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다 물갈이해야” 혹독한 질책에 혼쭐
추석을 맞아 귀성 인파가 몰린 용산역을 찾은 박영선 새정치연합 대표(왼쪽)와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명절 연휴기간 의원들의 ‘단골코스’ 1순위는 전통시장이다. 명절음식을 준비하러 시장에 나온 지역주민과 상인들의 얘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전통음식을 먹고 상인들과 악수도 하면 ‘그림’이 나온다는 장점도 있다. <일요신문>이 다수의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문의한 결과, 지역구에 내려간 의원들의 연휴 일정은 ‘전통시장 3~4군데 돌기, 노인정이나 주민회관 방문, 명절 당일은 가족과 함께’로 요약할 수 있었다.
여야 대표와 대통령 역시 연휴기간 전통시장 방문은 빼놓지 않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추석을 앞둔 지난 1일 종로구 광장시장을 방문하고, 연휴기간 전후로 노량진 수산시장, 가락시장 등을 다녔다. 이에 질세라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박영선 대표도 2일 광주 양동시장을 방문해 바닥민심을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5일 서울 답십리 현대시장을 방문해 송편, 과일 등을 사고 상인들을 만났다.
주민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욕도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게 전통시장 탐방의 양면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대구사무소 관계자는 연휴기간 전통시장을 찾아 곤욕을 치른 일화를 전했다.
“일흔 살쯤 돼 보이는 어르신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정치인들은 뭐하는 인간들이냐’고 욕했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가운데 고개 숙여 미안하다고 사과만 했다.”
유 의원은 5일 대구에 있는 방촌시장, 불로시장 등 전통시장 탐방을 시작으로 7일까지 지역주민들을 만났다. 풀리지 않는 정국 속에 주민들의 반응 역시 냉랭하긴 마찬가지. “단 소리보다는 쓴 소리를 훨씬 많이 들었다”는 게 종합 평가였다. 이 관계자는 “제일 많이 들은 세 가지 얘기는 ‘세월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 왜 부결시켰느냐’, ‘뭘 했다고 명절 상여금 받느냐’는 말이었다”고 전했다.
새정연 박수현 의원 역시 ‘시장파’ 중 한 사람. 박 의원은 6일부터 10일까지 연휴기간 내내 지역구인 충남 공주에 머무르며 민심탐방을 했다. 박 의원을 수행했던 한 보좌관은 “현역의원 안 뽑겠다는 얘기까지 들었다”며 싸늘한 지역민심을 전했다. 이어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정치얘기보단 ‘국회의원이 이런 데도 오느냐’며 반가워하시는 분들이 많다. 이럴 땐 시장 다닐 맛이 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틀간 재래시장 탐방을 하고 10일 새벽 공주터미널 차고지에서 버스기사들과 아침식사를 하는 것으로 추석민심탐방을 마무리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 역시 지역구인 전남 순천, 곡성을 찾아 전통시장을 돌았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곡성 전통시장을 방문해 주민들을 만나는 모습 등 추석 일정을 일일이 올렸다. 이 의원은 “5일장에서 좌판을 깔고 산나물을 파는 한 아주머니로부터 취직을 못하는 아들 얘기를 들을 때 마음이 아팠다”며 “지역경제가 어렵다는 얘기가 주를 이뤘다”고 전했다.
의외의 인물들도 전통시장을 찾았다. 백승주 국방부 차관과 박창명 병무청장이다.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 등 일련의 불미스러운 일로 호된 비판을 듣고 있는 군 당국 관계자들이 여론을 듣고자 계획한 행사다. 백 차관은 4일 서울 신길동 대신시장을 찾아 시민들을 만났고, 박 청장은 대전 서구의 도마큰시장에서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정치인도 아니고 웬 뜬금없는 시장방문이냐”는 일각의 비판에 국방부는 “전통시장 활성화의 일환으로 매년 명절마다 방문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장관도 아니고 차관이나 차관급이 시장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또 다른 ‘전시행정’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새정연의 안민석 의원도 연휴기간 택시기사로 일했다. 안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보좌진들과 전통시장 같은데 방문해서 듣는 민심은 가짜 민심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국회의원인 줄 못 알보고 허심탄회하게 하는 얘기를 듣는 게 진짜 바닥민심이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2005년부터 틈틈이 운전대를 잡고 민심을 듣기로 유명하다. 이번 연휴기간 중에도 이틀 동안 하루 40~50명의 손님을 태웠다. 그는 “그간 정치하며 이렇게 많은 질책을 들은 적이 없었다. ‘정치인들 다 물갈이해야 한다’는 등 사형선고에 가까운 혹독한 얘기들을 많이 해 두려웠다”고 민심을 전했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연휴기간 중 하루를 내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민을 만났다. ‘쫄쫄이’까지 갖춰 입고 지역구인 양평, 가평의 자전거길 활용도를 확인하고 현장을 점검했다. 추석 전 사흘은 여주, 양평 등지의 전통시장을 돌았다. 정 의원은 “시장에서 만난 어르신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일 안하고 뭐하는 거냐’고 호통을 치셔 진땀을 뺐다. 연신 고개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일화를 얘기했다.
명절 특별한 외부일정 없이 가족들과 함께한 ‘칩거형’ 정치인들도 많았다. 박 대통령은 6일 전통시장을 찾은 것을 끝으로 닷새간 연휴에 공식일정을 모두 비웠다. 추석 당일인 8일에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묘소인 현충원에 성묘를 다녀왔을 뿐이다. 남은 휴일동안 관저에 머물며 국정구상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추석 당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평상복 차림으로 산책하는 사진과 함께 추석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공식적인 일정을 잡지 않고 연휴기간동안 가족들과 휴식을 취했다. 안철수 전 대표 역시 조용히 자택에서 명절을 보내며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로 명절인사를 전했다. 안 대표는 “오는 19일은 제가 정치를 시작한 지 꼭 2년이 되는 날입니다. 처음 정치를 시작했던 그 마음을 떠올리며, 쉼 없이 달려온 지난 2년을 복기하고 있습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근황을 전했다. 차기 대권주자로 점쳐지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연휴 전 노인복지관 방문 등의 일정을 끝내고 연휴동안은 가족들과 함께 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세월호 민심’ 여야 다른 해석 “어서 끝내야”vs“특별법 관철”…아전인수? 추석 민심탐방 기간 중 의원들이 가장 많이 접한 이슈는 단연 세월호 특별법이었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이 들려준 민심은 묘하게 결이 달랐다. 여당 의원들은 “국민들의 세월호 피로도가 높다”고 답한 반면, 야당 의원들은 “명백한 진상규명 당부가 주를 이뤘다”고 답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국민들이 ‘세월호에 발목잡혀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니 어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 역시 “세월호 (이슈를) 끝내고 일하라는 주문을 많이들 하셨다”고 답했다. 반면 새정연 안민석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 언제 처리할 거냐.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야한다는 얘기가 다수였다”고 말했다. 권은희 의원 역시 “세월호 특별법을 관철시키는 게 진정한 민생정치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 많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심까지 아전인수로 해석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런 차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야당 의원들 중에는 연휴기간 세월호 유족들의 농성장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새정연 박영선 대표는 2일 진도를 찾은 데 이어 6일 서울 청운동 농성장을 찾아 유가족들과 얘기를 나눴다. 또 5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박 대통령을 향해 “추석 앞두고 박 대통령께서 눈 딱 감고 가셔야 할 곳이 청운동과 광화문”이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의원은 추석 당일인 8일에만 지역구인 부산을 찾았다. 문 의원은 연휴기간 트위터를 통해 “길거리에서 추석을 보낼 세월호 유족들을 다시 생각합니다”는 글을 올렸고 안산, 청운동 등지를 찾아 유가족들과 면담했다. 새정연의 전정희 의원은 6일 한의사인 남편과 함께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찾아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5일 송편과 과일을 들고 진도를 찾아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