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소설마다 분량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장편 소설은 200분 남짓한 영화 한 편으로 옮기기엔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감독이 원작 소설의 내용을 적절히 취사선택한 뒤 스크린에 옮겨 놓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생략되느냐에 따라 원작과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원작이 소설이라고 해서 감독이 반드시 원작 소설에 충실해야 할 까닭은 없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새로운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원작 소설보다 훨씬 좋은 영화가 탄생하기도 하며 원작 소설을 읽은 관객이라면 아쉬움을 표현하는 영화도 나오기 마련이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대표적인 원작 소설을 망친 영화로 영화사에 길이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스웨덴 원제는 <Hundraåringen som klev ut genom fönstret och försvann>, 영어 제목은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이다. 러닝타임 114분.
우선 원작 소설부터 살펴보자. 스웨덴의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인 요나스 요나손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데 이 소설은 2010년 스웨덴 베스트셀러상, 2011년 독일 M-피오니어상, 덴마크 오디오북상, 2012년 독일 <부흐마크트. 선정 최고의 작가 1위, 프랑스 에스카파드 상 등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한다.
인구 900만의 스웨덴에서만 110만 부 이상 판매된 이 소설은 전 세계 38개국에 번역돼 6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국내에서도 영화 개봉을 즈음해 상당한 판매 실적을 올린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그런데 미안한 얘기지만 영화와 소설은 전혀 다른 얘기를 닮고 있다. 기본적으로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100세 노인인 알란이다. 두 작품에서 알란은 전혀 다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소설 속 알란은 어린 시절 특수한 사연과 경험을 갖고 있다.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혁명을 위해 러시아로 떠나지만 정치적인 심경 변화로 인해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에 반대하다 죽음을 당했다. 늘 정치 얘기를 하던 아버지가 정치적 혼란 속에 사망하면서 알란은 평생 정치적인 견해를 갖지 않고 살아간다.
그가 현대사의 굵직한 인물과 사건에 연이어 휘말리면서 냉전시대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오가며 독특한 인맥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아버지의 죽음에서 비롯된 확실한 정치적인 중립, 아니 무관심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위해 폭탄 관련 회사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배운 폭파 기술은 그의 인생사에 큰 밑천이 된다. 심지어 미국과 러시아의 원자폭탄 개발 경쟁에서 엄청난 역할을 해낼 정도로.
원작 소설 표지
반면 영화 속 알란은 우연히 어린 시절부터 폭파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술주정뱅이로만 그려진다. 아무래도 알란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의 죽음 등을 구체적으로 그리기엔 114분의 러닝타임이 너무 짧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왜 알란이 폭파 기술이 남다르며 정치적으로 중요한 타이밍마다 술주정만 부리고 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영화의 큰 주제인 100세 노인 알란의 인생과도 직결되는데 영화 속 알란은 ‘단순히 우연으로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핵심적인 인물들과 함께 한 파란만장한 술주정꾼‘이 되고 말았다.
혹 영화만 보고 알란이라는 100세 노인에게 편견을 갖게 된 관객이라면 늦게라도 원작 소설을 통해 알란의 진면목을 만나보길 바란다. 알란은 영화처럼 단순히 운이 좋은 술주정뱅이가 아니다. 중국에서 육로로 스웨덴까지 가지 위해 맨손으로 히말라야를 넘으려 하는 도전 정신부터 스파이가 돼지만 정보를 활용해 오히려 미소 냉전 종식을 위해 앞장선 평화정신까지 갖춘, 소설 속 알란은 정말 멋진 인물이다.
@ 줄거리
줄거리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영화 홍보사의 홍보 문구부터 살펴보자.
‘전 세계 600만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전격 영화화 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지난 100년간 스탈린과 김일성, 아인슈타인의 멘토로 20세기 역사를 들었다 놨다 한 숨겨진 능력자 알란 할배가 100세 생일을 맞아 요양원을 탈출하며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세계 여행을 그린 베스트셀러 휴먼 코미디다.’
이건 사실 영화가 아닌 소설의 홍보 문구에 가까운데, 그마저도 과정이 너무 심하다. 절대 알란은 스탈린과 김일성,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멘토가 아니다. 우선 스탈린은 한 번의 만남에서 알란을 오해하게 돼 그를 블라디보스토크로 강제 노역을 보낸 인물이다. 나중에 알란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벌인 일로 인해 스탈린이 사망하게 되니 이들은 서로에게 철저히 악연이다. 그런데 멘토라니, 어불성설이다.
김일성은 더욱 그렇다. 소설에선 알란이 김일성-정일 부자와 만나는 장면이 나오지만 역시 김일성 정일 부자와 알란의 인연은 악연에 가깝다. 다행히 동석한 마오쩌둥이 과거의 좋은 인연으로 알란을 구해준다. 문제는 영화에선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만나는 장면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는 것. 결국 영화 홍보사는 영화에 나오지도 않는 소설 내용을 갖고 영화를 과장 홍보한 셈이다.
더욱 안타까운 부분은 아이슈타인이다. 영화와 소설에는 모두 아인슈타인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알란은 우연한 계기로 아인슈타인의 이복동생을 만나 절친이 되는데 영화에선 매우 짧게 스쳐지나가듯 아인슈타인을 닮은 이복동생이 나올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란이 만나지도 못한 아인슈타인의 멘토라는 것일까. 최대한 원작 소설의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영화를 홍보하려다 과장 허위 광고를 하고 만 셈이다.
다음은 영화 홍보사가 배포한 영화의 줄거리다.
알란s 10대 : 폭탄 제조의 달인으로 남다른 능력을 보유.
알란’s 20대 : 폭탄 실험 중 실수로 이웃 식료품 가게 주인 사망. 위험인물로 분류,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생체실험 감행, 남성적 기능(?) 상실.
알란’s 30대 : 스페인 내전 참전. 폭탄 실험 중 우연히 지나가던 파시스트 프랑코의 목숨을 구하며 그의 최측근으로 영웅 등극.
알란’s 40대 : 미국 원자폭탄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치명적 결함 우연히 해결.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키며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수석 과학, 정치 멘토로 활동.
알란’s 50대 : 미국 CIA요원으로 발탁되어 미국과 러시아의 이중 스파이로 활약. 어쩌다 보니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일조…?!
알란’s 100세 : 생일을 맞아 다시 모험을 떠난 100세 할배. 갱단의 검은 돈을 손에 넣게 되는데…
사실상 알란의 일생을 정리한 줄거리인데, 영화는 이처럼 알란의 100년 인생사를 훑듯이 보여준다. 그때마다의 사연과 알란의 심경 등이 풍성하게 그려진 소설과 달리 우연한 계기에 현대사의 중요 인물을 만나 굵직한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그려질 뿐인데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실소만 나올 뿐이다.
게다가 원작 소설은 알란의 100살 인생사와 100살 생일에 창문 넘어 도망친 이후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창문 넘어 도망친 이후의 사건과 알란의 100살 인생사를 적절히 조화한 소설과 달리 영화는 100살 생일에 창문 넘어 도망친 이후의 사건만 원작 소설을 최대한 살려서 그려냈다. 그리고 알란의 100살 인생사는 중간 중간 맛보기로 삽입했을 뿐이다. 결국 이 영화는 알란의 100살 인생사보다는 100살 생일에 창문 넘어 도망친 이후의 사건이 더 중심인 영화인 셈이다.
그런데 영화 홍보사의 줄거리는 정작 영화의 핵심인 100살 생일 창문 넘어 도망친 이야기는 ‘갱단의 검은 돈을 손에 넣게 되는데…’ 한 줄로 줄여 놓고 영화 속 양념인 알란의 100살 인생사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원작 소설의 맛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영화를 들고 홍보사에선 영화와 소설을 적절히 섞은 엉뚱한 영화 정보를 만들어 낸 셈이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 나와 있는 영화 홍보사가 제공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영화 홍보는 영화보다 소설을 홍보하는 내용에 더 가까운 만큼 굳이 이 영화를 관람하려 한다면 이 부분을 반드시 유의하길 바란다.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원작 소설을 읽은 뒤 허망함과 황당함을 경험하고 싶다면 클릭
추천할 만한 구석이 거의 없는 영화다. 원작 소설이라면 두 손 들어 추천한다. 책의 일부분에서 특정 인종이나 국가를 비하하는 듯한 뉘앙스가 풍겨 아쉽기도 하지만 충분히 읽는 재미를 선사하는 책이다. 그렇지만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황당하고 허망하다. 원작 소설의 재미를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반감시킬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만 남긴 영화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0 원
영화로서의 추천 가치가 없다고 판단돼 추천 다운로드 가격은 0원으로 책정했다. 우선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원작 소설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원작 소설을 읽은 관객의 경우 이 영화를 보면 원작 소설을 보고 받은 감흥과 재미가 크게 훼손될 수 있으므로 동명의 이 영화는 관람을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