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두 남자를…공범 과연 없나?
포천 빌라 고무통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돼 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TV화면 캡처).
# 시신발견 3일 만에 유력 용의자 ‘아내’ 검거
지난 7월 29일 밤 9시 40분께 경기도 포천 한 빌라에서 아이가 문을 열어달라며 악을 쓰며 울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베란다를 통해 현장으로 들어선 경찰과 소방대원은 큰방에서 TV를 켠 채 울고 있는 8살 난 아이를 발견했다. 큰방 맞은 편 작은방에 놓여있던 높이 80㎝, 지름 84㎝ 김장용 고무통에서는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시신 2구가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이 발견되던 날부터 행방이 묘연해진 아이의 어머니 이 아무개 씨(50)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적한 끝에 시신 발견 3일 만인 지난 1일 사건현장에서 10㎞가량 떨어진 소흘읍 송우리의 섬유 공장 기숙사에서 이 씨를 검거했다. 당시 이 씨는 스리랑카인 남성 S 씨(44)와 함께 있었다.
# 피의자 이 씨는 누구?
숨진 시신 1구의 법적 아내이자 방치됐던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피의자 이 씨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기 직전까지도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시신을 집안에 두었다는 점, 시신과 함께 8살 난 아이를 방치해 두고도 멀쩡히 직장에 출근을 했다는 점 등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 때문이다.
이 씨는 16년 전부터 포천 빌라에 거주했으며 중간에 몇 년 강원 철원지역으로 이사를 간 적이 있으나 다시 포천으로 돌아왔다. 9년째 한과 만드는 업체에 다녔던 이 씨는 평소에는 이웃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의 이상한 행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씨는 초등학교에 갈 나이인 8살 난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2차례나 유예시켰다. 그리고 3개월 전부터는 공과금도 수납하지 않았다.
이 씨는 ‘저장강박장애(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어떤 물건이든지 버리지 못하고 저장해 두는 강박장애의 한 가지)’를 앓고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 이 씨가 거주하던 집은 심한 악취와 함께 살림살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침대를 제외한 공간에는 쓰레기가 무릎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경기 포천시 빌라. 사진은 TV화면 캡처.
# 석연치 않은 범행동기, 단독범행인가?
의혹은 이 씨가 경찰에 검거된 직후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 씨는 애초 경찰 진술에서 “죽은 사람은 남편과 외국인 남성”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이 씨는 고무통 위의 남성은 자신이 살해한 것이 맞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 남성은 지문조회 결과 외국인이 아니라 이 씨의 직장동료였던 이 아무개 씨(49·경기도 남양주)로 밝혀졌다.
숨진 이 씨는 피의자와 인근 과자공장에서 일하며 내연관계를 맺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혼인 그는 돈을 벌어 피의자에게 주고 통장관리도 맡겼다. 공장 사장이 “가정 있는 여자와 사귀지 마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이 씨는 내연관계가 문제 돼 지난해 10월 퇴사 조치됐다. 그의 가족은 “지난해 11월 이후 이 씨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피의자는 2003년 둘째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남편과 사이가 틀어져 별거했다. 시신 발견 당시 안방에 있던 8세 아이에 대해서는 “방글라데시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자주 어울렸다고 경찰은 전했다.
또한 이 씨는 고무통 아래쪽에 있는 남편은 자신이 죽인 게 아니라 자연사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 씨는 “남편이 베란다에서 죽어 있어서 거실에 있는 고무통에 넣은 뒤 작은방으로 옮겼다”고 진술했다. 범행 시기와 남편이 숨진 시기에 대해서는 ‘깜빡깜빡’ 한다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상식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피의자는 “(수사기관에서) 조사받게 될 일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고 고무통 안에 유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경찰은 전했다.
이씨는 “내가 원래 힘이 세다”며 단독 범행임을 주장하고 있다. 피의자는 한때 몸무게가 100kg 가까이 될 정도로 덩치가 컸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이 씨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여자 혼자 건장한 남자 두 명을 죽이고 시신을 높이 84cm, 지름 84cm나 되는 고무통에 넣고 또 다른 시신을 그 위에 올렸다는 것이다. 또 무거운 고무통을 작은 방에 넣어 놓고 옮겼다는 얘기다.
경찰은 “용의자가 공황상태에서 횡설수설하고 있고 거짓말도 하고 있어 더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10년 전부터 별거했던 박 씨가 이 씨 집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점에 주목하고 범행 동기와 시기, 수법 등을 추궁하고 있다. 이 씨가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공범 여부와 남편 살해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여성 혼자서 남성 2명을 잇따라 살해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혼자 방치됐던 8살, 왜 늦게 구출됐나
TV가 켜져 있던 큰방에서 아사직전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이 씨의 8살 난 아이는 탈수증상이나 영양실조 증상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아이는 주민등록상 숨진 박 씨의 아들이지만 부인 이 씨와 다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웃주민들은 아이가 창문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만 본 적이 있을 뿐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발견 당시 아이는 또래에 비해 말이 어눌했다고 한다. 아이는 “엄마가 나가면서 아무에게도 문을 열어 주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이는 현재 의정부의 한 아동보호기관에서 안정을 되찾고 있다.
경찰은 피의자 이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또한 경찰은 전날 이 씨와 함께 있던 스리랑카 출신의 남성 S 씨를 임의동행해 조사했으나 이 씨 범행과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귀가 조치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