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배 그 아이들 ‘파죽지세’ 활약
홍콩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는 일요신문배에서 활약을 했던 아이들이 참석해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지난 14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홍콩 샥틴 묘수기원에서 ‘제3회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가 대망의 막을 올렸다. 아시아학생바둑연맹이 주관하고 각국 단장이 후원하는 제3회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는 바둑을 통해 아시아 학생들의 소통과 교류, 넓게는 아시아의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오전 9시 30분에 진행된 개막식에서는 각국의 바둑계 귀빈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한국에서는 한국중고바둑연맹 최화길 회장, 강준열 상임고문, 아시아바둑연맹 김달수 사무총장, 부산 초등바둑연맹 김향희 사무총장, <일요신문> 신상철 사장이 참석했고, 중국에서는 중국부이회소년궁청소년기원 왕샤오떠 부비서장, 홍콩에서는 섬와이탓 스마트고 아카데미 대표, 일본에는 바둑교육진흥회 사카 대표가 참석했다.
아시아 대회에 걸맞게 축사 역시 4개국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했다. 홍콩 대표로 축사를 맡은 섬와이탓 단장은 “따자하오, 곰방와, 안녕하세요. 열심히 하세요. 감사합니다”로 다채로운 축사를 했다. 한국 대표로 축사를 맡은 최화길 회장은 “이번 3회 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돼서 기쁘고 여러분들도 모두 파이팅 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일요신문> 신상철 사장은 “이 대회에서 언급된 ‘평화’라는 단어를 주목했으면 한다. 어른들은 만나면 툭하면 싸우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들만큼은 이번 대회를 통해 어떻게 평화를 이룰 것인지 잘 공부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각국 바둑계 귀빈들(위)과 상패를 받은 아이들의 단체 사진. 위 사진 왼쪽부터 왕샤오떠 부비서장, 최화길 회장, 섬와이탓 대표, 사카 대표, 신상철 사장.
1차전은 오전 10시부터 오전 11시 30분까지 진행됐다. 이후 쉬는 시간 없이 바로 2차전이 진행됐다. 아직 승부는 초반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표정에는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1승을 순식간에 획득한 한국의 진훈 학생(연은초)은 “방금 경기가 너무 일찍 끝났다”라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2차전이 끝난 뒤 점심시간이 이어지고, 오후 2시부터 3차전에 들어갔다. 앞서 경기와는 달리 3차전에는 왠지 모를 적막감과 긴장감이 맴돌았다. 스위스 방식인 만큼 승수 혹은 패수가 같은 상대와 붙다보니 실력이 그만큼 팽팽한 상태가 이어진 것이다.
긴장감이 가득하다보니 에피소드도 생겨났다. 홍콩의 세미 학생(여)과 일본의 후카미 예스노리 학생이 돌을 두는 방식을 두고 대립한 것이다. 세미 학생은 “착수를 했지만 손을 떼지 않은 채 돌을 옮겼으니 문제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후카미 학생은 “착수를 할 때 손을 이미 뗐다”는 주장으로 팽팽히 맞섰다. 만약 두 사람 중 한 명의 의견을 따른다면 승부가 상당 부분 기울 수밖에 없는 상황.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후카미 학생은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결국 심판위원장은 재 대국을 결정했다.
고단자부 우승자 김지성(왼쪽)과 최화길 회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제3회 일요신문배 어린이바둑대회’에서 상당한 활약을 펼친 학생들이 이번 대회에서 파죽지세의 실력을 뽐냈다는 점이다. 일요신문배에서 유단자부 우승을 차지한 김지성 학생(연은초)과 준우승을 차지한 진훈 학생은 이번 대회에서 고단자부 결승에서 맞붙었다. 치열했던 김지성과 진훈의 전투는 끝내 김지성의 계가승으로 마무리됐다. 김지성 학생은 “경기 중반 대마를 잡은 게 승리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일요신문배에서 만난 진훈을 또 만나니 반가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지성과 진훈이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가운데 고단부 3위는 홍콩의 하이단 학생에게 돌아갔다.
저단부 우승 역시 일요신문배에서 유단자부 공동 3위를 차지한 권효진 학생이, 준우승은 김노경 학생에게 돌아갔다. 3등은 임진우 학생에게 돌아갔다. 우승을 차지한 권효진 학생은 “재미있는 승부였다. 홍콩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다시 오고 싶다”라고 전했다.
고급부 우승은 김태훈 학생에게 돌아갔다. 준우승은 일본의 후쿠하라 미치히토, 3위는 홍콩판러와이 학생에게 돌아갔다. 중급부 우승은 일본의 오카 쇼타로에게 돌아갔다. 준우승은 홍콩의 사무엘 와이 학생에게, 3위는 홍콩 창힌해이 학생에게 돌아갔다. 준우승자 오카 쇼타로는 “사실 질 뻔한 상황까지 갔었는데 막판에 겨우 뒤집었다. 정말 다행이고 기쁘다”라고 전했다.
저급부 우승은 홍콩의 라우 웨이 람, 준우승 역시 홍콩의 고든에게 돌아갔다. 3위는 일본의 오야마에게 돌아갔다. 수상식이 마무리된 후 기념사진을 끝으로 대회는 마무리됐다. 상하이에서 펼쳐지는 다음 대회를 기약하는 아시아 학생들은 어느새 모두 절친한 친구가 됐다.
홍콩=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각국 학생들 선발 어떻게 홍콩 예선전 500명 몰려 인기 이번 대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각국에서 치열한 예선전을 거쳐 선발됐다.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 참석 티켓을 얻기 위해선 그만큼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 가장 큰 경쟁률을 보인 곳은 주최국 홍콩이다. 토너먼트를 거쳐 총 30명의 학생이 참가한 홍콩은 예선에만 무려 ‘5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려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섬와이탓 홍콩 단장은 “대회가 입소문이 많이 났다. 그만큼 행복한 고민을 해야 했다”라고 전했다. 일본 역시 인기를 끌기는 마찬가지다. 50여 명의 신청자 중 예선전을 거쳐 최종 11명을 선발한 일본은 학부모들의 비상한 관심으로 눈길을 끈다. 사카 일본 단장은 “예선전부터 부모님들이 많이 와 감동을 받았다”며 “일본 기원에서도 이 대회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중국의 경우 예선을 거쳐 최종 5명이 참석했다. 왕샤오떠 중국 단장은 “이번 대회에 당국의 공무원이 함께 동행 할 만큼 중국에서도 관심이 높다. 내년에 있을 상해 대회를 기대해도 좋다”라고 전했다. 한국은 ‘제3회 일요신문배 어린이바둑대회’ 수상자 4명, 부산중급바둑연맹 소속 학생 4명 등 총 10명이 참석해 다양한 구성원을 뽐냈다. 강준열 상임고문은 “한국 학생들이 실력이 좋아 상위권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전했다. [환] |
일본 사카 단장 인터뷰 “바둑으로 한-중-일 평화 이루자” ―아시아학생평화바둑대회가 사카 단장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얘기가 있다. “2003년경에 일본 바둑 관계자들과 한국 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한국의 바둑 교육 시스템을 알아보고 싶어서다. 그때 만난 사람이 한국중고바둑연맹 최화길 회장이다. 최 회장을 만나고 나서 일본으로 돌아와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를 구상했다. 2010년경에는 직접 최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회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대회를 준비할 당시 초반에 어려움은 없었나. “설득 작업이 조금 힘들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바둑을 통해 아시아의 평화를 이루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학생대회인데 거창하게 왜 평화가 나오느냐. 너무 정치적인 것이 아니냐’라는 오해가 많았다. 심지어 괴짜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꾸준히 설득하다보니 결국 각국 단장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평화’를 강조하는가. “일본의 전후처리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과의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일본과 중국의 영토 분쟁도 심각해지고. 이런 상황에서 한중일의 공통분모가 무엇일까 생각했더니 바로 ‘바둑’이다. 바둑으로 통하니까, 바둑으로 만나 궁극적으로는 아시아의 평화를 이루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 2011년도에 남북 간 경색국면이 갑자기 일어나자 ‘빨리 시작 해야겠구나’라고 결심했다. 아시아 내에서 이젠 전쟁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바둑을 위해 뛰느라고 정년퇴직금, 연금 등 사재를 모두 털었다는 얘기도 있다. “원래 직업이 교사였다. 사재를 일부 쓴 것은 사실이다. 정년퇴직금을 다 쓴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얼마 전부터 계약직 교사로 재취업을 해 고등학생들에게 수학, 전기 과목을 가르친다. 일을 하니까 형편은 괜찮다.” ―향후 목표는 어떻게 되나. “방과 후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바둑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바둑과 교육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연말에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일본의 남자 평균 수명이 76세다. 내가 지금 66세이니 꼭 10년 남았다. 이 10년 안에 바둑학교와 아시아학생평화대회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반드시 이루고 말 것이다.” [환] |
커지는 대회 규모 내년엔 태국 대만 합류 가능성 제1회 아시아학생평화바둑대회는 2012년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됐다. 사카 일본 단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추진을 한 게 결실을 낳았다. 사카 단장이 대회를 추진하고 한국 측에 참석을 요청하자, 한국 측은 중국 측(왕샤오떠 단장)과 사카 단장을 연결시켜줬다. 그렇게 해서 1회 대회는 한-중-일 3개국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2회 대회는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됐다. 한국 측은 한국중고바둑연맹 최화길 회장과 강준열 상임고문, 아시아바둑연맹 김달수 사무총장이 주축이 됐다. 최화길 회장이 사카 단장 쪽과 핫라인을 구축한다면, 강준열 상임고문은 전반적인 윤곽과 실무를, 외국어에 능통한 김달수 사무총장은 의사소통을 전담하는 식이다. 2회 대회 한-중-일 3개국뿐만 아니라 홍콩, 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외형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이후 홍콩이 3회 개최지로 결정된 것은 2회 대회가 끝난 후인 지난해 8월경이다. 홍콩 단장으로는 섬와이탓 스마트 고 아카데미 대표가 나섰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바둑학원이 많은 홍콩에서는 학원 대표가 단장이 되어 대회에 참석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이번 대회는 한-중-일-홍콩 외에도 태국, 대만 등 다른 아시아 국가도 합류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다른 대회와 일정이 겹쳐 결국 두 나라는 참석하지 못했다. 강준열 상임고문은 “내년에 진행되는 대회는 태국, 대만 등도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내년에 열리는 제4회 대회는 중국 상해에서 진행될 것으로 결정됐다. 이렇듯 아시아학생평화바둑대회는 각국 단장들과의 긴밀한 소통과 끈끈한 관계가 주축이 되어 순항하는 중이다. 왕샤오떠 중국 단장은 “대회를 통해서 바둑실력과 친선을 다질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대회”라고 극찬했다. 섬와이탓 홍콩 단장은 “몸이 바빴을 뿐, 어려운 점은 거의 없었다. 각국 단장들이 열심히 도와주니까 너무 순조롭게 대회가 준비됐다”라고 전했다. 한편 민간 아마추어 차원에서 아시아 국가 학생들이 참여하는 바둑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가 현재까지 유일하다. 강준열 상임고문은 “격식을 차리기보단 민간 차원의 교류를 강조한다. 3회 대회까지는 아직 초반이라 미흡하고 시행착오가 있을지라도 4회부터는 그만의 시스템을 갖고 훌륭하게 운영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전했다.[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