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붙였다 뗐다… 커진 군부에 경고 메시지
김정은의 비정상적인 ‘계급장 정치’에 대해 북한 군부도 내심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합뉴스
더 놀라운 것은 장정남 계급장이 최근 1년 사이 5번이나 교체됐다는 사실이다. 2012년 12월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열린 군부 결의대회에서 충성맹세를 할 당시만 해도 중장(2성 장군)이었던 장정남은 이듬해 5월 인민무력부장에 오르며 상장 진급에 성공한다. 김정은의 총애 속에 그해 12월경 대장으로 승진했지만 불과 세 달 뒤인 지난 2월 다시 상장으로 강등됐다. 그리고 두 달 뒤인 4월에는 당중앙군사위원회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대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6월 인민무력부장 보직 해임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상장계급을 달고 등장한 것이다.
지난 6월 인민무력부장에 새롭게 임명된 현영철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0년 대장에 오른 현영철은 2012년 7월경 총참모장(한국의 합참의장)에 오르며 차수 진급에 성공한다. 하지만 지난해 5월 그는 돌연 보직 해임된다. 그러다 거의 1년 만에 인민무력부장으로 군에 복귀한 것이다. 모습을 드러낸 그의 계급은 한 단계 강등된 대장이었다.
이밖에도 윤정린 호위사령관(한국의 청와대 경호실장)은 지난 6월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됐으며, 1년 사이 상장에서 소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된 윤동현 인민무력부 부부장은 얼마 전 상장으로 다시 복귀했다.
계급 강등은 물론 보직 이동도 잦다. 북한 군부 3대 요직은 1순위 총정치국장, 2순위 총참모장, 3순위 인민무력부장이다. 인민무력부장은 김정은 시대 들어 불과 2년 사이 네 번의 교체가 있었고, 총참모장 역시 두 번의 인사가 단행됐다. 북한 최고 실세로 여겨지던 최룡해 역시 올 초 총정치국장에서 물러나 의문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러한 잦은 계급 강등과 보직 이동은 분명 군부 받들기에 나섰던 선대 김정일과는 크게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이러한 군부의 롤러코스터급 인사는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 내부에선 현재 군부에 대한 김정은의 통치 행태를 두고 ‘계급장 정치’ 혹은 ‘계급장 놀이’로 부르고 있다. 기본적으로 전문가들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군부에 대한 김정은 특유의 길들이기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기본적으로 계급장 정치는 충성 강요이자 군부 길들이기가 본 목적”이라며 “군부는 북한 권력의 핵심이자 상징적 조직이다. 계급장 정치에서 비롯된 공포 조성은 군부를 넘어 다른 계층과 집단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는 북한 전 사회와 조직에 대한 경고 차원”이라고 지적했다.
안찬일 소장은 특히 김정은의 다소 과도한 군부 계급 통제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무엇보다 선대와는 비교되는 그의 성분과 연륜 탓이 크다는 것이다. 안 소장은 “김일성은 스스로가 빨치산 출신이었다. 김정일 역시 만경대학원(혁명 유자녀들이 수학하던 북한 특유의 엘리트 중등교육기관) 시절부터 훗날 북한 군부 요직을 차지하는 혁명 유자녀들과 동학한 사이”라며 “반면 김정은은 군부 엘리트들과 연계선이 거의 없다. 게다가 나이도 어리다. 집권 초기 군부를 잡지 못하면 본인이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장정남 전 인민무력부장
박건하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은 여기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김정은 시대 들어 보위부 역할은 더욱 격상됐다. 보위부의 본래 역할이 권부에 대한 ‘통제’와 ‘감시’다. 군부 역시 보위부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받는다. 군 내부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사 대상이 됐던 장성들 대부분 보위부의 감시 탓에 약점 하나씩은 다 안고 있다. 특히 장성택의 사례는 군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군부의 인사에 안전장치로서 보위부의 역할은 핵심과 같다.”
박 사무국장은 “한국에서는 아직 주목하지 않고 있지만, 보위부장을 맡고 있는 김원홍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군부 인사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심지어 최룡해 역시 좌천성 인사가 단행되던 당시 머리를 숙이고 그에게 찾아갔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정상적인 ‘계급장 정치’의 장기화는 김정은 입장에서 도리어 목 밑의 칼로 돌아올 수 있다. 앞서 안찬일 소장도 지적했듯 이러한 특단의 조치 자체가 결국 선대와 비교해 그의 빈약한 군부 장악력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계급장 정치의 장기화에 따라 몇몇 불안 조짐도 목격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소식통은 “생각보다 장성택 조직이 견고한 듯하다. ‘계유정난’ 못지않은 피바람이 불었지만, 군 내부에서 잔존 세력을 중심으로 김정은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는 후문”이라며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무엇보다 무역권을 빼앗긴 군부 인사들이 이들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박건하 국장 역시 “확실히 과거 선군정치 시절과는 다르다. 군 위상이 예전 같진 않다”라며 “반대로 최고지도자의 군부 장악 역시 예전만 못하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과거와 비교되는 대목 탓에 김정은에 대한 불만을 비공식적으로 털어놓는 사례도 빈번하다. 현재와 같은 군부 내 공포 조성이 초기에는 효과를 볼 수 있어도 장기화될 경우는 부작용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집권 직후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난 김정은의 ‘계급장 정치’가 안정기로 가는 과도기 혹은 과정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앞서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김정은이 지닌 태생적 한계 탓에 거대 권력 조직인 군부를 최고지도자 통제 하에 완벽하게 안착시킬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