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먼저냐 의술이 먼저냐
▲ 지난 4월 25일 전주지방법원에 모습을 드러낸 장병두 할아버지. 완치된 환자를 비롯한 네티즌들의 구명운동이 활발한 가운데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주목된다. | ||
하루하루 아들에 대한 걱정이 쌓여갈 때쯤 대학교 동창인 문 아무개 씨를 만났다. 문 씨는 이 씨의 고민을 듣고 집안의 생명의 은인이라며 장병두 할아버지(92·서울 동대문구 휘경동)를 소개했다. 아들을 데리고 찾아갔더니 장 할아버지는 걱정하지 말라며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아침, 저녁으로 약을 복용하고 바르니 3개월 만에 증세가 씻은 듯 사라졌다. 치료비 명목으로 한 달에 50만 원, 3개월에 150만 원을 낸 게 전부였다. 이 씨는 현대의학으로도 고치기 힘든 병을 약만으로 치료한 할아버지의 신비한 의술을 그때부터 믿기 시작했다. 이 씨의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서 현재 전북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지난 4월 25일 오후 3시께 전주지방법원 앞에는 이 씨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자신들이 은인으로 여기는 장 씨가 이날 항소심 법정에 서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목에는 하나같이 ‘장병두 할아버지 생명의술 살리기’라고 적힌 피켓이 걸려 있었다.
장 씨는 지난해 11월 의료법 위반(무면허 의료)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에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이날 2심 공판이 열리게 된 것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장 씨는 지난 2003년 5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군산시의 한 주택에서 3000여 회에 걸쳐 진료 행위를 하며 모두 13억 98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장 씨 측은 장 씨가 군산에 가끔 내려와서 지인의 집에서 머물다가 서울로 올라가곤 했는데 그 때마다 환자들을 돌봐줬다고 말한다. 그러던 중에 치료를 받은 한 환자의 동생이 장 씨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신고했고 이것이 1심의 유죄 선고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날 공판에 참석한 방청객은 대학교수에서부터 학교 교사, 성직자, 가정주부,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대부분 인터넷 카페인 ‘장병두 할아버지 생명의술 살리기 모임’에서 만난 사이로 장 씨의 의술로 질병을 치유한 경우가 상당수였다. 실제로 이들은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장 씨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드러냈다.
‘장병두 할아버지 생명의술 살리기 모임’ 회장인 박태식 전북대 경제학부 교수는 “3년 전 복막과 장으로까지 전이된 위암으로 한 달 정도 살 수 있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할아버지의 치료를 받고 완치됐다”며 “할아버지가 무죄 판결을 받아 다시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의술을 펼쳐 많은 사람들의 병이 낫길 바란다”고 밝혔다.
인터넷 카페 운영자인 이경숙 씨도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했다. 이 씨는 “딸이 태어난 지 10개월 지나서 폐렴합병증으로 호흡기 장애 1급을 받았었다. 당시 중환자실에서 2년 동안 집중 치료를 받고 인공호흡기를 이용해서 생활했다. 그래도 병이 낫지 않아 아는 사람을 통해 할아버지를 소개받아 치료를 받았더니 지금처럼 잘 걷고 뛸 수도 있게 됐다. 지금도 X-레이를 찍으면 왼쪽 폐가 접혀 있는 상태다. 하지만 할아버지 약 덕분에 딸이 건강해져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할아버지가 꼭 무죄 판결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 씨를 기소한 검찰의 기본적인 입장은 ‘장 씨가 무면허 의료행위로 영리를 취했으며 이는 현행법에 분명히 저촉된다’는 것이다. 장 씨의 의료행위가 얼마나 효과가 큰가 하는 점은 재판의 핵심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장 씨의 변론을 맡은 박태원 변호사는 이에 대해 “그래도 무죄를 확신한다”며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 인터넷 카페 ‘장병두 할아버지 생명의술 살리기 모임’ 등에서 나온 사람들이 항소심 법정 앞에서 장 씨의 무죄를 주장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
이번 사건으로 논란의 한가운데 서게 된 장 씨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주위의 전언에 따르면 장 씨 자신 또한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등창이 발병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전력이 있다고 한다. 심하게 앓다가 궁중 전의(典醫)였던 외조부 ‘진응양’의 도움으로 열 살 때 등창이 완치됐다는 것. 장 씨의 실제 나이가 102세인데 호적상으로는 92세인 이유가 등창으로 언제 죽을지 몰라 부모가 호적신고를 늦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뒤 장 씨는 외조부와 함께 지내면서 의술을 배워 기본적인 지식을 터득했는데 그간 초등학교를 비롯해 정규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시골 서당의 훈장이었던 백부로부터 석 달 동안 한문 공부를 한 것이 정식 교육의 전부라는 것.
어린 시절 그의 집에 ‘임학 선생’(당시 50세 정도)이라는 사람이 자주 와서 머물곤 했는데 남루한 행색으로 따뜻한 방 안에 들어와서 자는 법이 없고, 언제나 눕는 일이 없이 앉아서 잠을 자는 등 기인의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10대 시절 장 씨는 이 기인을 따라 지리산 깊은 산골에서 수련생활에 돌입했는데 이것이 그의 인생행로를 바꿔놓았다. 장 씨는 18세 무렵부터 10여 년간 깊은 산속에서 도학 및 민중의학을 공부하면서 수많은 동물실험과 자신의 몸을 이용한 인체실험을 하며 생명에 대한 나름대로 이치를 터득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광복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의술을 연구하고 시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장 씨의 치료방법은 진맥 후에 약을 조제하는 것으로 약의 주원료는 진품 웅담, 사향, 녹용, 삼, 꿀 등 자연식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의학과 달리 대부분의 원료를 10년 이상 발효, 정제시키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고 한다. 장 씨의 이 같은 의술은 주로 지인들을 통해 주변에 알려졌고 그러다보니 진료는 거의 일반 가정집에서 이뤄졌다는 것.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장 씨는 환자의 수명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어 병색이 심한 경우와 수명이 다된 경우에는 치료를 안 하고 돌려보낸다고 한다. 자신이 치료할 수 있는 경우와 못하는 경우를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주변에서 그가 중국의 전설적 신의였던 ‘화타’와 곧잘 비교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장 씨는 한국 한의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동의보감>이 현대병의 치료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동의보감>을 저술할 당시의 물과 공기, 환경이 현재의 그것과는 달라서 현대병의 치료에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 씨의 이 같은 의술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며 법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무면허) 문제점이 있다. 침과 뜸 등을 함께 시술하는 기존의 한의학과 달리 약만으로 갖가지 병을 치료한다는 주장에 대한 의구심 또한 여전히 남아 있어 한의학계에서도 그의 의술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한 상태다.
장 씨의 의술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이상 제도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날 공판에서 재판부도 이러한 부분에 의문을 가지고 ‘피고인(장 씨)의 약이나 의료방법을 검증한 적이 있는지’ 변호인에게 물어보았다. 이에 변호인 측은 “현대의학의 한계로 피고인의 의술을 검증 못하는 것”이라며 “피고인의 의술이 잘못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완치된 많은 환자들이 바로 검증의 증거이며 훌륭한 의술을 무면허란 이유로 법의 잣대로만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라고 주장했다.
최근의 언론 보도 후 수많은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장병두 할아버지’는 몇몇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온라인상에서 구명운동이 활발해졌음은 물론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민중의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장 씨의 의술에 대한 검증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선 위험한 의료사고로 이어질 위험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에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연 ‘현대판 화타’ 논란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장 씨를 신의로 믿고 그의 민중의술에 신뢰를 보내는 사람들과 과학적 검증 없이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 이처럼 끝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두 갈래의 시선 속에서 재판부의 ‘고민’ 또한 점점 깊어지고 있다.
전주=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