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것’ 찾는 사람들 ‘불법’ 도 가리지 않아
최근 최음제를 이용한 성범죄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최음제란 성욕을 촉진시키는 약물을 말하는데 과거에는 흔히 ‘강정제’라고 해서 남성의 성욕을 강화시키는 약으로 인식되어 왔다. 최근에는 뇌나 심장을 자극하여 흥분시키는 ‘흥분제’와 혼용되어 쓰이기도 한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최음제하면 속칭 ‘돼지 발정제’를 떠올릴 정도로 대중적 인식과는 동떨어졌지만 최근에는 ‘여성용 최음제’까지 등장할 정도로 일반화돼 은밀히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알약 형태에서 액체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최음제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고 인터넷상에서도 활발히 거래되면서 범죄에도 이용되고 있어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박 씨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구속된 박 씨는 울산지역 모 수영장 동호회 회원인 A 씨(여·40) 등 여러 명의 여성에게 접근, 커피에 최음제를 넣어 마시게 한 뒤 성폭행하고 금품을 강탈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음제의 구입 경로에 대해서는 외국에서 몰래 들여왔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박 씨가 범죄에 사용한 것은 엄격히 말해 최음제라기보다는 강력수면제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불법 약물들이 은밀히 유통되는 현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최음제로 통하고 있다.
최음제의 종류도 천차만별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 성인용품점 등을 통해서 버젓이 판매될 정도로 최음제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물론 이곳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은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취재결과, 불법 최음제도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최근 범죄 도구로도 등장하는 최음제 중에는 마약성분을 함유한 것도 있다. 이 때문에 대학가나 유흥가 주변에서는 환각제 대용으로 남용되기도 한다.
의학전문가들은 최음제에 대해 ‘중추신경을 자극해 흥분을 유발시켜 성적 쾌감을 증대시키는 약물’이라고 정의한다. 소량을 투여하면 중추신경을 흥분시켜 그 기능을 발휘하지만 다량을 투여하면 부작용으로 인해 침 흘리기, 불안, 경련에 이어 중추가 마비되고 호흡장애를 일으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최음제를 찾는 이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환각효과가 더 강한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또 보다 강력한 최음제를 찾기 위해 비싼 가격도 마다하지 않는 실정이라는 것.
그렇다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최음제와 불법 최음제의 차이는 무엇일까. 수년째 온-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P 성인용품점을 찾아가 보았다. 업주 김 아무개 씨(37)는 “대부분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는 최음제는 중국 홍콩 등에서 수입된 이름 모를 약물들이다. 이런 약들이 인터넷에서 고가에 팔리고 있는데 이를 잘못 복용하면 큰일 난다. 부작용도 심하고 의학적인 실험을 거치지 않는 것들이 많아 이용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식품안전청과 보건안전청의 허가가 없으면 최음제를 생산하거나 팔 수 없다”며 “순수하게 최음제로서의 효과를 원한다면 성인용품점에서 파는 약품으로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최음제를 구입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단순히 성적 흥분 효과 이외 다른 불순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하면서 불법 최음제의 유통실태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불법 최음제는 인터넷뿐 아니라 룸살롱이나 클럽 등과 같은 유흥주점에서도 암암리에 판매되고 있다는 것.
▲ 커피 분말 형태로 인터넷 상에서 판매되고 있는 최음제. | ||
홍대 근처의 한 클럽에서 만난 남자종업원은 최음제를 구하는 손님으로 가장한 기자에게 “우리가 직접 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원하면 그쪽(최음제 판매)으로 잘 아는 사람을 소개해 줄 수는 있다”며 최음제를 간접적으로 판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한 남성이 나타나 조심스럽게 어떤 종류의 최음제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물었다. 그는 자신을 한 아무개(35)라고 소개하며 “클럽이나 룸살롱 등지에서 판매되는 최음제는 대부분 성욕을 증대시키는 흥분제라기보다 환각작용이 강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 씨는 “내가 파는 물건은 전부 외국에서 직접 사오거나 지인을 통해 들여온 것들”이라며 “몸에 해롭다거나 부작용이 생긴다거나 하는 것은 싸구려들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물건을 사면 그런 일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왜 이런 약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겠는가”라고 기자를 안심시켰다. 그는 자신이 판매하는 약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엑스터시’나 ‘물뽕’보다 약효가 좋을 뿐 아니라 구토, 두통, 환청 등의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에는 최음제를 판다는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보았다. 한 포털사이트에 S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이 카페에서는 놀랍게도 공지란을 통해 최음제를 공개적으로 팔고 있었다. 공지란에는 판매하는 최음제의 이름과 약효가 설명돼 있었고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다.
같은 시간 이 카페를 방문한 여러 회원들과 채팅을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됐다. B라는 닉네임을 쓰는 이 회원은 최음제를 구하는 이들 가운데 여고생도 일부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그 이유는 바로 원조교제시 상대 남성에게 먹이거나 같이 먹기 위해서라는 것.
또 그 아래에는 여자친구나 술집 여성에게 최음제를 먹여 효과를 봤다는 댓글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을 통해 불법 최음제가 유통되는 사례는 상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은밀히 유통되는 최음제 중에 범죄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은 강력수면제와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학전문가에 따르면 이런 수면제는 보통 신경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물로 극도의 흥분으로 발작증세를 보이거나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이는 환자에게 긴급히 투여하는 약물로 쓰이기도 한다는 것.
이런 쌀알 크기만 한 알약이 사탕형태 또는 맛있는 과립형태로 가공되어 판매되고 있어 이를 이용한 성범죄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탕을 녹여먹다가 그것이 어느 정도 작아지면 씹어 먹는 것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이 알약을 먹으면 순식간에 정신이 몽롱해지고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어진다는 것.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마치 여성에게 최음제만 먹이면 금방 무슨 일이라도 이뤄질 것으로 잘못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흔히 시중에 최음제라고 나온 것은 술에 조금 취했을 때의 느낌 정도에 불과하다. 여성을 마구 흥분시키는 최음제란 없다. 그 수준으로 가면 이미 마약이고 정신을 잃게 하는 것은 수면제용”이라고 전했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관계자 역시 “강력수면제가 최음제로 잘못 알려져 유통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안다”라며 “이런 약물은 물처럼 무색무취무향의 액체이거나 혹은 커피 분말 등으로 그 형태를 교묘하게 위장해서 유통되는 탓에 찾아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