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말에 분노한 장인 “웬 정신병자 흉내냐”
내가 변호를 맡은 정신분열증환자 황인욱은 망상과 환각에 지배되고 있었다. 의사는 그가 판단력에 손상을 입은 사람이라고 했다. 충격이 크면 자기 일도 기억을 전혀 못한다고 했다. 그에 대한 재판이 열렸고 나는 그가 중증의 정신분열증환자인 걸 알려야 했다.
“피고인 황인욱은 신경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었죠?”
내가 법정에서 제일 먼저 그걸 물었다.
“병원에 간 건 사실인데 의사는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애써 점잖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정신과 의사는 황인욱 씨가 망상 속에 있다고 하면서 입원과 투약을 권했는데 본인이나 부인 모두 거부했다면서요?”
내가 그에 대한 의사의 소견서를 보이며 말했다.
“환자가 아닌데 무슨 투약이나 입원이 필요합니까? 변호사님,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요. 그리고 집사람도 내가 아프지 않으니까 입원시키지 않은 거 아닙니까?”
그가 내게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되물었다. 아주 지능적으로 그는 정상인같이 연기하고 있었다.
“황인욱 씨는 변호사인 제가 구치소로 접견 갔을 때 옆방에 장인이 보낸 스파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했는데 기억하고 있나요?”
“아니, 변호사님 무슨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저는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없어요.”
그가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지금도 변호사인 저를 스파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의 얼굴은 여러 가지를 심각하게 계산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철저히 자신 속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찾아온 형사들을 범죄조직에서 위장해서 보낸 건달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형사들이 묻는 대로 대답해 줘서 그들을 만족시켰다고 했었다.
근대 중국의 작가 노신이 쓴 <광인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밀폐된 방에 갇힌 정신병자가 쓴 일기였다. 고장 난 마음 렌즈를 통해서 본 세상은 가족마저도 자기를 해치고 음모를 꾸미는 곳이었다. 병자는 벌어진 사실도 인정하지 않았다.
“황인욱 씨는 재판받는 지금은 아내 강경숙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까?”
내가 물었다. 시체의 존재, 진단서로 그건 기정사실이다.
“아마, 어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인 것처럼 연기하던 그가 걸려들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누군가에 대한 원망기가 가득했다. 장인이 딸을 빼돌렸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의 어깨 뒤로 방청석 중간에 앉은 그의 장인 강 감독이 보였다. 증오가 눈에 가득했다.
“황인욱 씨는 경찰에서 범죄를 자백했던데 맞나요?”
내가 수사과정을 물었다. 정신분열증환자인 그는 이미 앞뒤의 논리와 현실을 착각한 느낌이 들었다.
“진실이 아닙니다. 형사를 가장해서 온 그 사람들은 조직에서 보낸 사람들이었어요. 그렇지만 검찰에서는 사실대로 얘기했어요. 난 안 죽였다고요.”
“그 조직이라는 게 뭡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그의 망상을 표현하게 하고 싶었다.
“평소에 마약조직이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아니, 마약조직이 아니라 일본 야쿠자 조직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저를 지키기 위해 경찰이 쓰는 3단봉을 가지고 다니기도 했어요.”
그때 방청석 쪽이 술렁거렸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죽은 강경숙의 아버지 강 감독이 작고 날카로운 증오의 눈으로 변호사인 나를 쏘아보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쪽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가 변호사석에 서 있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당신이 저놈 변호사지? 그런 식으로 모략하면 안 돼. 멀쩡한 놈을 정신병자로 만들어서 석방시키려고 공작하는 거야? 내 눈 멀쩡히 뜨고 있는 한 그런 식으로는 안 돼.”
재판이 중단됐다. 변호사로서 종종 숙명적으로 겪는 고통이었다. 오해로 법정 밖에서 테러를 당하는 변호사도 있었다.
“누구시죠?”
법대 위의 재판장이 그를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죽은 강경숙의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판사님, 저 놈은 살인하기 바로 며칠 전에도 우리 집에 와서 멀쩡하게 저에게 사업 얘기를 하던 놈입니다. 그런 놈이 법정에서 갑자기 정신병자 흉내를 냅니다. 도대체 이 짓거리가 뭡니까?”
“잘 알겠습니다. 피해자의 유족으로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신지 재판부에서도 충분히 압니다. 잘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판사가 조용히 그를 달랬다. 그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법원은 피고 황인욱에 대해 정밀한 정신감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법원이 정신병원을 지정해서 완벽한 진단을 내릴 수 있도록 충분한 기간을 명령하겠습니다. 그 후에 심리를 속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차 공판이 끝났다. 법정 밖에서 강 감독과 주변의 남자 몇 명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내가 복도로 나서자 강 감독 옆에 있던 남자가 험악한 눈길로 내게 시비를 걸었다.
“당신, 변호사라는 자가 말이야 그렇게 멀쩡한 놈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빼내려고 하면 되겠어?”
이미 그들은 그렇게 단정하고 있었다.
내가 허리를 굽혀 정중히 사과했다.
“그래도 정신병자로 만드는 건 너무 하잖아?”
“그건 앞으로 판명이 될 겁니다.”
“요새 돈만 주면 의사새끼들 얼마든지 조작해 줄 텐데.”
그렇게 의심들을 했다.
“황인욱을 대신해서 사죄드립니다.”
나는 다시 한번 공손하고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변호사는 죄인을 대신해서 비는 사람이기도 했다.
“자기 직업상 그러는 거라니까 이해해 줘라.”
듣고 있던 강 감독이 조금 누그러진 얼굴로 변했다. 파도같이 매일 닥쳐오는 위기가 넘어갔다.
잠시 후 사무실로 돌아오니 생머리를 한 삼십대 초쯤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남자들은 황인욱의 친구라고 했다.
“저는 김지은이라고 해요. 황인욱 감독님하고 같은 팀으로 오랫동안 함께 일을 했어요. 황 감독이 너무 불쌍해서 말씀 좀 드리려고 왔어요.”
여직원이 차를 가져다 탁자 위에 놓았다. 그녀가 계속했다.
“저희 업계에서는 24시간 내내 같이 있고 쉴 때도 같이 쉬죠. 함께들 영화 보고 밥 먹고 여행하고 그렇게 지내요. 그러니까 서로간의 사생활이 없는 셈이죠. 황인욱 감독님은 우리 사이에서는 별명이 ‘큰언니’예요. 감독님인데도 먼저 스태프들을 찾아다니면서 상냥하게 인사하고 잘못해도 절대 잔소리를 하거나 욕하는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었어요. 먼저 모범을 보이는 타입이죠. 그런 반면에 일할 때는 아주 집요한 사람이었어요. 부인인 죽은 강경숙이 업계에서 커리어우먼으로 큰 이면에는 황 감독의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이었어요.”
“죽은 부인 강경숙 씨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내가 물었다.
“정말 야망이 큰 여자였어요. 남편 황인욱 감독을 거물로 만들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죠. 영화의 대작을 만들게 하기 위해 남편이 우리들을 멀리하게 했죠. 사실 황인욱 감독과 저희 팀들은 작은 영화라도 색깔 있는 것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죽은 부인 강경숙은 남편이 거물이 되어 유명해질 것만 요구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황 감독이 환상을 보고 정신병증세를 보이자 부인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걸 아주 경계했어요. 우리, 같이 일하던 스태프들이 그 집 근처에 가서 회식을 할 때 황 감독님에게 연락을 해도 부인 강경숙은 그런 걸 아주 싫어했어요.”
“황인욱과 강경숙 부부는 서로 어떤 환경에서 만났죠?”
내가 물었다. 황인욱 부부는 나이 차이도 많고 환경도 전혀 달랐다.
“황인욱은 돈도 없고 정신병에 등의 근육이 말라가는 아프고 불행한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사회 저명인사인 강 감독을 아버지로 가진 경숙이 언니를 이용하거나 처가 신세를 진 건 전혀 없어요. 경숙 언니와 결혼하기 전에 수십억을 가지고 덤벼드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황 감독님은 경숙 언니의 순정을 받아들인 거죠.”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백에서 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황인욱 씨의 어릴 적 성장환경은 어떻습니까?”
내가 그 옆에 있던 황인욱의 친구에게 물었다.
“인욱이는 의류사업을 하는 집 외아들이었죠. 중학교 시절부터 영화에 심취했어요. 이소룡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또 보고 모든 장면을 외울 정도였으니까요. 인욱이 어머니는 아들 친구까지 만들어 주려고 저를 불러서는 탕수육을 시켜 주시곤 했어요. 인욱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가 사준 영사기와 편집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어요. 대학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는데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콜라광고를 찍어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어요. 졸업 후에 영화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백색지대>라는 예술영화를 만들었죠. 그러다 아버지가 부도가 났어요. 결혼도 한 번 실패를 했고요. 방황하던 인욱이에게 다시 나타난 여자가 죽은 강경숙이었어요. 인욱이가 <백색지대>라는 영화를 만들 때 아르바이트로 스태프진에 참여했던 강경숙에게 인욱이는 신이었죠. 나이 차이가 많은데도 강경숙은 적극적으로 혼자 된 황인욱에게 달려들어 결혼했죠.”
“죽은 강경숙 씨는 사람이 어땠습니까?”
내가 물었다. 눈물을 그친 김지은이 이렇게 대답했다.
“친한 사람에게는 아주 잘해주고 다른 사람은 경계하는 타입이었어요. 별거 아닌 걸 가지고 벌컥 화를 내기도 하구요. 성격이 강한 편이라 남편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아요. 제가 옆에서 보니까 반복해서 한국 최고의 대박을 터뜨리는 영화를 만들라고 남편 황인욱 감독을 몰아쳤어요. 출세욕이 대단했죠.”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김지은에게 물었다.
“황인욱 감독에게서 문자가 왔었어요. ‘어느 날 내가 없어지면 다른 사람하고 일해라. 그리고 잘 살아라’라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황 감독이 자살하려는 걸로 알고 주위사람들에게 알렸어요. 빨리 입원시켜야 한다고요. 그런데 죽은 경숙 언니는 절대 안 된다고 막 화를 냈어요.”
결국 파국은 예고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