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흥행사에 길이 기록된 전설이 된 <명량>은 사실 상당히 흥행이 어려운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영화다. 자! 이순신 장군이 위대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라는 부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게다가 일본 등 해외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위인이다. 또한 최민식이 엄청난 내공을 갖춘 연기파 배우라는 점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영화 <올드보이>에 최근작 <루시> 등을 통해 최민식의 연기력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검증된 상황이다. 따라서 이순신이 정말 위대한 위인인지, 최민식이 정말 연기를 잘 하는 지 극장을 찾을 관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영화가 흥행하려면, 아니 관객이 극장을 찾으려면 홍보가 중요하다. 홍보라는 것의 핵심은 최대한 영화를 널리 알리되 너무 많이 알리면 안 된다. 영화 <식스센스>를 홍보하겠다며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라는 사실까지 홍보하면 아무도 극장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명량>은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전국민이 내용을 다 안다.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당시 12척의 조선 수군으로 무려 330여척의 왜군을 물리쳤다는 사실은 초등학생 정도도 아 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했다가 조선 수군이 사실상 점멸된 상황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돌아왔다는 부분 역시 전국민이 다 아는 내용이다. 간혹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있다. 정유재란 당시의 대첩이라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과 혼동한 이들인데, 사실 예상보다 이렇게 혼동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영화 결말 부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할 것이라 예상한 이들에겐 분명 결말이 반전이다. 조선 수군은 대승을 거두고 이순신 장군 역시 건재하니까.
이처럼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을 혼동한 이들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을 굳이 극장에 가서 1만 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하고 봤다. 게다가 <명량>의 투자 배급을 맡은 CJE&M(CJ)은 유명 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 강사 설민석 씨를 동원해 명량해전 관련 인터넷 강의까지 마련해 온라인에 공개했다. 투자배급사가 나서 스포일러를 뿌려 댄 셈이다.
게다가 영화는 너무 전투 중심이다. 영화는 초반부 1시간가량은 명량해전을 앞둔 조선 수준의 좌절한 모습과 기세등등한 왜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뭔가 다양한 캐릭터의 사연들이 녹아들어 스토리에 탄력을 붙일 수도 있었지만 김한민 감독은 이 부분 역시 이순신 장군에게 집중한다. 몇몇 그를 돕는 이들이 등장하지만 존재감이나 출연 분량은 많지 않다. 심지어 엔딩크레딧에 최민식 다음으로 이름을 올린 류승룡의 존재감도 그리 크지 않다.
이후 1시간가량은 해전 전투 장면이다. 이런 방식의 편집은 여성 관객들에게 환영받기 매우 힘들다. 전통적으로 전쟁 장면은 남성 관객들이 좋아 한다. 그런 터라 전쟁 영화들은 여성 관객을 겨냥한 소소한 스토리, 예를 들어 주인공의 사랑 얘기 등을 그려 놓고 남성 관객이 좋아할 만한 전투 장면을 배치한다. 영화 <마이웨이>의 경우처럼 최소한 남자 주인공들의 뜨거운 우정이라도 그린다. 그렇지만 <명량>은 오로지 명량해전과 이순신 장군이라는 두 포인트에 집중한다. 그렇다고 1600만 명이 넘는 <명량>의 관객 대부분이 남성일까? 분명 그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흥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설민석 강사의 인강을 들어 보면 그 역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역사적인 자료들을 바탕으로 어떻게 12척의 조선 수군이 330여척의 왜군에게 이겼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 판옥선의 우수함, 명량 울둘목의 거센 물살 등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설민석 강사 역시 미스터리라고 밝힌 부분이 있다. 이는 바로 명량해전 초기 상황이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앞바다에 나서지만 대장선을 제외한 11척의 배는 겁을 먹고 진격하지 못한 채 뒤쳐져 있다. 그렇게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이 홀로 100여척의 왜군과 격돌하게 된다. 설민석 강사는 이렇게 얘기한다. “홀로 100여척의 왜군에게 포위돼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싸워서 이겼는지는 밝혀낸 사람이 없다. 이건 미스터리이고 기적이다.”
그리고 바로 영화 <명량>은 바로 이 부분을 스크린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 330여척의 왜군을 상대해 승리했다는 부분은 전국민이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당시 전투 상황을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역사적은 자료도 이를 충분하게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김한민 감독은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명량해전을 완성한 것이다. 따라서 스토리와 결말을 전국민이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설민석 강사의 인강까지 동원한 CJ의 홍보는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미스터리이고 기적인 전투 상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스크린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영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다양한 내용이 등장할 수 있다. 12대 330도 아닌 초반 전투는 1대 100이다. 도저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전투 상황이다. 영화 <천군>처럼 아예 미래에서 온 정예군이 각종 현대무기를 동원해 승리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미래에서 온 군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잠수함으로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을 도왔다면 충분히 가능한 승리다. 이런 게 가능한 게 바로 영화이며, 영화적 상상력이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은 이미 철없는 젊은 시절 이미 한 번 미래에서 온 후예인 천군들을 만난 경험이 있지 않는가.(영화 <천군>의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만든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과 매우 유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순신 장군은 현실에서 해낸 1척의 대장선이 100척의 왜군을 막아내고 결국 12척의 배로 330척을 이기는 불가능한 전투를 김한민 감독은 영화에서 그려내야 했다. 사료가 완전치 않은 만큼 김한민 감독은 스스로 이순신 장군이 돼 명량 앞바다에서의 전투를 직접 완성해야만 했다.
만약 이 부분이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면 과연 1600만 관객이 극장을 찾았을까. 결국 이 영화의 승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대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스크린에 그려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이를 명확하게 설명해줄 사료도 없는 상황에서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이 돼 당시의 전력과 전술을 재현해내야만 했다. 어쩌나 미래에서 당시로 온 핵잠수함이 도왔다는 설정이라면 과연 1600만 관객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반면 관객들이 ‘아! 이순신 장군이 위기의 상황에서 저런 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었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면 성공한 영화가 될 것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분명 미스터리인 부분이 남아 있으며 그 부분은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미리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는 것이다.
김한민 감독은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을 이순신 장군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었다고 설명한다.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이 아들 회에게 말한 명량해전의 가장 중요한 전략은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용기로 바뀔 수만 있다면 백배 천배 용기가 배가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1대 100으로 싸우는 명량해전 초중반에 모험수를 던진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작전이다. 대장선이 침몰했을 거라 예상되는 장면이었지만 포화 속에서 대장선은 건재함을 드러낸다.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대장선의 위용에 백성들은 환호하고 뒤에서 겁먹고 있던 11척 배의 조선 수군도 비로소 용기를 되찾는다. 그리고 왜군은 공포에 휩싸인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비장의 전략이 제대로 먹히는 순간이다.
그리고 지루할 수 있는 1시간여의 명량해전 직전 상황들을 참아내고 비로소 명량해전 전투 신을 보고 있던 관객들도 그 장면에서 강렬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이 장면에서의 쾌감을 위해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 전반부를 다소 지루하게 끌고 간 것인지도 모른다.
이순신 장군이 조선 수군과 백성들에겐 환호성을, 왜군에겐 공포심을, 그리고 관객들에겐 쾌감을 안긴 바로 그 장면은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기자의 부족한 영화적인 소견으로는 바로 이 장면의 힘이 지나치게 길게 느껴질 수 있는 한 시간 여의 전투 장면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으며 이로 인해 엄청난 흥행 대박이 가능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승리가 확정된 뒤 배 안의 수군들은 승전의 기쁨을 나눈다. 한 수군이 묻는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걸 후손들이 알아줄까?” 다른 수군이 답한다. “몰라주면 호로새끼(호래자식)들이지.”
영화는 분명 이순신 장군이 중심이지만 함께 싸운 조선 수군의 헌신과 노력, 그 수고스러움도 스크린에 잘 담겨 있다. 그냥 역사책을 통해 누구나 이순신 장군은 대단한 위인이고 명량해전은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라고 알고 있다. 아니 그렇게 외웠다. 그렇지만 영화 <명량>의 진정한 힘은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이 얼마나 힘겹게 피 흘리며 싸웠는지, 그 수고스러움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우리는 호래자식이 될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모면했다. 적어도 1600만여 명의 <명량> 관객은 그렇게 호래자식이 될 위기를 넘겼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