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안 죽였다, 때린 적은 있다, 죽였지만 사고
정말 힘든 게 거짓말인 것 같았다. 하나의 허위를 완벽한 퍼즐처럼 맞추려면 수백 개의 정교한 거짓들이 만들어져야 했다. 또 그런 것들이 정밀한 기계처럼 조립되었어도 조화와 같았다. 진실에서 나는 독특한 향기가 없었다. 거짓말은 논리나 이성만 가지고도 되지 않았다. 눈빛, 어조, 태도, 감정까지 완벽하게 들어맞아야 하는 것이다. 완벽한 연기가 부족할 때 사람들은 일부 진실을 얘기하면서 거짓과 섞으려고 시도했다. 안기부와 검찰 사이에서 그리고 곧 이루어질 것 같은 야망 사이에서 윤태식이란 인물은 힘든 줄타기를 했다.
“윤태식 씨를 특별히 북한이 납치할 이유가 뭐였을까요?”
검사가 물었다. 안기부의 발표가 거짓임을 알고 하는 질문이었다.
“북한이 저 같은 놈을 납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왜 저를 납치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윤태식이 버텼다.
“북한이 정말 납치를 하려고 했다면 마카오에서 바로 북한으로 보내지 왜 유럽을 통해 복잡하게 하려고 했을까요? 정말 납치하려고 했다면 또 다시 도망갈 수 있도록 그렇게 허술하게 했을까요?”
“….”
윤태식은 대답을 못했다고 조서에 적혀 있었다.
“윤태식 씨는 수지 김을 데리고 홍콩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죠?”
실상을 알면서도 검사가 일부러 하는 유도신문 같았다.
“그렇습니다.”
윤태식이 자기에게 유리한 질문으로 알고 끌려들어갔다. 검사가 책상 위에 있던 서류 한 장을 보여줬다. 비행기표였다.
“당시 비행기표를 편도로 끊으셨던데 왜죠? 데리고 다시 오려고 했다면 왕복을 끊어두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저를 납치한 사람들의 요구사항이라 그랬던 겁니다.”
논리적인 허점은 북한 측에 돌렸다. 검사는 속지 않았다.
“일등석표를 샀었죠? 당시 경제 형편상 일등석을 탈 입장은 아니던데 왜 그랬습니까? 급한 상황이라 자리가 남은 일등석이라도 무조건 타고 빠져나가야 할 상황이 아니었을까요?”
“아닙니다. 전 그 사람들이 시킨 대로 했을 뿐입니다.”
윤태식이 군색하게 대답했다. 검사가 방향을 돌렸다.
“알아보니까 87년 1월 5일경 비디오 대여점을 개업할 예정이었던데 그건 수지와 윤태식 씨의 전 재산과 땀이 들어있는 가게였죠?”
“그랬습니다. 수지가 벌어 논 돈으로 세 얻고 물건 사고 인테리어를 한 겁니다.”
“싱가포르로 가면서 비디오점을 누구한테 넘기거나 관리도 맡기지 않은 채 그냥 버리고 떠났던데 이유를 설명해 보세요.”
“개업도 안한 점포에 무슨 관리가 필요하겠어요? 도망하려고 했다는데 거기 이민국에 조회해 보십쇼. 제가 비자 연장 신청을 했었습니다. 안 올 사람이 비자 연장 신청을 했겠습니까? 전 그 조총련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했고 싱가포르에 가서 차용증 써주면 수지를 데려올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윤태식 씨는 1987년 1월 초 한국으로 온 후 지금까지 한 번도 홍콩에 간 적이 없죠? 왜 그랬을까요? 거기 가면 살인으로 조사를 받을 게 두려워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홍콩 재산을 모두 포기한다는 각서를 썼기 때문에 갈 일이 없었습니다.”
그때 검사는 책상서랍에 들어 있던 수지의 사체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의 수지는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순간 윤태식이 얼굴을 돌렸다. 신음 비슷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검찰서기는 그런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묘사했다.
“여기 사진을 보면 수지가 파자마 차림입니다. 일본인 남자들이 찾아왔을 때 이렇게 잠옷 차림일 수는 없었겠죠?”
“그렇습니다.”
“당시 아파트에서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담배와 음료수를 사 오셨다고 했죠? 우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몇 개의 편의점이 모두 5분 이내의 거리에 있었습니다. 맞습니까?”
“예. 대개 그랬습니다. 한 군데 가니까 물건이 없어서 그 아래 세븐일레븐에 가서 음료수를 사왔던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두 군데를 갔다 왔어도 10분이 안 걸리죠? 그 사이에 일본인들이 수지를 살해하고 옷을 파자마로 갈아입힌 후 침대 밑에 시신을 은닉하고 바로 입구 옆에 있는 경비의 눈에 띄지 않게 증발할 수 있었을까요?”
“….”
윤태식은 절벽 끝으로 몰리고 있었다. 이미 검사는 침대 밑에 죽어 있던 수지의 시신강직 정도를 감정한 부검서류를 가지고 있었다. 윤태식의 말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수지가 북한 공작원 맞아요? 아니죠?”
검사가 핵심을 찔렀다. 안기부에선 끝까지 북한공작원이었다고 대답하라고 했었다. 그는 버틸 만큼 버텼다.
윤태식의 대답이었다. 조사는 매일 하루 종일 계속됐다. 윤태식은 아침에 검찰청에 와서 한밤중이 돼야 구치소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엄청난 양의 조서들이 쌓여갔다. 6회째 받은 조서부터 윤태식의 답변이 궤도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부인하고 방어하는 자세에서 적극적인 진술로 흐름이 바뀌었다.
“전번에 조사받을 때 일부 기억하지 못했던 게 있었는데 이제 기억이 났습니다. 그걸 진술하겠습니다.”
“그게 뭡니까?”
검사가 물었다.
“사실 제가 수지를 때린 적이 있습니다.”
“왜 그랬죠?”
“수지가 일본남자들을 만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걸 나무랐더니 대들기에 화가 나서 따귀를 두 대 정도 때린 일은 있습니다. 그랬더니 수지가 저한테 홍콩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때리면 999에 신고돼 정신병원에 간다고 했어요. 처가 허락하지 않으면 정신병원에서 나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신고한다고 하기에 제가 겁이 나서 빈 적이 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각서까지 썼습니다.”
“어제나 그저께 기억이 안 나던 얘기들이 왜 지금 갑자기 떠올랐을까요?”
검사는 의심을 풀지 않았다. 윤태식이 어떤 계산 아래 새로운 허위를 구상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윤태식도 만만치 않았다. 비상한 머리로 순간순간 위기를 넘어갔다. 그에게는 재력이 있고 물증은 약했다. 버티기만 하면 이번에도 행운은 그의 편이 될 수도 있었다. 한국판 OJ 심슨 사건이었다.
조서를 보던 나는 8회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갑자기 윤태식이 살인을 자백한 내용을 보게 됐다. 조사를 시작해서 보름쯤 지난 2001년 11월 6일 서울지검 1105 검사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사실은 제가 수지를 죽였습니다.”
검찰서기는 당시 윤태식이 담배를 요구하고 물을 찾고 여러 차례 한숨을 쉬었다고 정황을 적어놓았다. 윤태식은 처를 만나게 해달라고 검사에게 요구한 것으로 조서에 적혀 있었다.
“계속 부인하시다가 왜 이제 와서 자백을 하는 거죠?”
검사의 질문이었다. 심정의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제가 처음 검사님으로부터 출석 요구서를 받은 2001년 3월경부터 출석해서 사실대로 진술하려고 했습니다. 이 일로 죽으려고까지 했으니까요. 제 입장에서는 검사님과는 악연이지만 그동안 인간적으로 저를 대해주시는 데 감동받았습니다. 검사님은 제가 수지를 죽인 정황에 대해 이미 너무 많이 알고 계신 것 같아 제가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바른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저를 정중하게 대해주셨습니다. 구치소를 오가면서 고민하다가 솔직히 털어놓기로 한 겁니다. 조사를 받으면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은 건 처음입니다.”
새로운 내용의 자백이 풀려 나왔다.
“저와 싸우다가 수지가 어딘가에 부딪쳐 죽었는데 그때 제가 베갯잇을 얼굴에 씌우고 여행용 트렁크를 묶는 벨트를 목에 걸고 양손으로 잡아당겨 목을 졸랐습니다.”
“왜 죽였죠?”
“수지가 86년 연말부터 일본에 돈을 구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 않고 송금을 받을 수 있는데 왜 굳이 가느냐’고 하면서 막았더니 수지가 나보고 ‘네가 뭔데 간섭하느냐’고 성질을 벌컥 냈습니다. 아는 일본인 남자에게 가서 돈을 얻어 오는데 그냥 돈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편인 저는 그게 싫어서 못 가게 했던 거죠. 수지가 탁자를 발로 차면서 999에 신고한다고 했어요. 폭력으로 신고해서 정신병원에 처넣겠다는 거였죠. 제가 수지를 꽉 잡고 진정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를 확 뿌리치고 나가다가 어딘가에 부딪쳐 침실 바닥에 넘어져 죽었습니다.”
“수지가 왜 그런 행동을 했죠?”
“하여튼 성질이 대단해서 말리기 힘들었습니다.”
“수지가 쓰러진 후 어떻게 했어요?”
“제가 영화를 본 것 중에 간첩이 공작원을 죽였던 게 생각났습니다. 수지가 일본에서 돈을 얻어온 건 사실이니까 (들통 날 경우) 조총련이 죽인 걸로 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얘기는 그렇게 꾸며놓고 싱가포르의 북한대사관으로 가서 망명하기로 마음먹었죠. 밤새 그렇게 궁리했어요. 어느새 아침이 됐습니다. 수지를 침대 밑에 숨기고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났습니다.”
“싱가포르에 가서 어떻게 했죠?”
“북한대사관에 가서 망명하겠다고 하니까 거기 직원이 이유를 물어서 이리저리 꾸며댔습니다. 북한 사람이 나한테 고급커피를 타준다고 하면서 커피에 그냥 우유를 넣는 걸 보고 ‘북한이 좀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이 내가 입은 옷을 보고 어디서 샀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서 산 거라고 했더니 좋다고 그랬어요. 하여튼 그 사람들은 제가 북한에 가서 살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거기서 생각을 돌렸어요. 죽어도 한국에 가자고 말이죠.”
윤태식이 검사에게 처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한 시간가량 고민을 하더라고 조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윤태식은 안기부에서 조사받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안기부 공작과의 결별이었다. 조서의 마지막에는 윤태식의 최후진술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속이 후련합니다. 그동안 검사님이 인간적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저도 그에 대한 의리를 지킬 줄은 압니다. 제가 87년 1월에 귀국해서 수지를 죽였다고 얘기했는데도 안기부가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해서 괴로운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때 저를 사형시켜 버렸으면 다 잊혀졌을 텐데 말입니다. 잔인합니다. 사실 그동안 자살도 여러 번 결심했었습니다.’
윤태식은 사고로 죽은 수지를 목 졸랐다고 얘기했다. 죽은 사람을 목 조를 경우 그건 살인죄가 되지 않았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