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변호사에게도 얕은꾀 ‘자기가 당했다’
“형사가 내 차 대시보드 색깔이 뭐냐고 물었어요. 몇 년간 차를 몰았으면서도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게 사람들 기억입니다. 증인으로 나온 그 놈이 형사하고 짜고 거짓말하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술 먹고 다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구두자국을 내고 증거를 남긴단 말입니까?”
일리 있는 말이었다. 위급상황에서 증거를 남기는 건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사람조차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가 계속했다.
“사실 ‘나라시 차’를 몰다보면 기사들 중에는 진짜 전과자가 많아요. 밤중에 술 취한 손님들이야 거의 무방비 상탭니다. 을지로 일대를 밤에 돌다보면 먼저 길거리에 앉아 있는 취객들은 소매치기들의 밥이죠. 대학생처럼 단정하게 차리고 옆에 접근해서 도와주는 척하고 지갑을 빼가요. 그걸 우리 자가용 기사들은 수시로 보기 때문에 손님이 지갑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죠. 그다음 취객들은 그들을 노리는 전과자 운전자들한테 당하는 거죠. 차로 으슥한 곳에 끌고 가서 반 죽여 놓고 지갑과 카드를 뺏어가요. 그래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잡힐 염려도 없어요. 난 그런 전과자 조직하고는 절대 어울리지 않았어요.”
섬뜩한 얘기였다.
“차를 사무실 옆 주차장에 세워놨습니다.”
며칠 후 황기만의 아들이 사무실에 찾아와서 말했다. 나는 황기만이 영업용으로 사용하던 옵티마 승용차를 가지고 와 보라고 했었다. 이유는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황기만의 아들과 운전석 아래의 프레임 부분을 세밀히 살펴보았다. 핸들대를 손으로 잡고 구둣발로 차 보았다. 구두가 닿은 부분에 희미하게 검은 자국이 남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세게 문질러 보았다. 그 자국은 지워지지 않고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이 자국 본 적 있어요?”
내가 황기만의 아들에게 물었다.
“저도 지금 처음 보는데요.”
굴곡 아랫부분이라 발견하기가 어려운 위치였다. 황기만은 그 자국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게 틀림없었다.
“증인이 말했던 부분인데 맞는 것 같네.”
내가 그의 아들에게 말했다.
“그럼 제가 없애버려야 하나요?”
황기만의 아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난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구치소에서 만난 그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면회 온 아들에게 무슨 소린가 들은 것 같았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강도상해죄라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만약 유죄로 저에게 형을 내리면 그 자리에서 목을 따 버릴 거예요.”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화가 났다. 흔히들 결백을 보여주려는 방편으로 자살을 하겠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법원의 높은 굴뚝에 올라가 투신하겠다고 떠들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쇼였다. 진짜 자살하는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
“뭘로 목을 딸 겁니까?”
내가 물었다. 오히려 짓궂은 감정이 들었다.
“칼로요. 이미 준비됐습니다.”
“무슨 칼이죠?”
“플라스틱 칼을 준비했어요. 그걸로 할 겁니다.”
“그런 결심을 하셨으면 그냥 행동에 옮기시면 되지 왜 굳이 변호사에게 말을 하십니까? 변호사가 말려달라고 하시는 겁니까? 강도를 안했다면 차에 난 구두자국은 뭡니까?”
내가 화를 내면서 따졌다.
“….”
그는 내 눈치를 힐끗 보면서 침묵했다. 머쓱한 표정이었다. 그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차라리 장기라도 기증하고 싶어요.”
“장기를 기증하겠다고요?”
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눈이 됐든 간이 됐든 다 헌납하려고 그래요. 제가 눈도 시력이 1.5고 간도 신장도 좋습니다. 집사람이 당뇨로 이삼일에 한 번씩 응급실로 실려가 투석을 해야 하는데 보험처리가 안 돼요. 그리고 집사람 똥오줌을 받아내는 내가 이렇게 감옥에 편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제가 장기를 기증하고 1급 생활보호 대상자가 되면 좋겠어요. 그러면 지원금도 받잖아요?”
그의 표정이 진지했다.
“정말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렇다마다요. 병원에도 알아봐 주시고 법정에서 재판장에게도 말해 주세요, 바로 수술할 준비를 해 주세요.”
다음날 나는 의대 학장을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어때?”
“지금 병원들에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엄청 많아. 병원 측으로는 감사한 일이지. 신장도 그렇고 간도 기술이 발전해서 일부 적출도 얼마든지 가능해. 그렇지만 눈의 경우는 살아 있는 사람의 경우 실명을 초래하니까 그건 금지돼 있어. 다만 죄수의 경우는 강제 적출에 대한 우려 때문에 윤리 규정의 문제가 있어.”
의대 학장은 그 절차를 담당하는 수간호사를 소개해 주었다. 장기기증을 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황기만의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장기를 기증하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에이, 우리 아버지 남한테 그럴 사람 아니에요.”
아들은 부인했다.
황기만의 말대로 증인들은 거의 기억이 불분명했다. 나도 한밤중에 택시를 타곤 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기사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범행을 증명할 사람들이 없었다.
철공소 직원이라는 김재호라는 남자가 증인으로 나왔다. 경찰의 조서는 그가 황기만에게 강도를 당했다고 명확히 기록되어 있었다. 얼굴도 분명히 기억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
“저 사람이 범인 맞습니까?”
검사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황기만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증인이 옆 눈으로 흘낏 보더니 대답했다.
“저 사람은 아닌데요.”
“그럼 왜 저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했죠?”
검사가 실망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신고할 당시 형사가 용의자 사진을 7장 보여줬어요. 그중에서 비슷한 사람을 찍었죠. 그런데 지금 실물을 보니까 저 분이 아닌데요.”
“다시 한번 정확히 보세요.”
검사가 증거물 속에서 피고인 황기만의 사진을 보였다. 용의자 일곱 명 중에 그의 사진이 중간쯤 들어 있었다.
“경찰에서 이 사람을 범인이라고 찍었습니까?”
“맞아요. 바로 이 사람이 범인이에요.”
그가 맞장구를 쳤다.
“이 사진 속의 용의자가 바로 저기 서 있는 피고인 아닙니까? 동일인입니다. 다시 잘 보시고 진술하세요.”
검사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그쳤다. 증인으로 나온 남자는 다시 황기만을 한참 쳐다보고는 말했다.
“에이, 아닌데요. 이 사진하고 저 사람하고 어떻게 같아요?”
증인의 황당한 대답이었다. 그때 재판장이 끼어들었다.
“증인, 피고인 본인의 인물사진을 보면서 그 사진과 여기 있는 실제 인물이 다르다고 하다뇨? 사진기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내 눈에는 분명히 이 사진하고 저분하고 다르게 보이는데 어쩌라는 말입니까?”
증인이 되물었다.
“허허 그거 참.”
재판장이 헛웃음을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잘 보세요. 지금 저 사람이 면도도 안 하고 그래서 그런 겁니다. 잘 관찰하고 정확히 말하세요, 겁먹지 마시고.”
증인이 다시 피고인 황기만을 세심하게 살폈다.
“그때는 훨씬 젊은 사람 같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증인이 지갑을 털릴 때 자가용 운전기사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얼마 달라던가 그런 말은 한마디라도 있었을 거 아닙니까?”
“아 참, 그러고 보니까 운전기사가 처음에 ‘2만 원’이라고 한마디 하고 저는 ‘OK’라고 대답한 적이 있어요.”
증인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재판장이 황기만을 보면서 이렇게 명령했다.
“이제부터 내가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하고 명령을 들으세요. 피고인 황기만이 증인을 보면서 ‘2만 원’이라고 평소 하던 대로 말해봐요.”
재판장은 다시 증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러면 증인은 ‘OK’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재판장이 황기만 쪽을 보면서 “시작” 하고 신호를 보냈다.
황기만이 얼떨떨해하는 표정으로 “이이 마안 워어어언”이라고 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어조였다.
“어, 피고인! 갑자기 목소리 깔고 사투리도 안 써? 다시 해.”
재판장이 소리쳤다.
“제가 목소리를 깐 게 아니고 평소에 이렇습니다.”
황기만이 넉살좋게 재판장에게 말했다.
“내가 여태까지 여러 번 들어왔는데 무슨 소립니까? 피고인과 증인 두 분이 법대 앞에 마주 서서 내가 시킨, 택시 타려는 연기 다시 두 번쯤 해보세요.”
그래도 증인은 확신이 없었다.
“증인, 이전에 피고인 가족과 만나 뭔가 짜고 하는 거죠?”
검사가 다그쳤다.
“아니 전혀 그런 일 없어요.”
결국 그 부분에 대해 검사가 공소를 취소했다. 이제 황기만은 곧 무죄가 되어 석방될 것 같았다.
최후의 증인으로 안재식이라는 회사원이 나왔다. 침착한 표정의 사십대 남자였다. 그 사람만 넘기면 성공이었다.
검사가 그가 경찰에서 말한 진술조서를 그의 앞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이거 검찰, 경찰에서 다 사실대로 진술하신 거죠?”
“제가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가 대답하면서 조서를 한 줄 한 줄 담담하게 확인해 갔다.
“예, 맞습니다.”
피고인석에서 황기만이 그의 눈치를 보면서 긴장해 있는 얼굴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말씀해 주시죠.”
검사가 물었다.
“차를 탄 지 얼마 후 더 못 가겠다고 하면서 기사가 조수석 문을 열고 저를 부축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하면서 차에서 내렸죠. 술 마셨지만 부축 받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차가 출발하기 직전 우연히 주머니에 손이 갔습니다. 지갑이 없어졌죠. 그래서 차량의 번호판을 봤습니다. 새로 글씨가 커진 번호판이었습니다. 숫자 두 개만 확실히 외웠습니다.”
“어떻게 해서 바로 지갑을 확인하게 됐죠?”
검사가 재차 물었다.
“제가 그 부근에서 얼마 전에 지갑을 쓰리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본능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저 사람이 범인 맞습니까?”
검사가 황기만을 가리키면서 증인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때 황기만이 나섰다.
“아저씨, 저는 오늘 처음 보는데 어떻게 절 안다고 하죠?”
“눈초리가 날카롭고 머리가 짧았던 걸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렇게 재판이 끝났다. 선고 하루 전에 그를 찾아갔다.
“그동안 드리지 못한 변호비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항소심에서도 저를 꼭 변호해 주세요.”
그는 착수금도 반밖에 주지 않았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그후 아무도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몇 달 후 친한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황기만이가 억울하다고 변호를 맡기러 왔던데 좀 냄새가 이상해. 기록을 봤더니 자네가 했더구만, 정보 좀 알려줘.”
결국 똑똑한 증인 한 사람에 의해 그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죄를 짓는 사람들의 특징이 하나 있다. 세상을 너무 잔머리와 얕은꾀로만 살아가려는 것이다.
<끝>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