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안 망한다” 자신감 ‘조커’ 따로 있나
▲ 구속수감 중인 주수도 제이유 회장의 옥중서신 때문에 로비설 관련 소문이 돌고 있다. 연합뉴스 | ||
사상 최대의 ‘다단계 대란’을 몰고온 제이유그룹 주수도 회장(50)의 첫 공판을 전후해 정·관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사기·비자금 조성·공금횡령·주가조작·정관계 로비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주 회장이 ‘아군’이 모두 떠난 최악의 위기상황에서도 여전히 그룹 재건 의지를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없는 처지의 주 회장이 ‘배짱’을 부리는 이유를 두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혹여 주 회장이 감춰둔 ‘비장의 카드’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 일각에선 주 회장을 비호하는 세력이 아직 건재한 상태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유례없는 검찰의 압박수사에도 불구하고 주 회장은 대부분의 혐의를 시인하지 않은 채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 또 다른 ‘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검찰 조사과정 및 수감생활 중 보인 주 회장의 태도로 보아 첫 기일인 8월 28일은 물론 향후 공판 과정에서도 그가 자신의 혐의들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으리란 게 법원 주변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오히려 주 회장이 공판 과정에서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그의 입에서 나올지도 모를 ‘폭탄발언’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7월 26일 검찰에 검거된 이후 성동구치소에 수감 중인 주 회장은 한때 무기한 단식까지 선언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무언의 시위를 벌여왔다. 그간 온갖 역경에도 자신을 옹호해주던 측근들마저 등을 돌린 현 상황에서도 주 회장은 여전히 자신에 찬 모습을 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유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 회장이 없는 현재의 제이유그룹은 경영진 및 직원들이 모두 그룹에서 손을 뗀 상태로 그룹이 사실상 와해 직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립 이후 제이유그룹은 수 차례 위기를 맞아왔지만 최고 경영자가 수감된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그간 수많은 위기 상황에서도 그룹을 적극 변호해왔던 홍보실 역시 8월 1일부로 ‘자진해산’한 상태.
8월 22일 직접 확인해본 결과 그룹 내부 상황은 훨씬 심각해 보였다. 제이유그룹은 현재 담당자는 물론이고 부서 전화번호까지 교체되었으며 남아 있는 소수의 사람들마저도 제대로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룹의 가장 큰 수입원으로 꼽혀왔던 제이유백화점은 아예 영업중단에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한 그룹 관계자는 “하루 매출이 30만~40만 원에 불과한 상태라 인건비를 건지기는커녕 회사 문을 여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현재 주 회장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그간 그룹을 받쳐주고 있던 경영실무팀의 해체로 보인다. “주 회장의 부재에도 사업자들을 독려하며 회사 경영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던 간부들이 모두 손을 뗐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단계다. 더 이상 제이유그룹에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는 것이 얼마 전까지 그룹에 몸담았던 실무진의 얘기다.
▲ 박용호 전 제이유그룹 부회장 | ||
올 2월부터 그룹의 상근 부회장으로 근무해온 박 전 부회장은 주 회장이 잠적하고 검찰 수배를 받는 최악의 위기상황에서도 회원들을 독려하는 등 그룹 재건에 실질적인 역할을 맡아온 터라 그의 ‘결별’ 결정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그는 공인으로 쌓아온 이미지를 이용, 그간 그룹 홍보와 대외적인 업무를 맡아왔음은 물론 주 회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나타낸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룹내 악재가 끊이지 않는 데다가 그룹 실무자들이 하나둘씩 손을 떼는 상황에서 박 전 부회장 역시 적잖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측근의 얘기다.
그룹 관계자는 “주변에서 ‘제이유에서 발을 빼라’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마저 다 깎인다’는 충고를 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얼마 전 방송국 후배들 및 PD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박 전 부회장은 제이유 법인카드로 결제를 하려 했지만 카드가 정지되어 있었다는 것. 당시 현금도 갖고 있지 않았던 박 전 부회장은 모처럼 가진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적잖은 곤욕을 치렀다는 후문이다.
이 술자리 사건이 ‘자존심’과 ‘명예’를 중요시 여겨온 박 전 부회장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는 얘기도 있다. 더구나 월 1000만 원 이상의 급여를 약속받고 부회장으로 근무했지만 무려 3개월째 급여가 나오지 않았던 점도 주 회장과의 ‘결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설상가상으로 고액의 수임료설에도 불구하고 주 회장을 적극 변호해줄 것으로 기대됐던 송광수 전 검찰총장마저 변론을 포기함에 따라 주 회장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이나 마찬가지인 처지.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그룹 주변에서는 주 회장의 재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주 회장에 대한 대다수 직원들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이다.
한 실무진은 “3개월 동안 급여가 안 나왔으니 직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쌓여 있던 불만들이 여기저기서 곪아터져 나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올 3월 중순경 주 회장이 공장을 둘러본다며 중국으로 출국을 시도했지만 ‘출금 조치’로 무산된 적이 있었다. 앞뒤 정황을 보면 주 회장은 그때 아예 도망가려고 했던 것 같다”며 깊은 불신을 나타냈다. 주 회장이 이미 도피생활을 위한 거액의 자금을 측근들을 통해 해외로 빼돌렸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공판을 앞둔 주 회장은 여유로운 모습이라는 것이 구치소 및 제이유 관계자들의 얘기다. 주 회장의 배짱과 자신감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첫 공판을 앞두고 세간에 ‘주수도 게이트’가 다시금 거론되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 4월 ‘주수도 게이트’를 예고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국정원 내사 보고서는 ‘여당 의원은 물론 공정위 및 검·경 관계자 등 뇌물 수수자가 워낙 많아 그대로 드러나면 그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여전히 주 회장을 뒷문으로 비호해주는 정·관계 인사들이 존재할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주 회장은 지난 6일 제이유그룹 임직원과 전국의 사업자들에게 보낸 옥중서신에서 “제이유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오히려 그는 ‘지난 4년 전 3·12 사태 때를 상기해 보라. 이때 떠나갔던 모든 사람들이 그후 어떠했는지를…. 제가 감옥에 있다고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큰 오판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자신을 배반한 자들의 끝이 좋지 않았음을 경고(?)하는 한편 그룹 재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3·12사태란2002년 3월 검찰이 제이유 네트워크의 전신인 주코의 판권마케팅이 상품거래를 가장해 유사수신 행위를 한 혐의가 있다며 기소한 사건. 당시 제이유 사업자들이 상당수 등을 돌렸지만 법원은 1심과 2심, 최종심에서 무죄를 선고함).
구속된 이후 주 회장은 한 측근에게 <펜으로 위기를 탈출하는 법> 등 재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책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주 회장은 얼마 전 자신의 현재 상황을 ‘에디슨의 역경’에 비유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에디슨이 무려 2000번의 실패 끝에 전구 발명에 성공했을 때 에디슨이 ‘나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단지 2000번의 단계를 거쳐 전구를 발명했을 뿐’이라고 말한 것을 들어 현재의 위기를 제이유가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역설했다는 것.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 회장의 이 같은 행동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항간에서는 이를 두고 주 회장이 아직 믿는 구석이 있다거나 정·관계 로비설과 관련된 비장의 카드를 준비해 놓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여지껏 주 회장이 최측근들을 이용, 위기를 교묘히 빠져나갔던 것으로 보아 이번에도 역시 그동안 구축해놓은 거미망 인맥들을 총동원,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제이유그룹의 한 관계자는 “주 회장이 아직도 쓸 만한 ‘동아줄’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주 회장의 이 같은 ‘옥중 처신’이 여전히 자신을 믿고 있는 사업자들을 독려하기 위한 술수라는 얘기도 있다. 그가 뛰어난 화술과 사람의 마음을 여는 비법으로 사업자들을 모으고 그간 수많은 유명인사들을 영입, 그룹 이미지 마케팅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역시 주 회장의 ‘연극’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반면 검찰 쪽에서는 ‘횡령 등 추가 혐의가 포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 회장 스스로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8월 24일 현재 주 회장은 첫 공판을 앞두고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접견을 오는 사람들을 통해 그룹 내 분위기를 전달받고 정보를 교환하는 한편 추후 대처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한다는 것. 특히 자신이 믿고 있던 사람들이 떠나고 그룹이 와해되고 있는 것에 주 회장이 상당히 안타까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성동구치소 관계자는 주 회장의 근황에 대해 “식사도 잘하고 있으며 건강도 양호하다. 별다른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때 주 회장이 ‘무조건 안 먹겠다’며 고집을 부리기도 했으나 항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현재는 식사를 잘하고 있다는 것.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항의성 절식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주 회장은 8월 초 “7월 26일부터 단식을 해왔다”며 “그동안은 검찰 수사에 방해가 될까봐 국물과 커피 정도는 마시면서 단식을 했는데 언론에서 ‘단식’이 아니고 ‘절식’이라고 비아냥거리니 13일째 되는 8월 7일부터는 물과 소금으로만 연명하면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할 것”이라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구치소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 사람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더 이상 자세한 언급은 곤란하다”며 말을 아꼈다.
이수향 기자 ls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