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건의 기획으로 기적 같은 대상
▲ 지난 8월 16일 뉴욕의 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뒤 종적을 감춘 신정아 씨. 이번 학력 위조 파문이 권력층의 비호 의혹으로 확대되면서 검찰은 그의 화려했던 인맥을 주목하고 있다. 연합뉴스 | ||
검찰 수사는 일단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정 및 동국대 교수 임용 의혹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세인들의 관심은 검찰이 신정아 사태를 둘러싼 외압 및 비호 의혹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서부지검 측은 “신 씨가 학위와 예일대 졸업증명서를 위조했는데 혼자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공범 연루 가능성을 제기했다. 검찰이 신 씨의 주변인물 및 동국대 관계자 10명을 소환조사한 것을 감안해볼 때 일부 연루 정황이 포착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그동안 아리송한 입장 번복과 묘연한 행적으로 의혹의 중심에 있던 장윤 스님 측이 마침내 입을 열면서 신정아 사태는 또 다른 전기를 맞고 있다. 장윤 스님의 대리인인 이중훈 변호사는 6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장윤 스님과 변(양균) 실장이 (7월 8일 만난 자리에서) 동국대 현안을 이야기하면서 신 씨 문제에 대한 대화도 나눈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간 침묵을 지켜오던 장윤 스님이 변 실장과 만나 신 씨와 관련된 얘기를 했다는 사실을 대리인을 통해 시인함에 따라 고위층 외압과 비호세력 여부 등에 대한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미 알려져 있듯 신 씨가 미술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동국대 교수로 임용되고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선정되기까지의 과정은 온통 의혹투성이다. 우선 신 씨는 공채나 어떤 검증과정을 거쳐 큐레이터가 된 것이 아니다. 금호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로 큐레이터 세계에 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또 그가 공개경쟁을 통해 공식적인 임용 절차를 밟아 대학교수가 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신 씨는 일반적인 미술인들이 거치는 절차와 과정을 건너뛰면서도 장밋빛 탄탄대로를 달려온 인물이다. 전직 큐레이터 A 씨는 신 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큐레이터 신정아의 10여 년은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우리들이 볼 때 그야말로 ‘기적’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건 단순한 우연 혹은 행운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오지 않고 올 수도 없는, 기막힌 기회와 기이한 인맥, 꿈 같은 교수 특채가 신 씨에게만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반 미술인들은 접촉하기도 어려운 유력 인사들과의 교류, 그들의 노골적인 추천, 납득할 수 없는 임용이 어떻게 그에게만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간 신 씨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일들은 미술계에서는 있기 어려운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들 일색이었다.”
이런 점에서 지난 2003년 신 씨가 제8회 월간미술대상 전시기획부문 대상을 거머쥐게 된 데에도 의문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월간미술대상은 <월간미술>이 중앙일보와 삼성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주최하는 것으로 전시기획부문대상은 큐레이터로서 기획력을 인정받는 최고의 상으로 꼽힌다. 국가에서 주는 상은 아니지만 수상자의 경우 명예와 기회를 한꺼번에 거머쥘 만큼 미술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공신력 있고 파워 있는 상으로 인정받는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당시 성곡미술관에 근무하던 신 씨가 이 상을 받게 된 이유는 <뉴욕의 다국적 디자이너들>이라는 전시가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 씨가 이 상을 수여하게 된 것을 두고 당시 미술계 일각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게 미술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가장 큰 이유는 신 씨가 이 한 건의 기획으로 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한 미술계 인사는 “100여 회, 200여 회 기획을 했음에도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사람이 허다하다. 미술계를 주름잡고 있는 원로작가로부터 추천받는 것은 아무나 가능한 일이 아니다. 신 씨의 경우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신 씨가 기획했다는 <뉴욕의 다국적 디자이너들>은 외국 기획전을 마치 자신이 기획한 것처럼 포장해 논란을 빚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이렇다 할 전시기획 경력도 없던 신 씨가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상을 수상하게 된 또 다른 배경이 있었던 걸까.
기자는 <월간미술> 측에 신 씨의 수상 경위에 대해 문의했으나 당시 상황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월간미술대상운영위원회 관계자는 “당시 담당자가 그만둔 상황으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 추천이나 심사기준 등 당시 상황에 대한 기록도 찾을 수 없다. 수상은 어쨌거나 심사위원들 관할로 이뤄졌을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월간미술대상 운영위원회에서는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과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뿐 아니라 공교롭게도 신 씨를 광주비엔날레 감독으로 추천한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위원을 맡고 있었다. 이들 3명은 당시 월간미술대상의 심사위원회에 포함돼 있기도 했다.
당시 전시기획부문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김홍희 경기도미술관 관장은 신 씨가 후보에 올랐던 이유에 대해 “이경성 선생(전 국립미술관 관장)이 신 씨를 강하게 추천했다. 한 건의 기획으로 상을 탄 것은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을 타는 데 반드시 기획 건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 당시 신인을 북돋아주자는 얘기도 있었다.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는 개인적인 오피니언이니 알려고 하지 말라”면서 “이번 일이 터진 후로 몇 년 전 일을 들춰가며 당시 심사위원들까지 매도하는 분위기는 상당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성곡미술관 전 학예연구실장인 화가 전준엽 씨가 기억하는 신 씨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001년 12월쯤 신정아 씨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성곡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두 달 가까이 계속 찾아와서 사정을 했습니다. 메이저 신문 기자들과 원로작가들, 평론가들조차 ‘능력 있는 사람이니 같이 일해보라’며 어찌나 적극적으로 추천을 하던지…. 당시 저는 신 씨가 2001년 화재사건 때문에 금호미술관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고 마침 자리가 나서 순전히 이력서만 보고 뽑았던 거죠. 2002년 봄부터 저랑 2년 정도 같이 일했습니다. 저는 원래 그림 그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2004년 3월 말 미술관에서 나오면서 신 씨가 제 자리에 앉게 된 거죠. 신 씨의 경력과는 상관없이 그건 관장 마음이에요. 신 씨로부터 개인적인 얘기를 들은 기억은 거의 없어요. 사생활에 대해서는 신 씨 스스로 철저히 입단속을 했던 것 같아요. 다만 신 씨가 재벌회장 부인들과의 친분에 대해 과시하거나 원로작가들을 일일이 챙기며 입 안의 혀처럼 잘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게도 끔찍이 잘했어요. ‘실장님이 뽑아주셨으니 저 그거 못 잊어요. 저는 실장님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곤 했었죠.”
‘나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인사들이 신 씨로부터 이 말을 들었던 걸까.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