤 응원보다는 차분하게 응원하면서 주로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는 편이다.
안신애와 관련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지난해 5월 열린 한 프로골프대회에서의 일이다. 안신애는 이날 유독 짧은 치마를 입고 경기에 나섰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녀 갤러리 사이에 재밌는 대화가 오갔다.
“안신애는 어쩜 저렇게 예쁘고 골프도 잘 치는지.”
남자의 말에 여자는 “안신애가 뭐가 예뻐. 자꾸 안신애 얘기만 할 거면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마!”
남녀는 부부사이였다. 안신애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남편의 모습이 아내의 눈에는 곱지 않게 보였던 것이다.
김하늘의 든든한 후원군 역시 팬클럽이다. 그는 1300명이 넘는 팬을 거느리고 있다. 2006년 프로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운영되다보니 어느새 가족처럼 친해진 팬들도 많다. 가장 돋보이는 건 알찬 팬클럽 운영이다. 온라인 팬카페에는 프로 데뷔부터 현재까지의 활약상과 필드 밖에서의 활동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또 KLPGA 투어에서 기록한 8승의 순간과 각종 기록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다.
2년째 부진의 늪에 빠져 있는 김자영은 인기만큼은 여전히 톱스타급이다. 온라인 팬 카페에 가입된 회원은 무려 3000명이 넘는다. KLPGA 투어에선 그녀의 인기를 따라올 경쟁자가 없다. 30~40대 삼촌팬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50대와 60대 아저씨팬도 적지 않다. 팬클럽은 ‘자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 선수 따라 응원문화도 다양
2012년 KLPGA 투어 신인왕 출신 김지희도 아저씨부대와 삼촌팬을 이끌고 다니는 인기스타다.
필드에서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백규정의 팬클럽은 응원도 열성적이다. 회원들은 모두가 ‘Q Back’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모자를 쓴다. ‘백규정’의 이름 중 ‘규’를 ‘Q’로 썼고, ‘퀸(Queen)’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백규정의 얼굴을 캐리커처로 그려 넣은 현수막과 머리띠 등 다양한 응원도구까지 갖고 다닌다.
5~6시간씩 경기하는 선수들을 따라다니기 위해선 준비도 철저해야 한다. 빼놓을 수 없는 게 먹을거리다. 가방 속에는 음료수와 떡, 빵, 김밥, 바나나는 물론 여러 종류의 과일까지 넣고 다닌다. 응원은 팬클럽 중에서도 가장 힘이 넘친다. 1번홀부터 18번홀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되는 응원은 선수에게 가장 큰 힘이다.
김지희의 팬클럽 역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최강 지희’, ‘지희사랑’, ‘미소천사’ 등 김지희를 대표하는 문구를 머리띠와 보드판을 들고 다니며 열띤 응원을 펼친다. 어지간한 40~50대 중년의 남성이라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들에게는 선수를 응원하는 것 자체가 자랑거리다.
김자영과 그의 팬카페. 팬카페 회원수가 3000명이 넘는다.
아저씨부대를 필드로 끌어들인 매력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백규정의 팬클럽 회원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화끈하고 거침없는 플레이를 첫 손에 꼽았다. 팬클럽 부회장인 최현대 씨는 “백규정의 플레이를 보면 속이 후련하다. 시원시원한 플레이가 마음에 든다”라며 엄지를 세웠다.
전인지의 팬클럽 회원들은 매너에 푹 빠졌다. 한 팬은 “항상 웃고 경기 할 때도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거의 없다. 전인지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면 내 마음에도 웃음이 피어난다”고 말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특별한 골프문화다.
주영로 스포츠동아 기자
응원문화 변천사 괴성 응원 ‘노땡큐’ 볼륨 좀 낮춰주세요~ KLPGA 투어에서 ‘아저씨부대’를 만나는 일은 흔한 광경이 됐다. 아저씨부대가 등장한 이후로는 골프대회에 활력이 넘친다. 팬이 많아지면서 스타들은 더욱 신이나 경기를 한다. 눈길을 끄는 건 아저씨부대만의 독특한 응원이다.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10대 못지않은 열광적인 응원을 펼친다. 최나연을 응원하는 대만 팬클럽 회원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하다. 아저씨팬들의 열성은 대단하다. 좋아하는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꿰고 있는 것은 물론, 작은 기록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챙기기도 한다. 어지간한 전문가는 명함도 못 내민다. 성적이 좋거나 우승하면 회원수가 크게 증가하지만, 한번 팬이 되면 ‘의리’를 지키는 것도 아저씨부대만의 특징이다. 7~8년 전 처음 생긴 팬클럽과 비교하면 응원문화는 확실히 달라졌다. 최나연의 팬클럽인 ‘최나연의 아름다운 마을’은 대부분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팬들은 조용하게 선수의 뒤를 따라다니며 경기를 관전하거나 좋은 경기를 선보였을 때 ‘굿샷’을 연호하는 정도였다. 오히려 응원보다 ‘관리’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일 때도 있었다. 경기 중에는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먹을거리를 챙겨주기도 하고, 외국에서 팬이라도 찾아오면 마치 자신들의 손님처럼 반갑게 맞이하기도 한다. 마치 가족 같았다. 아저씨부대의 등장으로 적잖은 논란거리도 생겼다. 바로 열광적인 응원이다. 아저씨부대의 과도한 응원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가 적지 않다. A 선수의 부모는 성숙한 응원을 당부했다. 그는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골프라는 스포츠의 특성을 감안하면 조금 더 성숙한 응원문화가 필요하다. 괴성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다보면 다른 선수의 경기를 방해하게 된다. 팬들이 그런 부분까지 신경쓰면서 응원하는 건 아니겠지만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좀더 성숙한 응원을 해주길 바란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저씨부대들은 이런 반응에 아쉬움을 보였다. 제주 오라골프장을 찾은 한 팬은 “일부러 과도한 응원을 펼쳐 선수의 경기를 방해할 생각은 없다. 경기에 집중하고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다보면 순간 목소리를 높여 응원하게 될 뿐이다. 그런 걸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면 불쾌하다. 응원을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