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좀 그를 내버려두시오” 부글부글
▲ 지난 21일 불구속입건 되기 전 연구실에서 만난 마광수 교수.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수 개월 만에 다시 만난 마광수 교수는 여전했다. 복직한 지 여러 해가 지났고 모든 상황들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듯했지만 마 교수는 아직도 ‘그때’의 충격에서 자유롭지 못한 표정이었다. 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야한 것은 무조건 천박한 것으로 여기며 윤리적·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풍토가 여전히 만연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요즘도 당뇨병과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특히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14년 전 필화사건으로 인한 상처가 아직도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마 교수는 이제 자기 자리로 돌아온 게 분명해 보였다. 꺾어질 듯 깡마른 몸은 그대로였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눈빛에서는 생기가 넘쳐 흘렀다. 이 날도 막 강의를 마치고 들어왔다는 그는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만나고 여러 가지 담론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내 삶의 가장 큰 활력소”라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 교수의 건재는 무엇보다 활발한 집필 및 작품 활동에서 확인된다. 작품을 낼 때마다 ‘무섭다’ ‘걱정된다’고 말하면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이러한 마 교수를 두고 일각에서는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어쩔 수 없는 변태’라는 비난을 퍼붓기도 하지만 마 교수는 여전히 ‘광마’다운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줄곧 ‘장미’담배를 피우면서 내뱉곤 하는 어리광 섞인 투정도 여전했다. 보기 좋게 잘빠진 콧날과 긴 손가락을 자신의 최대 매력으로 꼽으면서도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머리숱을 탓하며 심통을 부리는 남자. 항상 그래왔듯 마 교수에게서는 일선 교수들의 권위나 위선을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리가 다 빠져서 아주 스트레스예요. 머리숱만 많으면 다시 연애할 자신감도 생길 것 같은데. 내가 피부 하나는 아주 팽팽하거든요.”
요즘 누구랑 연애하냐고 농담 삼아 던진 질문에 마 교수가 “얼마 전 젊은 애인에게 차였다. 속상해 죽겠다”며 되받아치면서 하는 얘기였다.
현실에서 연애는 못하고 있는 대신 마 교수의 영원한 애인 ‘사라’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더 깊어져 있는 듯 보였다. 이를 반영하듯 마 교수는 지난 10월 산문집 <마광쉬즘>을 출간한 데 이어 12월에는 소설 <유혹>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마광쉬즘은 ‘질서보다는 자유를, 전체보다는 개인을, 도덕보다는 본능을 중시하는 정신세계’를 일컫는다. 정직하고 솔직한 성과 본능에 대한 담론,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성에 대한 감탄과 찬미, 동물적이고 원시적인 욕망에 대한 거침없는 배설은 마 교수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곧 출간될 <유혹>은 섹스클리닉을 운영하는 인텔리 의사와 간호사의 연애를 주 내용으로 한다. 역시 주제는 본능에 정직하자는 것으로, 관능적이고 지독한 성애에 대한 열정과 갈망을 담아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성에 대한 제도적 잣대와 위선을 꼬집는다.
집필 외에도 마 교수는 내년 1월 24일부터 2주 동안 인사동 북갤러리에서 열 ‘칼라’(色)를 모토로 한 2인전을 틈틈이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이미 판화가 이목일 씨와 2인전을 치른 바 있는 마 교수가 이번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여류작가 천에스더 씨와 호흡을 맞추기로 했다.
마 교수가 내년에 추진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작업은 바로 영화다. 내년 연말 개봉 예정으로 준비 중인 영화는 <즐거운 사라>. 지난 92년 외설시비에 휘말려 판매금지되는 동시에 마 교수를 구속시키기까지 했던 ‘문제작’이다. “‘사라’ 때문에 찬란했던 젊은 날을 모조리 날려버렸다”던 마 교수가 <즐거운 사라>의 영화화를 허락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마 교수의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시도다. 마 교수는 지난 1990년 자신의 작품인 <가자, 장미여관으로>의 각본을 쓰는 동시에 직접 감독까지 맡은 바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마 교수가 직접 여배우까지 캐스팅해 촬영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외설시비 끝에 촬영이 중간에 중단된 바 있다.
또 무시무시한 검열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용기를 냈다. 학교 후배가 운영하는 영화사에서 제작을 맡았으며 모 여류작가가 시나리오를 쓰는 중인데 마 교수는 작품 기획과 구성, 시나리오는 물론 여배우 섭외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마 교수는 “내 작품이 3류 에로 영화로 전락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젊은 감각을 살려 감독이 예술적으로 사라를 부활시켜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럴 경우에만 14년 전 필화사건으로 받은 자신의 응어리진 상처가 풀어지는 동시에 ‘사라’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마 교수의 말이었다.
몇 해 전만 해도 병색 짙은 안색과 풀죽은 목소리로 “모든 것이 끝났다”며 허탈해하던 그였다. 도저히 재기가 불가능할 것 같았던 마 교수를 지탱하는 강력한 힘의 원천은 두터운 마니아층에서 나온다. ‘마광쉬즘’을 이해하고 열광하는 이들은 마 교수의 홈페이지인 ‘광마클럽’에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뤄 활동하고 있다.
광마클럽은 시, 수필, 소설 등의 작품방과 각종 그림 및 사진을 전시해놓은 갤러리, 갖가지 다양한 정보와 의견들을 공유하고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자유게시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 교수 역시 바쁜 와중에도 수시로 이 곳에 들러 정성 어린 댓글을 달아주며 회원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마 교수의 든든한 지원군들의 모임인 ‘광마클럽’으로 인해 마 교수가 또 한 번 곤욕을 치를 위기에 처했다. 인터뷰 하루 전날 기자는 우연히 마 교수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될 것 같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이유는 홈페이지 게시물의 음란성 때문으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부터 고발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마 교수는 홈페이지에 ‘성기가 노출되는 사진을 자제해달라’는 당부 글을 달아놓았지만 일부 회원이 수위를 벗어난 게시물을 올린 모양이었다.
외설시비로 엄청난 곤욕을 치른 바 있는 마 교수는 또다시 세간의 도마에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스러운 듯 ‘기사화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문제가 될 성싶은 게시물들은 즉각 삭제하곤 했는데…”라는 말만 반복했다.
마 교수에 대한 평가는 외설과 예술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두 갈래로 극명하게 나눠져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만은 ‘제발 마광수 좀 내버려두라’는 목소리도 거센 듯하다. 우리 사회가 ‘광마클럽’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