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묵살·이례적 특혜 뒤에 큰손 있다?
▲ 연합뉴스 | ||
학위 논란의 진상은 하나둘 밝혀지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신 씨는 아직까지 자신의 학력 위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 지난 16일 미국 뉴욕으로 출국한 신 씨는 뉴욕공항에서 “논문표절을 고졸학력으로 내린 언론에 할 말 없습니다”라는 말만 남긴 채 종적을 감췄다.
이번 사건이 신 씨의 사기극으로 드러나면서 가짜 학위뿐인 신 씨가 그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을 두고 의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단순히 학위를 취득하는 데 걸리는 기간만 꿰맞춰봐도 신 씨가 내세웠던 ‘대단한 학위’들이 가짜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지성인들이 수두룩한 미술계와 학계에서 금세 탄로날 허술한 거짓말들이 근 10년 동안이나 통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또 수차례의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신 씨가 꿋꿋이 ‘수직상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배경과 여기에 개입된 ‘보이지 않는 손,’ 이것이 바로 이번 ‘신정아 스캔들’의 핵심이다.
신 씨는 지난 16일 지인들에게 “직접 가서 학위취득을 증명하겠다”며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 12일 유럽에서 몰래 입국한 지 나흘 만이었다. 출국 직전 신 씨는 가족들에게 “미국에서 예일대 박사 학위를 증명할 자료를 가지고 돌아오면 잘 해결될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신 씨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역전’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학교 측과 미술계의 반응이다. 실제로 뒤늦게 사실 확인에 나선 동국대는 “신 씨가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예일대 대외협력처 관계자로부터 학위가 ‘거짓’이라는 회신을 받았다”고 밝히며 이번 사건을 ‘희대의 학력위조 사기사건’으로 결론 내린 상태다. 또 대학 측이 확인한 결과 신 씨의 학위증에 기재된 예일대 총장은 하워드 라마 씨로 이미 93년 퇴직한 인물로 밝혀졌다. 따라서 2005년 학위를 받았다는 신 씨의 주장은 엄연한 거짓이며 신 씨의 학위증은 위조라는 것이 확실해진 셈이다.
뿐만 아니라 몇몇 미국 유학파 출신들은 ‘증거수집’을 빌미로 출국한 신 씨의 행동에 대해 ‘도피’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미국은 사회보장번호(SSN·Social Security Number)로 졸업장을 발급받아 볼 수 있는데 학위를 증명해보이겠다고 미국까지 간 것은 이해가 안 된다. 특히 요즘은 본인 SSN만 있으면 인터넷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신 씨의 뉴욕행이 도피성 출국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신 씨는 강남의 한 여행사를 통해 현금으로 왕복항공권을 끊어 출국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신 씨가 당분간 국내에 들어오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게 사실이다. 심지어 그간 과감한 사기행각을 벌여온 신 씨의 배짱과 술수로 미루어볼 때 왕복항공권을 끊은 것도 도피 의도를 감추기 위한 위장술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어떻게 무려 10년 가까이 이런 엄청난 사기극이 가능했느냐 하는 점이다. 이미 6년 전 금호미술관 재직 당시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2005년 작고)으로부터 예일대 박사학위 위조를 의심받아 사직을 권고 받은 바 있는 신 씨가 같은 미술계 바닥에서 화려한 날개를 펼 수 있었던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특히 대학 교수로 임용되고 국제적인 행사의 감독에 발탁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석연치 않다. 이는 그간 제기된 신 씨 비호세력과 관련한 의혹과 직결되는 것으로 추후 더욱 큰 파장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신 씨를 비호하는 세력이 있다는 주장은 신 씨가 지난 2005년 교수로 임용될 당시에도 제기된 바 있다. 실제로 동국대가 신 씨를 채용한 경위를 짚어보면 의혹투성이다. 애초에 신 씨는 2005년 9월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조교수로 특별채용됐다. 그러나 미술사학과의 경우 전공과목은 불교미술과 동양미술뿐으로 서양미술을 전공했다는 신 씨가 담당할 강의는 애초부터 없었다. 예술대학 교수들의 반발이 거세자 대학은 이례적으로 신 씨를 6개월 휴직시킨 뒤 2006년 3월 교양교육원으로 소속을 돌려 교수 타이틀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동국대는 학위 확인이나 졸업장·성적표 등의 구비서류 접수 등 검증을 위한 통상적인 절차조차 제대로 밟지 않고 교수 임용을 강행했다. ‘윗선’에서 어떤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신 씨는 ‘풀타임’에 해당하는 교수직을 맡으면서도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자리를 계속 병행하는 ‘배려’를 받기도 했다. 통상적인 교수 채용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신 씨에게는 버젓이 이뤄졌던 셈이다.
무엇보다 신 씨는 임용 전부터 허위학력 및 논문 표절 등과 관련된 찜찜한 루머들이 나돌았던 인물이었다. 이에 일부 인사들은 의혹을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진상조사를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 씨의 가짜 학위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장윤 스님(현 전등사 주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 씨의 임용에 대해 “학교나 재단 고위층의 비호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신 씨 임용 당시 동국대 이사였던 장윤 스님이 학교 측에 신 씨의 학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것은 지난 2월. 장윤 스님은 이미 서울대 미대 윤동천 교수로부터 ‘신 씨의 박사논문이 1981년 미국 버지니아대 논문을 그대로 베낀 것이며 예일대 졸업자 명단에도 그런 이름이 없다’는 점을 재차 확인한 뒤였다. 하지만 대학 측에서는 ‘학교 차원에서 공식적인 확인을 끝냈다’고 신 씨와 관련된 의혹들을 묵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윤 스님은 자신이 신 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뒤 이사직에서 해임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동국대 재단 관계자는 장윤 스님 등이 주장하는 ‘비호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 20일 동국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신 씨에 대해 파면 조치를 내리고 “채용 과정에서 비리나 외압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국대 측이 구체적인 표절 의혹을 묵살하고 신 씨에게 이례적인 특혜를 베풀어온 사실은 대학 고위층의 누군가 신 씨를 감싸왔다는 의혹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교수 임용 당시 신 씨에 대한 동국대 측의 검증은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었다. 동국대 측은 11일 예일대와 캔자스대에 신씨의 학력 조회 요청 공문을 등기 항공우편으로 보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18일 동국대 진상조사위는 “지난 11일 발표한 캔자스대 학력 조회 부분은 당시 기안문을 토대로 발표한 착오였으며, 예일대 최종 학력 조회만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내부 기안문에는 학ㆍ석ㆍ박사 학위를 모두 검증하겠다고 기재해 놓고 실제로는 박사 학위만 조회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국대 측이 예일대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신 씨의 박사 학위증마저 위조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학위증이 오가는 과정에도 ‘배후의 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문까지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술계 일각에서는 신 씨의 ‘사기극’이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로 그의 철두철미한 ‘처세술’을 꼽고 있다. ‘주류’에 편입하기 위해 10년 가까이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 ‘이름값’을 올려온 신 씨의 ‘작전’이 주효했다는 시각이다.
신 씨가 그간 얼마나 교묘하게 미술계 인사들을 ‘요리’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증언들도 속속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 신 씨를 가까이서 지켜본 미술계 관계자들의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과거의 신 씨’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물론 “지나치게 포장된 듯한 처세술 등으로 인해 처음부터 신뢰할 수 없는 이미지였다”고 기억하는 인사들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신 씨를 “예쁘장한 외모에 뛰어난 화술,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일에 대한 과감한 추진력, 사근사근하고 애교 있는 성격을 갖춘 인물”로 평가하고 있었다.
특히 신 씨는 미술계 핵심 인사들과 원로 인사들을 잘 챙기기로 유명했는데 항상 겸손하고 살가운 태도로 일관해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품격’에 맞는 고급 명품을 애용해온 신 씨는 미술계 뿐 아니라 학·재계 일각에서도 ‘지성과 미모 그리고 부’를 겸비한 전문 큐레이터로서 자신의 입지를 넓혔다. 자신을 최고의 엘리트로 포장했던 신 씨는 이 과정에서 인연이 닿은 일부 유력 인사들을 징검다리 삼아 출세가도를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신 씨가 아무리 지능적이고 처세술에 능한 인물이었다 해도 미술계나 학계 거물의 ‘절대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이 엽기적인 사기극이 불가능했을 터. 이제 의혹의 초점은 누가 왜 신 씨를 도왔는가 하는 쪽으로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신 씨의 행적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풀리기는 어려울 듯하다. 신 씨에게 공동감독을 맡겼다가 이번 사태로 곤욕을 치른 광주비엔날레 측은 지난 18일 신 씨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이미 신 씨가 몰래 출국한 뒤에야 고소가 이뤄져 또 다른 의문만 남기고 있다. 게다가 신 씨가 사기와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를 받고 있어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임에도 아무 제지 없이 출국할 수 있었던 점도 논란거리다. 이 같은 일련의 정황만 보면 당사자인 신 씨는 이미 해외로 떠났지만 신 씨 주변의 보이지 않는 손은 여전히 그를 감싸고 있는 듯하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