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비 받고 황천길 인도 ‘자살도우미’ 기막혀
사실 자살사이트 문제의 심각성이 거론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 ‘자살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자살사이트를 통한 동반자살 사건이 수시로 발생해 일찌감치 사회문제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점은 최근 들어 자살사이트를 드나들며 자살을 꿈꾸는 이들의 연령층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상당수 자살사이트에서는 10대 중고등학생들은 물론 초등학생들까지 드나들며 ‘자살 수업’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10대들의 자살’, 그 기막힌 현실이 얼마나 위험한 수위에 이르렀는지 실태를 추적해봤다.
한국자살예방협회(www. suicideprevention.or.kr)가 공개한 지난 2004년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국내 자살자들의 연령별 비율은 20~30대가 가장 높았고 10대가 2위, 40대는 그 다음 순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10대들의 자살률은 날이 갈수록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같은 해 10대 청소년의 자살 사망자 수는 246명이었고 자살 시도자 수는 6000명에서 1만 명 선인 것으로 추정됐다. 하루에 20명 안팎의 꽃다운 10대들이 자살을 시도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난 2006년 현재는 어떨까. 자살 방지와 관련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봉사자들은 갈수록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추세를 확인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자살’ 또는 ‘자살사이트’라고 써 넣고 검색해 보니 ‘자살사이트를 은밀히 알려달라’는 이들부터 ‘같이 자살할 사람을 구한다’는 이들까지 수많은 자살 희망자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10대라고 밝혔는데 이들이 자살하려는 이유는 주로 학업성적, 학교생활, 가정사 때문이었다. 특히 가정사와 학교생활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자살을 결심하는 청소년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누군가 ‘자살하고 싶다’는 글을 남기면 그 밑으로 ‘나도 죽고 싶으니 같이 죽자’는 식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글들이 너무도 많아 이 같은 내용이 과연 ‘진심’일까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지난 14~15일 양일간 기자가 직접 자살 희망자로 가장,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는 자살사이트를 찾아내 회원들과 온라인상에서 대화를 나눠보았다.
이 자살사이트는 지난 10월 중순경에 만들어진 신생 사이트였지만 이미 많은 회원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원들에 따르면 경찰이나 자살방지협회의 단속이나 감시 때문에 곧 사이트를 폐쇄할 예정이라고 한다. ‘간섭’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자살사이트들은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차 갈아타기’를 한다는 게 회원들의 설명이었다.
기자는 먼저 자살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아이디 kb16’과 접촉할 수 있었다. 이 아이디의 주인은 아이디 숫자에서 알 수 있듯 16세였다. ‘서울에 거주하는 남학생’이라고 자신을 밝힌 그가 자살을 결심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라는 존재를 몹시 못마땅해 하신다”며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너 때문에 내가 편히 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친구들도 내가 집이 가난하고 공부도 못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도 없다”고 말했다.
그가 자살할 결심을 밝히자 그의 글 밑으로 댓글을 달아 놓은 이들이 무려 13명에 이르렀다. 하나같이 ‘함께 죽자’며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밝히고 있었다. 이 가운데엔 “나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10대”라고 밝힌 회원도 4명이나 됐다.
흔히 기성세대가 자살을 만류하며 쓰는 글귀가 바로 “자살은 가장 큰 불효”라는 것.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다지 ‘글발’이 있는 얘기는 아니었다. ‘자살하자’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회원은 “부모님은 일찌감치 돌아가셨으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자살을 준비하고 있으니 동참하실 분들은 연락 달라”면서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남겨 놓았다. 그의 짤막한 글에 같이 죽자고 나선 이들은 무려 21명이나 됐다. 그중에는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적으로 남겨놓은 회원도 있었다.
이번에는 아이디가 ‘우울한 하늘’인 회원과 대화해 보았다. 그는 10대 중반의 여고생이었다.
‘우울한 하늘’은 “죽으려고 손목을 두 번이나 그었는데 죽지 못했다”며 “자살을 결심한 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빠르고 확실하게 죽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자살을 시도하지만 두려움이나 고통을 참지 못해 번번이 실패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살하려는 이들은 강력한 독극물인 청산염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의 말은 사이트 게시판 곳곳에서도 확인됐다. ‘청산염을 구한다’는 글과 함께 많은 이들이 ‘구하면 나에게 연락을 달라’고 댓글을 달아 놓고 있었다.
게시판의 내용 가운데 또 하나 눈에 띄는 사연이 있었는데 바로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자신을 밝힌 한 여학생(13)이 남긴 글이었다.
이 여학생은 3년 전부터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왔는데 나이가 들수록 수치심 때문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고 게시판에 털어놓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얼마 전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오히려 자신을 심하게 때리고 질투심에 눈이 멀어 자신을 학대하고 있다고 폭로한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살사이트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런 심각한 고민을 올려도 해결방안을 제시해주거나 충고 한마디 해주는 이가 전무했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그런 일을 겪었으니 살아서 뭣 하겠나. 어머니도 네 편이 아니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식의 글만이 난무할 뿐이었다. ‘동반자살하자’는 댓글도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몇몇 자살사이트를 둘러본 결과 이처럼 중고등학생들은 물론 초등생까지 ‘자살 학습’에 가세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자살 연령의 하향화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지만 관련 법상 이 같은 자살사이트나 회원들을 단속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회원들이 한 사이트에서 자살에 대해 커뮤니티를 형성했다고 해도 그것이 딱히 자살방조 등 불법행위로 발전했다는 확정적인 증거를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이 관계자는 “자살사이트에서는 회원들이 간단히 서로의 의사만 확인한 뒤 이메일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한다”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자살을 모의할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 자살사이트에는 남의 죽음을 부추기며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돈까지 버는 이른바 ‘자살 도우미’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은밀히 활동하는 자살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자살 희망자들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한때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사람들로 자살사이트를 찾아내 자살 희망자들에게 자살이란 것이 얼마나 나약하고 어리석은 선택인가를 역설하고 있다.
한때 절망의 나락에 빠져 자살을 네 차례나 시도했다는 최 아무개 씨(여·28)는 “불우 이웃에게 그러하듯 자살하려는 이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도움을 주어야 한다. 특히 나이가 어린 10대 청소년들의 자살만큼은 우리 사회가 발 벗고 나서서 막아야 한다”며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 힘을 모아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최 씨 등에 따르면 자살의 유혹에 빠진 10대들이 쉽게 다가가서 고민을 털어놓고 상처 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치유 프로그램’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고 한다.
스스로 생명을 거두려는 청소년들이 해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간 뒷짐만 지고 있던 정부, 아니 우리가 이젠 짐을 함께 짊어져야 할 때가 아닐까.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