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도 끝나고… 타깃은 ‘카지노’
사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업장과 관련된 여러 의혹은 지난 DJ 정권 시절 사업이 처음 계획될 당시부터 참여정부 들어 이를 시행하게 된 최근까지 잠시도 그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올 봄부터 진행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업장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의 내사는 중도에 보류됐고 카지노 사업장을 둘러싼 의혹 또한 그냥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검찰이 다시 수사에 나서면서 과연 그 칼끝이 어디까지 파고들지 카지노 업계는 물론 정·관계가 긴장하고 있다.
당초 카지노 관련 의혹에 대해 검찰이 처음 칼을 빼든 것은 지난 3월의 일이었다. 당시 검찰이 은밀한 내사에 들어가면서 GKL의 전·현직 관계자 및 업계 관계자들을 대거 소환해 두 달여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GKL은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로 국정원 2차장 출신인 박정삼 씨가 현재 사장으로 있다.
하지만 당시 수사는 이후 별다른 진척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아 사실상 무혐의로 종결된 것처럼 보였다. 거기다가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박민식 검사(현 변호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지난 9월 초 전격적으로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나면서 선장까지 잃은 셈이 된 것.
박 전 검사는 14일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카지노 수사는 절대 종결된 것은 아니며 보류됐다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수사가 보류된 배경에 대해 “검찰 수사, 특히 특수부 수사라는 게 우선 순위가 있게 마련이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 여론의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던 ‘법조 브로커 김흥수 로비 의혹’ 사건이나 ‘바다이야기 파문’ 등에 의해 카지노 수사가 후순위로 밀렸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그는 “카지노 비리 의혹은 특수부 검사라면 한번쯤 의욕을 갖고 덤벼볼 만한 사건임에는 분명하다”는 말로 자신이 사건을 종결짓지 못한 데 대한 일말의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박 전 검사의 말처럼 이 사건은 그의 사퇴 이후 후임자에게 넘어가면서 오히려 수사에 탄력을 더하는 듯한 모습이다. 검찰에서는 카지노 비리와 관련해서 제기된 여러 의혹 중에 우선 납품업체 선정 비리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GKL의 전 이사였던 차민수 씨의 검찰 증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차 씨는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으로 세계적인 카지노 전문가로 유명하다.
이번에 검찰에서 주목하고 있는 GKL의 내부 비리 혐의는 카지노 사업장 설치 과정에서 들여오는 각종 핵심 설비 및 기기 장치의 납품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의 금품 로비 수수 혐의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D 사는 GKL의 시스템 입찰에 참가해서 238억 원을 써 냈으나 오히려 그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했던 경쟁사를 제치고 입찰에 성공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는데 이번 수사에서 구체적인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D 사의 로비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차 씨 등 GKL을 퇴사한 관계자들이 그간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고 검찰도 수사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정황을 확보했다는 것. 실제 차 씨는 올해 2월 회사를 그만둔 이후 기자와 몇 차례 만난 자리에서 GKL의 내부 비리에 대해 여러 차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전격적으로 GKL의 이사직을 맡았다가 6개월 만에 도중하차해 그 배경을 놓고 숱한 의문이 인 바 있다.
▲ 차민수 씨 | ||
그는 지난 9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퇴 이유에 대해 “내가 아직 국내 실정을 잘 몰랐던 거다. 카지노 산업은 정말 투명하게 해야 한다. 특히 관이 주도하는 것은 더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온갖 비리와 부정이 저질러질 수 있는 것이 이 산업”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각에서 내가 그만두고 나온 이유를 궁금해 하자 ‘차 이사가 업체에 돈을 요구했다더라’라는 악성 루머까지 흘린 것으로 알고 있다. 정말 한심하고 기본적인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당시 보도에는 차 씨의 당부로 일부 민감한 내용이 빠지기도 했으나 D 사 등 업계의 뇌물 공세는 이사였던 차 씨에게도 집중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받았던 수표를 되돌려주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이 회사 내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절반도 안 되는 예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업을 두 배 가까이 부풀리며 업계와 회사가 유착되는 듯한 모습을 보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스스로 사퇴한 배경을 털어놓았다.
검찰 주변에선 차 씨가 이번 검찰 조사에서 수표 복사본 등 관련 증거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GKL 측은 “공정한 납품 경쟁을 위해 외부의 학계 인사들로 심사위원단을 구성, 이들을 통해 엄격한 심사로 납품 선정업체를 정하는 등 일체의 특혜 시비를 없앴다”고 기자에게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익명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GKL이 확보한 상당수의 심사위원단 후보들 가운데 특정 기업에 유리한 인사들로 심사위원을 구성함으로써 특정 기업과 납품 계약을 하고 그 과정에서 부적절한 로비와 금품 수수가 발생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추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초 검찰에서 카지노 의혹 수사를 한 것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지노장 설비 기기 납품 업체 선정 로비 의혹과 함께 카지노 사업장 선정 심사 과정에 대한 의혹도 있었다.
지난 DJ 정권 때부터 시작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업 계획은 숱한 의혹과 논란 끝에 중도하차했다가 참여정부 들어 빛을 봤다. 이 과정에서 문화관광부와 국회 문광위 등 정치권 실세의 역할이 있었다는 의혹 또한 무성했다. 2004년 11월 서울 강남과 강북, 그리고 부산 등 세 곳에 각각 한무컨벤션의 오크우드호텔과 힐튼호텔, 롯데호텔을 카지노 사업장으로 선정하면서 이 사업은 본격화됐다. 하지만 카지노 사업은 선정 과정서부터 각종 의혹이 불거지는 등 진통이 계속돼 왔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관광공사가 갑자기 한무컨벤션의 선정을 취소했다가 다시 번복하는 해프닝을 연출했고 올해 1월에는 한무컨벤션이 영업장으로 내놓은 컨벤션센터의 3층이 위락시설 용도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새로운 의혹이 터지기도 했다.
선정 심사 경쟁에서 탈락한 일부 호텔 관계자들 역시 검찰 조사를 통해 “특정 호텔 업체를 봐주기 위해 이미 사전에 선정 밑그림이 그려졌고, 사실상 심사 과정은 형식에 불과했다는 의혹이 많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