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잔소리에 퐁당샷! 배짱 참 놀라워라~
지난 11일 마이어 LPGA 클래식 연장전에서 박인비(오른쪽)를 꺾고 우승한 이미림이 동료들의 축하 물세례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1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마이어 LPGA 클래식에서 거함 박인비(26·KB금융그룹)를 침몰시킨 이미림의 저력은 이런 배짱에서 나왔다. 이미림은 주변으로부터 “마음은 비단결이지만 경기 스타일은 공격적”이란 소리를 듣는다.
미국 진출 첫 승을 일궈낸 마이어 LPGA 클래식 최종라운드도 그랬다. 루키 신분인 이미림은 지난해 메이저 3연승의 대기록을 세운 선배 박인비와의 연장전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강공 일변도였다. 박인비는 승부가 갈린 연장 두번째 홀인 17번 홀(파4,269야드)에서 무리하지 않고 아이언으로 티샷했다. 반면 이미림은 드라이버를 잡고 1온을 시도했다. 이미림은 티샷을 벙커에 빠뜨렸지만 벙커샷을 핀 1.5m에 붙이며 버디로 연결시켜 파에 그친 박인비를 제압할 수 있었다.
이미림의 배짱은 부친의 기질에서 비롯됐다. 전남 광주에서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던 부친 이 씨는 남광주CC 클럽 챔피언 출신으로 당시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마 고수였다. 내기 골프가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판이 커질수록 무조건 홀을 지나가는 퍼팅을 하자는 철칙이 있었다. 부친 이 씨의 지론은 “돈은 잃어도 사람은 잃지 말자”였다. 큰 판일 때 과감하게 퍼팅해야 됨됨이를 인정받는다는 뜻이었다. 마이어 LPGA 클래식 우승을 결정짓는 이미림의 연장전 버디 퍼트도 ‘쫄쫄쫄’ 굴러가다 들어가는 퍼팅이 아닌, 빠른 속도로 홀을 파고드는 과감한 퍼팅이었다.
두둑한 배짱과 달리 이미림은 섬세한 면도 있어 친구도 깊게 사귄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동갑내기 단짝으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최운정(24·볼빅)과의 관계가 그렇다. 마이어 LPGA 클래식 최종일 최운정은 오전 조로 출발해 일찍 경기를 마쳤다. 그리고 다음 대회인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출전을 위해 뉴욕으로 먼저 이동했다. 자신의 경기가 끝난 후 6시간이 지난 후에 우승자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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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정은 이미림을 미국무대로 이끈 인도자이기도 했다. 지난해까지 국내무대에서 뛰던 이미림에게 “골프선수로 이름 석자를 남기려면 큰 무대로 가야 한다”며 미국LPGA투어 Q스쿨에 응시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이미림이 미국무대에 입성하자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했다. 그 덕에 이미림은 시행착오 없이 미국 생활에 연착륙할 수 있었고 14개 대회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이미림의 부친 이대성 씨는 “운정이는 인품이 정말 좋은 아이다. 우리 미림이가 신세를 많이 졌는데 운정이에게도 조만간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미림을 대표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정직’이다. 이미림은 심판이 없는 스포츠인 골프의 본질에 충실한 선수다.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란 생각에 투철해 어려서부터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중학교 1학년 때다. 용인 프라자CC에서 열린 중고연맹 대회 예선전에 출전한 이미림은 17번 홀에서 남의 볼로 플레이한 사실을 그린에 올라가서야 알게 됐다. 드라이버샷이 왼쪽으로 OB구역으로 날아가 잠정구를 치려했으나 캐디가 괜찮다고 말해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다. 그러나 그린에서 사단이 났다.
이미림은 이날 T 사의 빨간색 1번 볼을 사용했는데 그린에서 마크 후 집어든 볼은 같은 회사 제품, 같은 번호의 검은색 볼이었다. 1타차로 예선탈락과 통과가 갈리는 상황이었지만 어린 이미림은 단호했다. 캐디에게 “언니, 이 볼 제 볼 아니에요”라고 말하자 캐디는 “오늘 하루만 그냥 넘어가면 안 되니?”라고 회유했다. 그 순간 이미림은 “그러면 안돼요”라고 말한 뒤 예선탈락을 선택했다.
이미림의 이런 행동은 프로무대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달 열린 리코 브리시티여자오픈에서 깊은 러프구역에서 샷을 준비하다 볼이 움직이자 곧바로 경기위원을 불러 벌타를 받았다. 이미림은 국내무대에서 뛸 때도 그린에서 미세하게 볼이 움직이자 지체 없이 ‘자진납세로’ 벌타를 받았다. 이미림의 성공은 이런 정직함이 쌓여 이뤄졌다는 평가가 있다. 우승을 결정하는 신(神)도 정직한 스포츠맨십을 좋아하지 않을까.
이강래 헤럴드스포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