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라인’에 설지 감 잡았어!
2기 경제팀이 출범하면서 그동안 공석이었던 금융권 CEO 인선이 속도를 내고 있다. 2기 경제팀의 수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금융권에서는 이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필두로 2기 경제팀이 꾸려진 영향으로 해석하고 있다. 교체설이 나돌던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유임되고 추경호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으로 청와대에 입성하는 등 금융권 권력지도가 재편되면서 금융수장들의 거취도 자연스럽게 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사 고위층들은 “어느 라인이 실세인지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정리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면서 “7~8월에 새로 선임되는 CEO들의 면면을 보면 어디에 줄을 서야할지 드러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뤄졌던 CEO 교체작업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곳은 손해보험협회다. 손보협회 수장은 그동안 ‘모피아(재무부+마피아)’가 독식해온 자리로, 이번에도 한 모피아 출신 인사가 내정된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등으로 관피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 당국은 ‘민간인 중용’ 방침을 천명하며 인선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7월 초 손보협회장 인선에 대해 보고받은 뒤 “일체 관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해진다. 덕분에 지난해 8월 문재우 전 회장 퇴임 이후 11개월째 공석인 이 자리는 손해보험사 CEO 출신이 맡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손보협회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7월 29일 롯데호텔에서 1차 회의를 열고 손보사 CEO 출신 중에서 협회장을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차기 협회장 후보에는 강영구 전 보험개발원장과 유관우 전 금융감독원 보험담당 부원장보, 김대식 전 보험연구원장 등 관료 출신 인사들이 올라 있었다. 하지만 민간 출신으로 방향이 급선회하면서 고영선 교보생명 부회장, 서태창 전 현대해상 사장, 김우진 전 LIG손해보험 사장, 이수창 전 삼성화재 사장, 김순환 전 동부화재 사장, 진영욱 전 한화손해보험 사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손보협회장 인선작업은 다른 금융 유관기관과 금융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어떤 인물을 수장으로 뽑아야할지를 알려주는 ‘신호등’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금융공기업 고위 관계자는 “현재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공석이고, 서울보증보험 사장도 6월에 임기가 만료됐다. 이들뿐 아니라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등 연말에 수장 임기가 끝나는 다른 기관들도 손보협회장 선출과정을 유심히 보고 있다”며 “사실 그동안은 윗선에서 콕 집어서 내려 보냈기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자율에 맡긴다고 하니 혼란만 가중되는 중이다. 당국이 원하는 라인이 무엇인지 손보협회장 선임을 통해 감이 잡힐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최원목 기재부 기획조정실장이 내정됐다가 무산되면서 올 1월부터 공석 상태인 주택금융공사 CEO의 윤곽이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금융위는 최근 청와대에 민간인 출신 3명을 사장 후보로 올려 인사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은행 임원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주택금융공사는 전세자금 대출 보증과 주택연금을 담당하는 금융공기업으로, 올 1월 서종대 전 사장이 한국감정원장에 지원한다며 자리에서 물러난 뒤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임기가 만료된 더케이손해보험 문경모 사장의 후임 인사도 주목된다. 임기가 만료된 지 100일이 다 돼 가지만 별다른 소문조차 없는 더케이손보는 금융권에서는 보기 드물게 교육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더케이손보 대주주인 한국교직원공제회의 상급기관이 교육부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더케이손보는 교원공제회 계열사 사장단의 임기가 만료되는 8월 초 사장 인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에서는 관피아의 낙하산 시도에 은행장이 뚝심으로 맞서고 있는 IBK기업은행이 초미의 관심사다. 기업은행 자회사 사장 선임에 정부당국과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이 개입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어서다.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7월 중순 IBK연금보험과 IBK자산운용 신임 사장으로 조희철 부행장과 안동규 부행장을 추천했다. 하지만 당국에서 “검증이 필요하다”며 다른 인물을 거론하면서 선임이 미뤄진 상태다.
특히 IBK자산운용 대표의 경우 모 정부부처에서 외부 인사를 추천하면서 절차가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다 산업은행 쪽에서도 내부 출신 인사를 추천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면서 잡음이 커지고 있다. 기업은행 노조(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위원장 홍완엽) 측은 “현직 관료와 동문관계인 홍기택 회장의 입김으로 IBK 자회사 인사가 진행된다는 소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산은금융 측은 “노조의 주장은 산업은행 및 홍기택 회장과 전혀 무관한 사항으로 사실이 아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오는 11월에는 은행연합회장, 12월에는 생명보험협회장의 임기가 만료된다. 금융권에서는 관피아 논란으로 주춤하던 금융당국의 교통정리 기능이 하반기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작동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다만 형식은 과거와 달라질 전망이다. 노골적인 낙하산보다는 민간 전문가나 내부 발탁이라는 새로운 원칙으로 그려질 금융권 권력지도가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