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들’ 모집하는 신종 학원 등장
재판 과정에서 전해진 K 씨의 병역 회피 전력은 화려했다. 19세 때 현역병 입영 판정을 받았던 그는 이후 신체검사를 열두 번이나 더 받았고 현역병으로 한 번, 공익근무요원으로 두 번 등 총 세 차례 입대했지만 그 때마다 질병을 이유로 곧장 귀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질병과 유학 준비 등을 이유로 군 복무를 연기하거나 회피한 기간은 무려 17년이었다.
K 씨 사건은 우리나라의 징병제에 아직도 적지 않은 허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 갖가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병역을 회피하려는 젊은이들이 아직도 상당수에 이른다는 게 병무청 관계자의 지적이다. 심지어 일각에선 병역기피자들을 고객으로 삼는 이른바 ‘병역면제학원’까지 등장한 실정이다. 군 면제를 꿈꾸는 세태, 그 요지경 현실을 추적해봤다.
지난 2004년 운동선수와 연예인 등이 포함된 초대형 병역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병역의무 회피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함께 징병제도의 보완작업이 이뤄졌고 병역 비리는 척결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병역 회피자들은 아직도 각종 편법을 동원해 병역 면제를 꿈꾸고 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병역 면제에 관한 각종 정보를 교환하는데 편법을 동원해 면제를 받는 노하우를 공유하는가 하면 전문 브로커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주로 신체적인 이상을 인위적으로 유발해 신검 판정 급수를 낮춘다든지 해외 영주권 취득 등으로 병역을 면제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많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같은 수법들이 통할까.
병무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의학적인 문제에 관한 한 신체검사를 통해 대부분 진위를 가려낼 수 있다”며 “하지만 영주권 취득 등과 같이 제도적 허점을 파고드는 것은 그 의도를 정확히 가려내기 힘들기 때문에 징집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병역 회피자들이 면제 판정을 받기 위해 인위적으로 의학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2004년 병역 비리 파동 당시 드러났듯이 알부민 주사를 통해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게 해서 신장 등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판정 받는 방법, ‘특별 훈련’을 통해 시력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방법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 가운데는 무릎에 약물을 주사해 무릎에 물이 차는 증상인 활액낭염이나 건초염 등을 유발하는 교묘한 수법도 있다.
그러나 활액낭염의 경우 주사를 중단한 채 2주가량 경과하면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병무청과 병역 회피자 사이에 병증의 진위를 둘러싸고 치열한 두뇌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앞서 언급한 K 씨의 경우도 이와 흡사한 사례에 속한다.
그는 1999년 11월 재검사에서 ‘급성담낭염’ 증세로 7급 판정을 받았고 병무청은 이듬해 2월과 6월 재검사를 통지했다. 그런데 K씨는 재검사에 응하는 대신 “현역병 입영ㆍ공익근무요원 소집 면제연령인 31세가 됐다”며 징병검사 취소소송을 냈고 이 소송에서는 패소한 바 있다.
인위적으로 의학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수법에 대한 병무청의 검증법이 강화되면서 기상천외한 또 다른 수법들도 동원되고 있다.
이 남성의 계산된 ‘만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흉기를 들고 상관에게 달려들기도 하고 훈련 중 드러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등 정신질환자 행세를 한 것. 하지만 정밀감정 결과 정상인으로 판정됐고 결국 그는 병영 내에서 ‘특별대우’를 받으며 만기로 전역했다.
또 군 부적격자 판정을 노리고 앞뒤 가리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도 있다. 지난 2003년 강원도 화천 모 부대에서 중대장으로 전역한 A 씨에 따르면 잘못된 정보 때문에 군대생활을 수개월 더 했던 남성도 있었다.
이 남성은 군 입대 전 상급자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면 병역 부적격자로 분류돼 조기 전역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때와 장소 그리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는 집 대신 영창으로 보내졌다. 물론 그는 출소 후에도 복역한 시간만큼 군 복무를 더 해야 했다.
실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병역기피자들 사이에서 널리 애용되는 수법 중 하나다. 기자는 한 인터넷 병역면제 관련 카페에서 정신병원에 4개월간 장기 입원한 끝에 결국 군 면제판정을 받아냈다는 한 남성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을 S라고 소개한 이 남성은 “훈련소에 입소했다가 일주일 만에 나와서 정신병원에 2주간 입원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며 “정신병원에 입원한 시간을 모두 합치면 6개월 정도 되는 같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과거에는 신체검사를 앞두고 의사 소견서를 발부받거나 입원기록을 제출해도 군 면제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관련법이 강화돼 미리 이상증세에 관한 기록을 남겨두지 않으면 면제판정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고교시절부터 군 면제를 염두에 두고 정신병력을 남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S 씨는 “최근 고교생들이 자살 시도를 많이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데 극히 일부겠지만 이 가운데 몇몇은 우울증 등 정신병력을 남기기 위해 일부러 연출하는 사례도 있다”면서 “내가 정신병원에서 만난 이들 중 고교 2학년 남학생 한 명이 그랬다. 그 애를 봤을 때 나도 나지만 정말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일부 젊은이들의 군 면제를 바라는 심리를 파고드는 불법적인 ‘병역면제학원’들도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이런 학원들은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대체복무, 병역 연기 등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군 입대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신체검사 등급을 조작해 군 면제나 공익근무 등을 이끌어내는 일이 전문인 곳도 상당수다.
병무청에 확인해본 바에 따르면 이들 학원 중 일부는 실제 병역브로커들이 운영하며 병역 면제를 알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버젓이 브로커를 통해 ‘안전하게 병역면제를 해주겠다’고 선전하는 학원들도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병역법이 많이 보강돼 위험부담이 큰 면제보다는 공익근무를 하게 되는 신검 등급 4급 판정을 선호하는 추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광고 중인 한 병역면제학원에 기자가 직접 학인해본 결과 4급 판정을 받아내는 데 드는 비용은 400만 원에서 700만 원 선이었다. 가격이 비싸면 비쌀수록 원하는 판정결과를 얻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인터넷 카페를 드나드는 병역 브로커들은 700만 원 정도면 4급이나 5급 등 입영대상자가 원하는 등급을 만들어줄 수 있다며 손님을 모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감언이설에 속아 사기당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터넷상에서 ‘병역 브로커에게 사기당하지 않는 법’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병무청의 한 관계자는 “신체검사 제도가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신체 이상을 유발하는 수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이외에도 여러 가지 편법들이 동원되고 있지만 대부분 대처방법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라고 말했다.
김영서 프리랜서 redgra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