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이 1000만원 챙겼으면 말 다했지 뭐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오락실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는 지난해 4월 인터넷에 버젓이 공지사항으로서 “(상품권 폐지와 관련해)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을 수차례 방문하여 업계의 실태와 상품권 폐지시 발생하는 업계의 피해를 전달, 항의”했으며 “이것 외에도 많은 조치를 하고 있으나 공개된 게시판이기에 언급은 피하겠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공공연한 로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표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을 ‘바다이야기’ 업주라고 소개한 김 아무개 씨는 대검찰청 게시판에 “지금까지 우리 돈 뜯어간 공무원 10명씩 안고 자폭하자”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곳곳에서 돈 냄새와 악취가 진동하는 사행성 게임 산업의 로비 실태를 들여다본다.
먼저 주목받는 곳이 문화부다. 문화부는 게임산업 관련 기관인 영등위와 한국게임산업개발원 등의 주무부처이고 이들 기관의 관리, 감독을 담당하는 부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부가 오히려 외압과 로비, 청탁으로 얼룩져 성인오락실을 키워주는데 한몫해 왔다는 흔적이 사방에 널려있다.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은 “지난해 6월 문화부의 게임업무를 담당하던 K 국장과 K 과장이 ‘청와대와 여권 중진으로부터 상품권 업체 선정과 관련해 압력이 들어왔다’라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해당 K 국장과 K 과장은 해명자료를 통해 “정 의원을 만난 적이 없고 청탁이나 압력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 의원은 “당시 문화부 담당자들이 문광위 소속 의원실을 돌아다니며 그런 말을 하고 다녔고 ‘상품권과 관련해 외압과 청탁이 있었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문화부는 영등위에 대해 사행성 게임에 대한 규제완화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당초 문화부는 사행성 게임의 규제 강화를 주장했지만 실무 기관에서 이를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등위는 2004년 5월 문화부가 보낸 공문을 공개하면서 “문화부가 최고배당율 제한 등 6개항의 규제 삭제를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여권의 실세를 통해 문화부에 압력을 행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가맹점도 없는 ‘딱지 상품권’이 활개를 치자 이를 정리하기 위해 지난해 3월 문화부는 상품권 인증제를 도입해 22개 업체를 인증했다. 그러나 뒤늦게 인증업체가 허위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나 문화부는 발행업체 22곳 모두에 대해 인증을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3개월 뒤 문화부는 상품권 인증제에서 지정제로 전환해 19곳의 상품권 발행업체를 선정했다. 그러나 선정된 19곳 중 11개사는 인증제에서도 탈락했던 것으로 밝혀져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과정에 대한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다.
국회 문광위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상품권 발행업체 선정과 관련해 말이 많았다. 인증제를 도입할 때부터 업계에서는 10곳 정도가 인증될 것으로 예상됐는데 22곳이나 인증돼 업체들의 로비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인증제에서 탈락한 한 업체의 임원이 찾아와 부정심사의 증거라며 한 뭉치의 서류를 들고 왔다. 의심스러운 평가 점수표 등 상당히 구체적인 자료였다”고 전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당시 이 문제는 다른 현안들에 밀려 중요 현안으로 부각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영등위가 깨끗했다는 것은 아니다. 영등위는 게임기 제작사와 유통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기관이다. 영등위가 게임과 비디오물에 대한 사전심의제도와 등급분류 권한을 가지고 있어 영등위의 결정에 따라 게임관련 업체들이 ‘사느냐 죽느냐’가 달려있었다. 보통 게임 하나를 개발하는데 6개월이 걸리고 이를 심의하는데 두 달이 소요된다. 게임기 제작업체 측에서는 6개월만 지나면 ‘옛날 게임’으로 취급되는 게임업계에서 두 달이라는 심의기간은 너무 길다. 또한 게임을 제작하는데 수억 원이 들고 게임기 한 대 당 500만~800만 원에 달해 영등위에서 불가 판정을 내리면 게임업체로서는 개발비를 한푼도 회수하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할 형편이다. 그래서 심의기간을 단축하고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 이른바 ‘급행료’와 로비가 치열했다는 것이 게임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2004년 12월 영등위의 아케이드 소위원회 조 아무개 씨(53)가 게임업체 두 곳으로부터 모두 1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었다. 올 3월에는 영등위의 한 공익근무요원이 게임업체 관계자가 예심위원에게 전달하라고 건넨 1000여 만 원을 중간에서 가로챈 일까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등위의 공 아무개 위원은 성인오락실 업주 신 아무개 씨와 동업을 하기도 했고, 영등위 아케이드 소위의 주 아무개 씨는 위원으로 위촉되기 수개월 전까지 성인오락기 제조업체 이사로 일하고 있었다. 또한 정 아무개 예심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하고 ‘바다이야기’ 관련사에 취업하기도 해 아케이드 게임업체와 한 지붕 아래 한 식구였다. 온라인 게임업체 관계자들도 “영등위의 심의는 도저히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심의에 위원들의 주관과 재량이 개입될 소지가 많기 때문에 로비가 치열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상품권 지정 업무를 주관하는 한국게임산업개발원도 로비를 피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개발원장을 25일 전격 출국금지하고 소환 수순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상품권 발행업체를 지정하던 기간 60여 개 업체가 뛰어들어 치열한 로비전이 펼쳐졌고 국회의원들과 문화관광부에도 상품권 업체 지정을 원하는 청탁 전화가 쇄도했다는 증언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증제가 폐지되고 지정제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허위자료 제출 등으로 인증이 취소됐던 업체 11곳이 무더기로 다시 지정돼 이 기간에도 엄청난 로비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을 사고 있다.
게임업계는 문광위 소속 의원들도 놓치지 않았다. 상품권 발행업체들은 문광위 소속위원들에게 집중적으로 정치후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열린우리당의 이미경, 김재홍, 우상호, 김재윤, 김한길, 이석현 의원과 한나라당 최구식, 민노당 천영세 의원 등이 상품권 발행업체로부터 적게는 150만 원에서 많게는 500만 원에 이르는 정치후원금을 받았다. 그 시기도 경품용 상품권이 인증제에서 지정제로 바뀌고 상품권 발행업체를 선정한 지난해에 집중됐다.
성인오락실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한컴산)은 지난해 4월 14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소속 회원들에게 강 의원의 상품권 폐지 법안을 막기 위해 여야 의원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대응 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공지했다. 당시 한컴산은 ‘중앙회 활동상황 공지입니다’라는 글을 통해 “이번 상품권 폐지는 목숨이 달렸기에 그 어떤 조치를 취하는 한이 있더라도 온몸으로 막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번 발의안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국회의원을 수차례 방문하여 업계의 실태와 상품권 폐지 시 발생하는 업계의 피해를 전달했다”며 “법안 심사 국회의원들도 방문하여 강력한 항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문광위원들의 그동안 국회 발언도 의혹투성이다. 문화부가 지난해 3월 28일 22개 상품권 발행 인증 업체 선정 결과를 발표한 후인 4월 18일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은 “현 정부가 국가 균형발전을 말하면서 22개 업체를 선정했는데 지방이라고는 제주도 한 군데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9월 30일 문광위 국정감사에서 열린우리당 김재홍 의원은 “영등위의 게임물 심의 기간이 너무 길다. 게임물의 생명력은 6개월 정도인데 심의에만 3~4개월이 걸리면 되겠느냐”며 조속한 심의를 촉구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도 한 게임기 업체의 제보 내용을 인용하며 “6개월 넘게 게임을 개발한 업체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데 심의만 2~3개월이 걸리니 분통이 터진다”고 지적했다.
이런 때문인지 열린우리당 강혜숙 의원이 제출한 ‘상품권 폐지법안’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법안 자체가 폐기됐다. 당초 이 법안은 4월 임시국회를 거쳐 지난 7월부터 시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 문광위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안’으로 대체돼 자동폐기됐다.
강 의원의 전 보좌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쪽에서까지 전화가 오고 방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한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관은 “의원을 만나려는 업체가 너무 많아 특정 업체를 연결시키면 곧바로 의원과 해당업체의 연루설이 퍼질 정도였다”며 “그러나 의원의 지역구에 회사가 있는 업체에서 사람이 오면 잠시라도 면회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 상품권 업체 실무자는 “상품권 발행 업체마다 3~4명의 국회의원 보좌관이 붙어 있다고 보면 된다. 정치자금을 받고 뒤를 봐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지난 7월 말 당정회의에서 경품용 상품권을 폐지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뒤 전혀 알지 못하는 정치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품권 제도를 유지해 줄 테니 ‘후원하라’는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성인오락실을 감시하고 규제해야 할 모든 국회와 정부 기관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엄청난 돈놀이를 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