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찮은 우연의 연속 ‘뒤에 누군가 있다’
육십대 중반의 그는 부장검사 출신으로 84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공직 생활이나 변호사 생활에서 어떤 오점도 없다는 인물평이었다. 법정에서 몇 번 그를 봤었다. 방청석 뒤에 조용히 앉아 책을 읽으면서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권위적이거나 야심의 냄새가 전혀 없는 소박한 성품 같았다. 회사 고문으로서 윤태식과 많은 대화를 나눈 김 변호사는 사건의 본질에 누구보다도 접근해 있었다.
소리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4층에서 열리면서 동굴 같은 어둠침침한 복도가 나타났다. 타임머신을 타고 40년쯤 과거로 간 느낌이었다. 발길에 닳은 싸구려 바닥재와 어두운 복도에서는 먼지 낀 벽장 냄새가 났다. 그 끝에 합동법률사무소라고 적은 때 묻은 아크릴 간판이 붙어 있었다.
반쯤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중앙에 사무원들 책상이 있고 벽 쪽으로 몇 명의 변호사들 방이 붙어 있었다. 낡은 양철 패널로 칸을 막은 상자 같은 방들이었다. 김 변호사는 책상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앞에는 탁자가 T자형으로 붙어 있었다. 벽장에는 사회학 계통의 책들이 가득했다.
“윤태식하고는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관계를 물었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로 처음 만났죠. 특이한 인물이었어요. 중학교 중퇴의 학력인데도 인격적 완성도가 대단했어요. 나보다 이십년 아래인데도 쉽게 반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스마트한 매너였죠. 사리도 밝고 아주 점잖았어요.”
김 변호사의 어조는 진지했다.
“인격적 완성도라고 하시는데 어떤 행동들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지요?”
“옆에서 지켜봤는데 자기에게 나쁘게 한 조사 경찰관 같은 사람에게도 나중에 찾아가 고맙다고 하면서 주식이나 용돈을 줬어요. 그 정도면 누군들 ‘윤’의 편이 되지 않겠어요?”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였다. 김 변호사가 계속했다.
“난 윤태식이 살인죄가 아니라고 확신해요. 홍콩의 부검의 잎치팡의 개인적 의견도 직접 들었죠. 홍콩 같으면 무죄가 나올 수도 있는 사건인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살인죄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또 미국 코넬 대학 출신 감정의사도 윤태식의 살인이 아니라고 단정을 했죠. 죽은 수지의 머리에 나 있는 두 개의 상처가 수지의 사인이 틀림없다는 거지. 그리고 윤이 목을 조르기 전에 이미 죽었다면 살인죄의 불능범이라는 거였지요.”
의사들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처음 들었다.
“아무 증거가 없고 살인의 동기도 없었어요. 대법원 상고심 때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도 무죄를 확신했어요. 그 양반 판사 때도 쟁쟁한 실력자였거든요. 그런데도 유죄가 확정되더라고. 대법관이 상고이유서를 읽지 않았나 몰라.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죠. 도대체 이 나라는 언론 권력에 의해 재판이 영향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요. 얼마 전 윤태식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담당 대법관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대법관인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이죠.”
윤태식은 지금도 열심히 각계각층에 편지를 쓰고 있다.
“내가 상고이유서를 한 부 이메일로 보낼 테니까 그걸 봐요. 아마 홍콩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2급살인 정도로 훨씬 가벼운 형이었을 걸. 우리나라에는 살인죄가 하나밖에 없잖아요?”
나 역시 윤태식은 폭행치사죄라는 의견이었다. 법원이 힘들게 살인죄로 구성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물었다.
“윤태식이 왜 이렇게 됐다고 보십니까? 성공 직전에 게이트가 터지고 공소시효 직전에 살인범으로 구속되고 말이죠.”
내가 물었다. 우연의 연속치고는 이상했다.
“그건 내가 재벌이라도 윤태식을 가만히 두지 않겠어요. 뒤에서 윤태식을 잡아 죽이자는 어떤 모략이 분명 있었으리라고 난 지금도 생각해요.”
김 변호사의 확신에 찬 어조였다. 이미 한 번 법정 앞 복도에서 그에게 들었던 얘기였다.
“왜 그런 말씀을? 근거가 뭐죠?”
내가 물었다. 함부로 속단할 그가 아니었다. 뭔가 있었다.
“그건 윤태식이 진짜 세계적인 대단한 기술을 개발했고 또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가 될 뻔했으니까.”
그가 냉소적인 표정으로 내뱉었다. 사람들은 윤태식의 기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기라고 생각했다.
“어떤 대단한 기술인데요?”
내가 물었다.
“나도 처음에는 ‘윤태식이 개발한 기술이 사실일까’ 하고 의문을 품었어요. 그래서 윤이 개발한 지문인식기술을 신중히 살펴봤죠. 나도 몰랐는데 사람들의 지문선 위에 땀샘이 있다고 윤태식이 알려주더라고요. 그게 생물학적으로 살아서 움직인다는 겁니다. 그 움직임을 순간적 단계적으로 포착해서 암호화했다는 겁니다. 순간의 변화를 포착한 그 암호는 신문용지 전면 8장 정도의 분량이라는 거죠.
그런 지문인식의 실용성이 뭐냐 하면… 윤은 전 세계의 그 누구도 해킹할 수 없는 지문인식 보안시스템을 개발한 거죠. 한번은 공개적으로 세계적인 해킹 팀을 불러 모아 지문인식시스템을 해킹하도록 했어요. 그들이 다른 건 다 해킹하는데 윤태식이 개발한 프로그램은 해킹이 불가능하다고 모니터에 벌겋게 뜨더라고요. 나도 깜짝 놀랐죠. 그걸 보고 도와야겠구나 생각했어요.”
나는 컴퓨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김 변호사가 그걸 눈치 채고 보다 자세히 설명을 계속했다.
“한번은 내가 윤태식에게 전 세계의 돈이 전부 컴퓨터로 돌아다니는데 그 내막을 아느냐고 물었어요. 모른다고 그럽디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하루에 적게는 1조 5000억 달러에서 2조 달러가 움직이고 1년 300일만 잡아도 500조 달러가 컴퓨터를 통해 움직입니다. 실물무역은 그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7조 달러에서 8조 달러 정도의 규모니까요. 그런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공포의 대상이 해커입니다. 윤태식의 지문인식 보안기술은 세계 금융시장의 그런 공포를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거였어요.
내가 윤태식에게 세계 금융시장에 기술을 제공하고 1000분의 1의 수수료만 받아도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저리 가라일 거라고 했죠. 대충 수익모델을 계산해도 우리나라 1년 예산을 넘습디다. 고문변호사로서 제가 제안했던 얘기예요. 내가 직접 보지는 못하고 나중에 얘기로 들은 건데 <월스트리트 저널>에 윤태식의 기술이 연간 1500억 달러 규모의 수익모델이라고 나왔다고 합디다. 우리 1년 총수출하고 맞먹는 수익모델이었죠. 그런 걸 보면 윤태식은 어느 면에서 IT업계의 황우석이었던 거예요. 전 세계의 금융기관이 서울에 지점도 설치하게 되고 그만큼 우리가 금융의 중심이 될 뻔했죠.”
나는 비로소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윤태식이 어떻게 그런 천재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남의 기술을 훔쳤다는 의심들도 있었다.
“중학교 중퇴밖에 안 되는 학력인데도 말할 때 보면 윤태식은 컴퓨터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한번은 내가 윤에게 도대체 아이큐가 얼마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중학교 1학년 때 한 번 검사 받았는데 155라고 그럽디다. 물론 기술개발을 다 윤태식이 혼자 한 건 아니죠. 서울대 나온 미스터 박과 이탈리아 회사 연구원이었던 미스터 오라는 두 컴퓨터 천재가 뒷받침한 거죠. 그러나 아이디어는 윤태식이 낸 거구요. 엄밀히 말하면 세 사람의 작품입니다. 윤태식은 나중에는 삼성 쪽의 인재 다섯 명을 스카우트해서 기술개발에 투입했어요. 그 팀들이 만든 거였죠. 기술은 진짜였어요. 일본의 소니 회장이 기술을 팔라고 했는데 거절했어요. 삼성에서도 기술을 팔라고 했었죠. 내가 고문변호사로 윤을 만나기 전에 이미 그 기술에 대한 뉴스가 CNN에 나오고 로이터통신을 통해서 알려졌죠.”
김 변호사는 윤태식의 기술에 대해 감탄하며 말을 계속했다.
“카드는 분실할 염려가 있지만 손가락은 떨어져 나갈 우려가 거의 없죠. 한번은 윤태식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실·국장들에게 자기 기술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왜 스마트카드를 만들어 예산을 낭비하느냐고 했어요. 카드를 만들면 분실 염려도 있고 다시 만들려면 그만큼 비용이 든다는 거죠. 그러나 손가락을 카드 대신으로 하면 경제적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 의료보험카드만 해도 그렇습니다. 자신이 진료 받는 의사의 모니터에 환자가 손가락만 한 번 대면 순간적으로 약국에서 조제가 되고 의료보험공단에서 보험료 처리가 정확히 되게 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윤은 또 보험공단에서 과잉진료를 즉각 체크하는 소프트웨어도 개발했죠.
브리핑을 받은 정보통신부 장관이 골치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재벌 컨소시엄을 형성해서 스마트카드를 만들기로 하고 예산까지 책정됐는데 윤태식이 개발한 시스템은 그런 기존의 사업들을 예산 낭비로 만들었으니까요. 장관 입장에서 보면 골치 아픈 거죠. 윤태식은 부패방지위원장이었던 내게 예산 낭비도 부패라고 했어요.”
“윤태식이 실제로 사업한 실적이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이템 하나에 주식으로만 부자가 된 이들도 많았다.
“구속되기 몇 달 전 한빛은행과 기술제공 계약을 체결했어요. 은행 고객 휴대폰에 무료로 윤이 개발한 칩을 설치하면 바로 은행의 중앙컴퓨터와 연결이 되는 거였죠. 은행 점포들이 600개에서 800개 정도 되는데 그게 전부 필요 없어지니까 노조가 들고 일어났어요. 윤태식이 다니면서 노조원들을 설득했어요. 기존 업무는 폰뱅킹에 맡기고 아파트단지마다 은행원 한두 명이 나가 쉼터 비슷하게 지점을 만들어 주민과 어울리면 더 정확한 개인 신용정보도 파악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대출을 하면 오히려 점포 숫자도 늘어나고 일자리도 유지된다는 논리였죠. 휴대폰에 칩을 넣어서 폰뱅킹을 한다는 건 당시로선 또 다른 은행 구조의 혁명이었어요. 이미 그 기술은 완성 단계였죠. 경인전자에 도급을 줘서 휴대폰에 지문인식 기능을 담도록 했죠. 그냥 폰뱅킹이 되는 시제품을 만들었죠.”
고문이었던 김 변호사는 아쉬운 표정이었다.
“참, 윤태식이 구속된 이후에 미국 뉴욕의 FBI본부에서 요원들이 왔어요. 흑인계 책임자였는데 저도 몇 번 만났죠. 윤태식의 기술에 최고의 관심을 쏟으면서 일주일 동안 상세하게도 조사해 갔어요. 팀원들이 공책에 빼곡히 필기를 하고 사진만 해도 수백 장을 찍어갔어요. 윤은 미국의 센서회사를 하나 사들였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그가 잠시 쉬었다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윤태식이 개발한 기술들이 지금 누구에게 가 있나 한번 보세요. 윤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걸 얻은 셈이니까.”
그는 뭔가 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말끝을 흐렸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