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빠른 차 경쟁 미쉐린 손에 달렸다
기네스 최고속도 기록(431㎞/h)을 보유한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츠. 아래는 지난 2월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진행한 공식 테스트에서 최고속도 435㎞/h를 돌파한 헤네시 2014년형 베놈 GT.
헤네시의 고성능 스포츠카인 2014년형 베놈 GT(Venom GT)는 지난 2월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진행한 공식 테스트에서 최고속도 435.3㎞/h를 돌파했다. 비록 조건에 미달해 기네스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츠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었다. 양산차의 경우 기네스 공인 기록을 인증받으려면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먼저 일반고객에게 판매하는 스펙과 동일한 자동차로 주행해야 하고, 둘째 기울기가 없는 도로에서 2회 주행해 평균기록을 산출해야 하며, 셋째 최소 30대 이상을 생산한 자동차여야 한다. 베놈 GT의 경우 테스트 주행을 한 번만 했고, 생산 대수도 29대에 불과해 인증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기네스 왕좌는 지켰지만, 부가티의 자존심은 심하게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헤네시의 도발에 대한 응수였을까. 부가티는 지난 7월 말 베이론 슈퍼 스포츠의 후속 모델 개발 계획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 새 모델은 탄소섬유 모노코크 차체를 적용해 기존의 베이론 슈퍼 스포츠보다 무게를 줄이고 엔진도 업그레이드해 1500마력의 최대출력을 뿜어낼 것이라고 한다. 부가티 측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새 모델이 제로백(출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 2.3초에 안전최고속도 460㎞/h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만약 신모델이 출시되면 헤네시 베놈 GT를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는 스피드를 지닌 셈이다.
헤네시 베놈 F5
부가티와 헤네시 양측 모두 새로운 모델의 구체적인 제원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은 상태라 개발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점치기는 어려운 상태. 하지만, 일부 외신은 벌써부터 ‘시속 460㎞가 넘는 양산차’의 출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내비치고 있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구동계, 타이어 등이 이러한 경이로운 스피드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특히 타이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안전최고속도 460㎞/h가 넘는 양산차는 꿈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초고속 주행에서 엔진과 변속 시스템뿐만 아니라 타이어가 중요 요건으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동차의 주행속도가 높아질수록 지면과의 마찰과 내부에 작용하는 공기압 때문에 타이어의 온도는 급격히 상승한다. 이 열이 타이어 내부에 축적되고 일정 온도 이상 올라가면 타이어를 구성하는 고무와 코드 사이의 접착력이 줄어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따라서 타이어의 열을 발산하는 기능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급정지할 때 발생하는 열로 인해 타이어가 파손될 수 있으므로 강한 내구성도 갖춰야 한다. 또한 고속 주행 중에 안정적으로 코너링을 하고, 제동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설계 단계부터 타이어의 접지 면적, 재질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시중에서 사용되는 일반 타이어의 경우 주행시 견딜 수 있는 ‘한계 속도’를 알파벳 기호로 타이어에 표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속 160㎞ 이하의 주행에 적합한 Q등급부터 시속 300㎞까지 견딜 수 있는 Y등급까지 7등급으로 나뉜다. 시속 300㎞가 넘는 속도로 고속 주행하기 위해서는 일반 타이어와는 다른 UHP(Ultra High Performance:초고성능) 타이어가 필요하다. UHP 타이어는 초고속 주행이 가능하도록 방열 기능과 내구성, 접지력 등을 업그레이드한 타이어로 가격도 일반 타이어의 3~4배에 달한다.
그런데 시속 400㎞를 넘는 초고속 주행을 위해서는 UHP 타이어보다 성능이 월등한 특수 타이어가 필요하다. 초고속 주행 중에는 고속 주행 때보다 훨씬 높은 고열이 타이어에 발생하므로 ‘슈퍼 초고성능급’의 방열 기능을 갖춰야 한다. 또한 초고속에서도 안정적인 코너링과 제동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타이어의 재질, 구조와 기능이 기존 UHP 타이어보다 몇 수 위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최고속도가 400㎞/h가 넘는 슈퍼카들의 경우 차체와 디자인, 파워 트레인과 변속시스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주문 제작되는 전용 특수 타이어가 장착된다.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츠나 헤네시 베놈 GT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츠는 전용 특수 타이어 가격만 2만 5000달러(약 2500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현재의 타이어 기술로는 초고속 주행을 일정 시간 유지하기가 어렵다.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츠는 최고속도가 431㎞/m에 달하지만, 일반 판매형 차량의 경우 타이어 보호와 안전을 위해 ‘스피드 리미터’를 장착해 안전최고속도를 415㎞/h로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부가티 베이론이 최고속도로 계속 달린다면 특수 타이어라 할지라도 5분을 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게 타이어 업계의 정설이다.
헤네시 베놈 GT 역시 속사정은 비슷하다. 헤네시 베놈 GT의 특수 타이어를 제작하는 업체가 바로 부가티 베이론 슈퍼 스포츠의 특수 타이어를 공급하는 미쉐린이기 때문이다. 미쉐린이 별도 제작하는 특수 타이어는 시뮬레이션상으로 최고속도 450㎞/h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부가티와 헤네시가 개발 중인 새 모델은 모두 460㎞/h 이상의 최고속도를 표방하고 있다. 기존의 한계속도를 뛰어넘는 슈퍼 초고성능의 타이어가 필요한 셈이다.
결국 역대 최고속도의 양산차 출현은 미쉐린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