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 부르거나 죽음을 부르거나
마술사 해리 후디니의 아내가 1936년 니커보커 호텔에서 남편의 영혼을 불러오는 의식을 벌였지만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니커보커의 다사다난한 역사는 생긴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시작된다. 다소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위대한 마술사 해리 후디니는 1926년 세상을 떠나며 아내 베스 후디니와 한 가지 약속을 한다. 심령술과 영매술을 연구했던 후디니는, 실제로 사후 세계가 있다면 아내가 교령회(망자를 불러내는 의식)를 열면 찾아오겠다고 한 것. 암호는 “로자벨이 믿기를…(Rosabelle believes)”로 정했다. 후디니가 죽은 날은 공교롭게도 핼러윈이었고, 베스는 남편의 기일마다 교령회를 연다. 많은 영매들이 죽은 후디니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지만, 정작 아내인 베스는 남편과 만나지 못한 상황. 그녀는 10주기가 되던 1936년, 뉴욕에서 LA로 이사를 했고 열 번째 교령회의 장소를 바로 니커보커 호텔의 지붕 위로 정한다. 이윽고 핼러윈이 되었고, 기자들까지 찾아와 취재 경쟁을 벌였지만…. 안타깝게도 아내는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니커보커 호텔’이라는 지명이 가십 코너에 본격적으로 오르게 된 계기는 프랜시스 파머 사건이었다. 1940년대 스타 중 한 명이었던 파머는 보호관찰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했고, 경찰을 피해 당시 살고 있던 니커보커 호텔의 방문을 걸어잠갔다. 하지만 결국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 후 체포되었고, 복도를 질질 끌려가는 수모를 당했으며, 체포에 항의하는 그녀의 절규로 로비가 쩌렁쩌렁 울렸다. 결국 그녀는 병원에 감금되어 끔찍한 치료를 받았으며, 이날 이후 ‘니커보커’라는 이름은 크고 작은 일들로 타블로이드 신문을 장식했다.
이후 이 호텔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그 시작은 D. W. 그리피스였다. ‘미국 영화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던 그리피스는 1910년대 장편 극영화의 문법을 완성함으로써 할리우드에 큰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무성영화 시대가 끝나면서 서서히 그의 시대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1931년 50대의 나이에 메가폰을 내려놓고 은퇴하게 된다. 이후 그의 거처가 된 곳이 바로 니커보커 호텔. 그는 방에 처박혀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고, 끊임없이 시나리오를 쓰며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1948년 7월 23일, 그는 호텔 로비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병원으로 옮기던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니커보커 호텔은 과거(왼쪽)에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만나는 핫플레이스였지만 현재(오른쪽)는 실버타운 아파트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 얽힌 가장 비극적인 죽음의 주인공은 아이린이었다. 본명은 아이린 렌츠 기븐스였지만 ‘아이린’으로 불리던 그녀는 고전 할리우드 시기를 주름잡던 의상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고, 오빠인 세드릭 기븐스는 할리우드 영화 미술의 틀을 잡았던 인물이었다. 영화 의상 전문가뿐만 아니라 스타들을 위한 패션 디자이너였던 아이린은 마를레네 디트리히, 캐럴 롬바드, 조앤 크로퍼드, 진저 로저스, 리타 헤이워드 등의 드레스를 만들었고 1950년에 은퇴할 때까지 수많은 영화의 옷장을 지켰다.
하지만 영화 현장을 떠난 그녀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남편 엘리엇의 심장병으로 항상 노심초사했으며, 병원비로 경제적으로도 곤궁한 상태에 처했다. 패션쇼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지만 금전적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게다가 내연의 관계였던 당대의 스타 게리 쿠퍼가 1961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는 큰 상실감을 겪었다. 1962년 11월, 그녀는 세상과 모든 것을 단절하고 니커보커 호텔 1129호로 들어갔다. 용기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술을 마신 그녀는 방 창문으로 뛰어내려 63년의 삶을 마감했다. 일설에 의하면 건물 밖으로 돌출된 로비의 지붕 위로 떨어졌다고도 하지만 확인할 수 없는 일. 아무튼 그녀는 추락에 의한 심각한 장기 파열과 복합 골절로 세상을 떠났으며, 발견 당시 다량의 알코올로 심각하게 취한 상태였다.
그리고 3년 후, 베테랑 캐릭터 배우 윌리엄 프롤리가 이 호텔 로비에서 숨을 거둔다. <왈가닥 루시> 시리즈로 큰 인기를 얻은 조연급 TV 배우였던 프롤리는, 평소에 건강이 좋지 않아 항상 조심해야 했고, 말년엔 남자 간호사를 개인적으로 고용해 어딜 가든 항상 대동했다. 1966년 3월 3일, 영화를 보고 할리우드 대로를 걸어가던 그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함께 있던 간호사는 그를 업고 부근에 있던 니커보커 호텔로 갔다. 로비 소파에서 응급 처치를 받았지만 프롤리는 앰뷸런스가 도착하기 전에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흥미로운 건 그가 죽기 몇 주 전에, 30년 동안 지내던 니커보커 호텔을 떠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점. 하지만 니커보커 호텔에서 결국 숨을 거두었으니, 고향과도 같은 곳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후 이 호텔은 인근 지역이 황폐화되면서 마약 중독자와 매춘부들의 소굴이 되었고, 1970년대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실버타운 아파트로 사용되고 있다. 다음주는 이 호텔에서 체포되었던 프랜시스 파머라는 여배우의 끔찍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