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이야마 대전
우리는 2012년 12월, 제17회 삼성화재배 우승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1년 9개월 동안 세계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했고, 특히 지난해에는 전부 중국에 빼앗겼는데, 이 9단이 비록 마이너기전으로나마 반격의 전환점을 마련해 준 셈이다. 제17회 삼성화재배 우승자도 이 9단이었고, 상대는 구리 9단이었다.
고노 린 9단은 우리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기사.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 ) 9단 문하생으로 열다섯 살 때 입단한 기재인데, 정상권에 안착하지는 못했지만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천원’을 3연패하는 등 꾸준히 성적은 내고 있으면서 올해 NHK배 준우승자로 이번 대회에 처음 참가했다.
TV아시아 바둑선수권전은 한국 KBS, 중국 CCTV, 일본 NHK 공동주최. 세 나라가 돌아가면서 개최한다. 내년에는 한국에서 열릴 예정. 세 TV는 각자 국내 속기전을 주최하며, 우승-준우승자가 ‘TV아시아’에 출전한다. 제한시간 없이 처음부터 30초 안에 두는 초속기. 도중에 1분을 10회 사용할 수 있다. 우승 상금은 250만 엔, 준우승은 50만 엔.
이번 이 9단의 우승가도에서는 결승전보다는, 일본의 6관왕 이야마 유타(井山裕太․25) 9단과 만난 준결승이 하이라이트였다. 잘 알려진 대로 이야마 9단은 현재 일본 바둑의 기둥이다. 2002년 13세 입단. 2009년 일본 명인전 사상 최연소(20세) 우승으로 ‘이야마 선풍’을 일으킨 인물이다. 이후 전광석화로 거침없이 타이틀을 접수해 현재 ‘기성’ ‘명인’ ‘본인방’의 빅3에서 ‘왕좌’ ‘천원’ ‘작은 기성’까지, 7대 타이틀 중 서열 7위 ‘십단’을 빼고 6개를 갖고 있다.
물론 십단전에서도 우승한 적이 있어 ‘불멸’이요 ‘전설’인 조치훈 9단(58)과, 대만 출신으로 한때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던 장쉬(張栩․34) 9단에 이어 일본 바둑사상 7대 타이틀 전부를 한 번 이상 차지한 세 번째 기사로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한․중 정상급에 비해 약간은 부족한 느낌이라는 것이 중론이고, 한․중의 정상급들이 이야마 9단을 크게 경계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그런 중에도 일본 팬들에게는 과연 이야마 9단이 언제쯤 한․중 양강 체제에 균열을 낼 것인지, 정말 낼 수 있을 것인지가 비상한 관심사로 남아 있다.
소개하는 바둑은 이야마 유타 9단과의 준결승. 이 9단이 흑이다. 중반의 어느 시점까지는 이야마 9단이 백을 들고 반면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집으로 앞서가고 있었다는 것이 검토실의 진단이었다. 그리고 중반 막바지, 바야흐로 이야마 9단이 판을 닦으려하는 장면이었는데, 그 순간 이 9단의 승부수가 작렬한다.
<1도> 우변을 보자. 흑1로 달려온다. 백 대마가 미생이라는 것. 잡으러가겠다는 것. 백2로 잇자 한 번 더 흑3, 칼끝이 보인다. 이세돌의 이런 칼끝은 무섭다. 백4로 막자 흑5, 센터링.
<2도> 이야마 9단은 백1로 일단 한 집을 내고, 이 9단은 흑2로 뒷문을 점검한다. 관중석에서는 “백 대마가 잡힌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이야마 9단이 타개의 솜씨를 발휘한다. 백3으로 저쪽을 하나 끊어 놓고 백5, 이쪽에서 이단젖힌 것이 연관된 맥. 흑6으로 수그리자 다시 7로 젖힌다. 백A가 선수인 걸 믿고 여기서 한 집을 내려한다.
<3도> 흑1로 끊을 때 백2로 같이 단수치는 것이 준비된 수. 흑3 따낼 때 백4가 선수여서 6으로 △자리에 되따낼 수 있으니 패. 흑7로 이어야 할 때 백도 8로 잇는다. 사정없이 읽어대는 30초 초읽기 속에서 이야마 9단이 용케 혈로를 찾아내고 있다.
<4도> 흑1로 따내자 우하귀 백2를 팻감으로 쓰고 4로 △자리에 되따낸다. 좌하귀 흑5는 실로 무시무시한 팻감이건만 백은 그걸 듣지 않고 6으로 흑1 자리에 이어 우선 대마를 살렸다. 그러자 흑7의 빵따냄이 순식간에 바둑판을 뒤엎고 만다. 백은 대마를 살렸지만, 판세는 역전이다. 바둑은 흑이 2집반을 이겼다.
졌으니 할 말은 없는 것이지만, 관중석에서는 잡힐 것 같았던 대마를 귀신같은 솜씨로 살려내고, 흑5, 7 같은 관통상의 엄청난 출혈에도 2집반까지 쫓아간 이야마 9단에게도 박수를 보내주었다. 누구나 말하는 것처럼 이야마 같은 사람이 조금 더 힘을 내야 한다. 이야마 같은 사람이 자꾸 더 나와야 한다. 그래야 세계 바둑계가 더 재미있어 지는 거니까.
그런데 <4도> 흑7로 여기를 빵따내기 전에….
<5도> 흑1의 팻감을 듣지 않고, 백2로 이은 장면에서 실전처럼 흑A로 빵때리지 않고, 중앙에서 흑3으로 이어 일단 계속 한번 잡으러 가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검토실은 노타임으로 그림을 그려주었다.
백4가 절대 선수. 흑5를 기다려 백6 쪽을 뚫는다. 흑7로 장문쳐 백 한 점을 잡아야 한다. 거기서 백은 다시 8로 끊는 것. 이걸로 흑이 파탄이라는 것.
계속해서 흑B로 잡으면 백C로 끊어 죈 후 백D로 나와 흑 석 점을 잡는다. 백8 때 흑C로 웅크리면 백E부터 단수, 단수로 치고 나온다.
또 하나, <1도> 흑2는 너무 조심한 수 아닌가? 거기는 한 집이 없는 자린데? 이걸로 <6도>처럼 흑1로 중앙 쪽을 보강했으면 어땠을까. 중앙에서 패가 안 나면 백 대마는 그냥 잡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사정이 있다.
백2와 흑3을 교환하고 백4-6으로 흑 두 점을 잡는다. 흑7로는 ▲자리에 먹여쳐야 한다. 그러면 백8에서 10. 다음 흑이 A에 이으면 백도 B에 이어 빅이 되는 것
마지막으로 <1도> 백4 때 흑5로 치중하지 않고, <7도>처럼 흑1로 단수치며 들어가는 것은? 이건 아마추어 중급 수준의 속수란다. 백2로 막는다. 흑3로 따내면 백4로 막는다. 흑5로 연결하면 백6, 8로 완생이다. 백8 다음 흑이 A의 곳을 찝으면 패는 패지만, 백은 자체 팻감이 부지기수이니 전혀 걱정할 게 없다.
<7도> 흑5로 <8도>처럼 흑1로 아예 여기를 이어버려 실전과 같은 뒷맛을 없애는 것은? 백2로 건너붙여 4, 6으로 죈 후 8로 끊는 것으로 끝~! 이건 맛이 너무 나빠 흑이 견딜 수 없다고 한다. 실전처럼 흑A로 몰지도 못한다. 백B로 나가는 순간 C와 D가 맞보기가 되니까.
그나저나 이 9단은 요즘 바둑리그 ‘신안 팀’ 주장으로 뛰랴, 다른 기전 출전하랴, 틈틈이 중국에 건너가 갑조 리그 소화하랴 바쁘다. 다음 주에는 또 중국에 건너가 삼성화재배 32강전을 두고, 일요일에는 구리 9단과 10번기 제7국에서 대결한다. 7국을 이기면 최소한 5 대 5 확보, 거기서 한 판 더 이기면 8억 4000만 원이다. 이 9단의 팬들은 이번 TV아시아 우승이 10번기 7국의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면서 즐거워들 하고 있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