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회장 통하면 어떤 불법 게임도 심의 통과’
▲ 사행성 게임의 비리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여론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는 스크린 경마장은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단독으로 입수한 정보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크린 경마에서도 역시 비리 의혹이 일고 있고 곧 ‘게이트’로 비화할 것 | ||
이 보고서는 2년 전 작성된 것으로 현재 모 단체 K 회장이 스크린 경마 게임기 제조업체 F 사의 이사로 재직할 때 영등위 등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K 회장은 최근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열린우리당 김재홍,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이 지난해 미국 게임 전시회를 방문했을 때 관여했던 단체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인사라 더욱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는 “당시 K 회장만 통하면 어떤 불법 게임물이라도 심의에 통과된다는 설이 공공연히 유포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이 막강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K 회장이 정치권에도 광범위한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바다이야기’에 이은 스크린 경마 비리를 <일요신문>이 입수한 보고서를 토대로 짚어본다.
현재 의혹이 일고 있는 모 단체는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한컴산·회장 김민석)와 함께 성인오락실 업계의 대표적인 단체다. 이 단체는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전자 게임 업주들의 모임으로서 전국 회원업소수가 약 500개소에 이른다. 그리고 한컴산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바다이야기 등과 같은 일반 게임장 업소들의 모임으로서 회원업소만 1만 5000여 개에 이르는 거대 조직이다. 이 두 조직은 최근 “정부의 경품용 상품권 폐지와 사행성 게임물 기준 등 게임산업진흥법 하위법령에 대응하기 위해” 통합 결정을 내리기도 했을 만큼 서로 연관성이 깊은 단체다.
그런데 한컴산 김민석 회장은 최근 성인오락기 ‘황금성’ 제조사인 현대코리아 측으로부터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황금성’이 통과 되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고 황금성 오락기 200대를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 회장은 또 게임개발사 및 상품권 업체를 대상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 수시로 로비자금을 갹출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한편 검찰 주변의 한 관계자는 “한컴산 김 회장뿐만 아니라 이 단체 K 회장도 당시 스크린 경마 게임기 심의와 관련하여 각계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그 부분도 앞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요신문>이 입수한 정보기관의 한 보고서는 K 회장이 이미 2년 전 각종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K 회장은 2년 전 경마 게임기기 제조 판매회사인 F사에서 이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K 이사는 영등위 관계자를 매수하여 게임물 심의에까지 개입하고 있는데, 특히 지방의 폭력배 조직인 M 파내의 한 그룹인 L 계파와 연계, 영상물등급위원회 J 위원과 B 부장을 매수하여 게임물 심의에 개입함에 따라 게임업계에서는 K 이사만 통하면 어떤 불법 게임물이라도 심의에 통과된다는 설이 공공연히 유포되어 있다”고 돼 있다.
K 이사가 없으면 게임기 심의 통과가 불가능할 정도였다는 소문은 당시 그의 ‘로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보고서에 따르면 “K는 검찰 출신 변호사를 브로커로 고용하여 업소와 관련된 각종 사건 발생시, 선처 로비 등 수사과정에까지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고 기록돼 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영등위가 (스크린 경마 게임기) R을 심의할 당시 (게임기 제조 업체) F 사의 K 이사 주도로 3억~5억 원의 뇌물이 오가고 폭력조직이 개입하는 등 상당한 로비가 있었는데, 과다한 베팅 등으로 인해 애초부터 경품 배당 획득이 주목적이고 사행심 조장이 예상되었음에도 등급분류기준 상 ‘사행성 간주’ 규정을 무시해 가면서 허가를 내 주었다는 설이 관련 업계 등에 유포되고 있다”는 문제점까지 지적하고 있다.
K 회장은 또한 2년 전 영등위 심의위원이었던 조명현 씨와도 관련이 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조 씨는 최근 심의를 통과시켜주는 조건을 내세워 게임업체에서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조 씨는 99년부터 영등위 아케이드게임물 등급분류 소위원회 위원과 의장, 위원회 감사 등으로 일했는데 2003년 게임기업체인 (K 회장이 재직했던) F사 P 대표에게 ‘게임기 심의 관련 정보도 주고 소위원회 위원들에게 부탁해 심사도 통과시켜주겠다’며 300만 원씩 7차례에 걸쳐 2100만 원을 받아냈다”는 혐의로 유죄를 받았다.
그런데 <일요신문>이 입수한 보고서에는 “조명현 자신은 직접 나서지 않고 배후에서 자신이 심어 놓은 예심 위원과 소위원회 위원을 통해 심의를 좌지우지 하고 있으며, F사의 P 대표와 K 이사, T사의 C 대표, 또 다른 (게임물 관련 단체) K 회장 등과 유착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이미 2년 전 조명현 당시 심의위원과 F 사 P 대표, 그리고 K 이사 등이 유착되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2년 뒤인 지난 8월 말 문제의 F사로부터 로비를 받은 조 전 심의위원은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보고서 내용이 맞다면 조 씨와 유착 가능성이 있는 P 대표나 당시 그 업체에서 이사로 재직 중이던 K 회장 등도 로비와 관련된 의혹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 (왼쪽부터)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 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 | ||
먼저 박형준 김재홍 의원이 지난해 9월 미국 게임 전시회를 방문했을 때 이에 관여함으로써 논란이 일고 있는 곳이 바로 K 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바로 그 단체다. 열린우리당은 최근 김재홍 의원에 대한 자체조사를 벌여 그가 게임박람회를 방문한 배경과 현지 행적을 집중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의원은 국회 문광위 차원의 공식 출장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나라당도 박 의원의 미국 방문을 두고 강재섭 대표와 홍준표 의원간에 ‘자해 논란’이 벌어지는 등 이 문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K 회장에 대한 ‘행적’도 더욱 철저하게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두 의원의 미국행에 K 회장도 동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K 회장은 현재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 등이 회원으로 있는 한 단체의 이사도 맡고 있어 정치권에선 더욱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두 의원은 이에 대해 “전자게임사업자협회가 문광위로 공식 초청장을 보내옴에 따라 관심 있는 분야여서 다녀온 것”이라며 “박람회 참석과 게임산업개발원의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을 연관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해명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보고서에 언급된 여러 가지 사안과 관련해 K 회장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
한편 이들 미국 방문단 중에는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의 보좌관 오 아무개 씨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원래는 정 의원이 직접 가려고 했지만 비자가 나오지 않아 보좌관만 방문단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정청래 의원도 앞서 언급된 K 회장과 ‘교류’가 있었던 사실이 <일요신문> 확인 결과 드러났다. 문제의 K 회장이 단체장으로 있는 A 협의회는 지난 2005년 11월 15일 서울 서교호텔에서 정청래 의원을 초청해 ‘한국 게임산업의 새로운 모색을 위한 초청 간담회’를 개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자리에는 앞서의 F 사 P 대표, K 회장 등을 비롯한 스크린 경마 게임장 대표 20여 명이 참석했던 것으로 돼 있다. 이날 간담회는 게임 업계 현안문제에 대해 게임진흥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정 의원의 생각을 들어보는 자리였다고 한다.
정청래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정청래 의원이 게임산업진흥법을 대표 발의했기 때문에 A 협의회에서 간담회 참석 요청이 와서 갔던 자리였다. 게임업계 전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자세히 들었고 정 의원은 게임산업진흥법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K 회장은 그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개인적인 인연도 없다. 그 사람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의혹이 나오는지는 잘 모르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고서에는 스크린 경마 게임기 관련 비리 의혹을 몇 가지 더 적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영등위의 잘못된 등급분류에 의해 이용자의 중독. 사행성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나 적법한 게임물로 인정되고 있어 단속이나 제재도 곤란한 실정”이라고 밝혀 당시 스크린 경마의 사행성 문제가 심각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환전 목적 상품권 유통과정에서 부당이득 편취”라는 분석도 나와 있어 현재의 상품권 문제와 유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검찰 주변의 한 관계자는 “현재 검찰은 바다이야기 등 성인오락실 비리 문제와 상품권 지정제와 관련해 업계의 치열했던 로비의혹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스크린 경마 또한 바다이야기와 유사한 불법 요소가 많고 영등위 심의위원에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있는 등 바다이야기 비리와 ‘쌍둥이 게이트’일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검찰 수사가 스크린 경마로까지 옮겨갈지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