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 재미 보다가… 후미등 깜빡깜빡 경찰에 딱 걸려
영국배우 휴 그랜트는 할리우드에서 흑인 여성과 성적 일탈을 벌였지만 오히려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난관을 정면 돌파했다.
차는 어느덧 선셋 대로에 다다랐고, 길거리에선 몇몇 여성들이 남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의도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휴 그랜트는 일종의 홍등가에 접어든 것이다. 이때 한 여성이 접근했다. 본명은 에스텔라 마리 톰슨, 20대 후반(1969년생)의 흑인이었다. 일단 접근한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BMW 속의 남자가, 혹시 매춘을 단속하는 사복 경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기 때문이었다. 이때 휴 그랜트는 자신의 이름이 ‘루이스’라고 했고, 브라운은 마치 찰스 황태자 같은 영국식 악센트가 조금은 신기했다.
당황한 그랜트에 비해 브라운은 침착했다. 창문을 열기 전, 브라운은 그랜트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절대 경찰에게, 돈이 오갔다는 얘기는 하면 안 돼요.” 하지만 그들은 경찰서로 끌려갔고, 머그숏을 찍었으며, 공공장소에서 음란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1180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고, 이후 2년의 약식 보호 관찰과 에이즈 관련 교육 프로그램 참여의 조치가 취해졌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풀려났다.
집으로 돌아간 브라운은 다음 날 아침 뉴스를 보고서야, 전날 밤 자신과 함께했던 그 남자가 배우인 휴 그랜트라는 걸, 그리고 자신이 전 세계적인 스캔들의 중심에 있다는 걸 알았다. 런던에서도 난리였다. 그랜트의 오랜 연인이자 모델이며 배우인 엘리자베스 헐리의 집 앞엔 기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헐리는 커튼을 내리고 문을 굳게 잠근 채 집 안에서 끓는 속을 삭히고 있었다. 반면 논란의 중심인 휴 그랜트는 오히려 담담했다. 그는 남은 홍보 일정을 모두 소화했고,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난관을 정면 돌파했다. 제이 레노의 <투나잇 쇼>에선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살다 보면 좋은 일을 할 때도 있고 나쁜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날 밤 나쁜 짓을 했죠. 그뿐입니다.” <래리 킹 라이브>에선 정신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래리 킹의 말에 “최근 미국인들 사이에 정신 치료가 신드롬을 일으키는 것 같은데, 나는 영국에서 온 구식 인간”이라며 슬쩍 넘어갔다.
줄리앤 무어(오른쪽)와 촬영한 영화 <나인 먼쓰>의 한 장면.
한편 사람들은 그랜트와 헐리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헐리는 예정대로 <나인 먼쓰> 시사회에 참석했고, 예전 같진 않지만 그들의 관계는 이어졌다. 비록 2000년에 헤어지긴 했지만 이후로도 서로의 아이들에게 대부와 대모가 되어 줄 정도로 절친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랜트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듯 보였지만 이후 미국 시장에서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디바인 브라운이었다. 전기요금 133달러를 못 내 거리의 매춘부가 되었던 그녀는 완전히 인생 역전을 이루었다. 사건 이후 그녀는 <펜트하우스> 화보를 찍었고, 브라질의 란제리 광고에 등장했으며, 각종 인터뷰를 통해 유명해졌다. <제리 스프링어 쇼> 같은 ‘쎈’ 토크쇼들에선 그녀를 섭외하려고 전쟁을 벌였고, 몸을 팔아 남편과 두 딸을 부양하던 여자는 유명세를 이용해 160만 달러의 돈을 벌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었고 베벌리힐스에 집을 샀으며, 자그마한 레코드 회사를 차려 음악에 대한 묵혀 두었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다룬 다큐 드라마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고, 포르노그래피에 등장했으며, 급기야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밀리언 달러 후커>(2006)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휴 그랜트의 잘못된 행동이 한 여성의 삶을 바꿔 놓은 것이다.
디바인 브라운은, 아니 에스텔라 마리 톰슨은 자신의 삶에 대해 매우 당당했다. 2010년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휴 그랜트가 나와 내 가족의 삶과 미래를 형성시켰다고 하지만, 그랜트 역시 나를 통해 미국에서 자신의 지명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가 나를 도왔다고? 아니다. 내가 그를 도왔다.” 어언 20년 전의 일이 된 그때 그 사건. 하지만 브라운은 아직도 각종 인터뷰에 응하며 그 대가를 받아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